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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홍모씨 간첩 조작 변호인단 긴급기자회견'에서 장경욱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홍모씨 간첩 조작 변호인단 긴급기자회견'에서 장경욱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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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검찰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 7명 무더기 징계 신청은 이미 다 끝난 것 같았던 이경애씨 사건을 되살려내고 있다. 이번 징계 신청의 핵심은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다.

나머지 6명 중 5명(권영국·김유정·김태욱·송영섭·이덕우 변호사)은 검찰이 이미 기소한 상황이라 재판 결과에 따라 처리될 것이고, 나머지 1명(김인숙 변호사)은 피의자에게 묵비권 행사를 권했다는 것인데 누가 봐도 징계사유로는 무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장 변호사의 징계 신청 사유는 피고인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변호사법 24조의 2항 위반). 문제가 된 사건이 바로 이경애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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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인 이씨는 2011년 12월 16일 남한 도착 즉시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수용, 약 6개월간 조사 끝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자백을 했고, 2012년 7월 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반국가단체의 구성, 목적수행, 특수잠입·탈출)로 구속기소됐다. 그해 12월 13일 1심(서울지법 형사합의 29부. 재판장 천대엽)에서 일부 유죄로 징역 5년이 선고됐고, 이 판결은 다음해 11월 14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다시 살아난 이경애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공판준비기일이 시작된 이후인 2012년 7월 25일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편지와 전향서를 자필로 써서 보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저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전 북한국가안전보위부 해외반탐정국 지도원 이경애입니다. 저는 7월 17일 오전 11시 변호사 장경욱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중략)… 변호사님은 위조화폐 문제가 세게 통화법에 걸리니 5년형 정도가 검사님이 내릴 수 있으니 보위부 문제 모두가 거짓이라고 해야 한다는 등... 지금 현재로서 매우 혼돈스럽고 변호사님 보고 저의 변호를 해주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장 변호사가 '변호사의 진실의무'를 위반했다고 검찰이 문제를 삼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는 장 변호사의 행위에 대해 "변호인의 변론권을 무제한 허용하다 보면 진실의무를 망각하는 사태가 온다"며 "그동안 민변 변호사들의 이런 행위가 상당수 있어왔는데, 그대로 방치하기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서 징계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 이번 검찰의 징계 청구는 상충할 수 있는 변호인의 변론권과 진실의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청구하면서 검찰이 빼먹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자백과 부인을 오가다

우선 명확히 해야 할 사항은 장 변호사 등 당시 변호인단은 중간에 해임되지 않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함께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의 변호를 해주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이씨의 편지 내용은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다. 당시 법정에서 이 편지가 증거로 제출됐을 때, 변호인 해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이씨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씨는 국정원 조사과정부터 검찰 조사, 재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자백-번복-자백-번복을 오갔다. 위 편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백의 한 사례다. 하지만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부터는 이씨와 변호인단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에서의 폭행과 모욕, 회유, 세뇌로 인한 허위자백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당시는 아직 유우성씨 사건 전이어서 합신센터가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을 때다.

문제의 편지와 전향서에 대해 이씨가 한 설명은 이렇다. 구치소에서 장 변호사와 접견한 이후 한 교도관이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물었다. 이씨의 대답을 들은 그 교도관은 '당신 그 사람들 말 들으면 큰일난다, 그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느냐, 그 말 들었다가는 형량이 더 올라간다, 오히려 지금 자백을 유지하고 판사에게 선처를 바라는 게 남한에 정착하는 길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남한의 사법체계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이씨는 두렵고 혼란스러웠고, 결국 교도관의 도움을 받아 국정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와 전향서를 쓰게 됐다. 이 내용은 이씨의 재판 기록에 모두 나와 있다.

물론 당시 재판부는 이런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 편지와 전향서를 유죄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로 판단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편지 내용을 근거로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려면 이런 설명도 알려야 공정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검찰은 이런 내용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확정 판결 후 국정원장에게 보낸 다른 편지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이경애씨가 지난 10월 15일 장경욱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 2013년 11월 14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이후 이씨는 여러 차례 변호인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오히려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이경애씨가 지난 10월 15일 장경욱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 2013년 11월 14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이후 이씨는 여러 차례 변호인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오히려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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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검찰이 빼먹은 중요한 사항은 이씨가 보낸 다른 편지들이다. 지난해 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이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는 여러 차례 변호인단에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내용은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오히려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변호사님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여기까지 못왔고, 제대로 재판이나 항소를 받지 않고 교도소 즉행을 했을 것이옵니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 표현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금에게 머리 아픔이 덜하고 사람에게 (국정원에서) 당한 큰 고통과 믿음, 신뢰할 수 없을 정도의 유혹과 구타, 감금상태에서의 진술과정 진술거부하면 ◯◯◯ 그놈 잡아서 감옥 보낸다는 회유... 어찌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2014년 1월 20일 편지)

"저는 처음 국정원 조작에 휘말려들었지만, 장경욱 변호사님과 이광철, 김인숙 변호사님들과 여러번 만나는 과정에서 이런 분들이 계시는 한 진실은 꼭 밝혀야 한다는 신심과 (국정원에 이용당한 - 기자 주) 자기자신이 참 혐오스러웠습니다." (2014년 3월 13일 편지)

이미 확정판결까지 났지만 이씨는 체념은커녕 더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재심을 바라고 있다.

"재심을 청구하고 싶어서 형사소송법 책 사서 보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정말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입니까? 진실이 무엇입니까?" (2014년 2월 5일 편지)

"저는 재심을 꼭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2014년 7월 11일 편지)

"매일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내 마음을 다스릴 수조차 없는 이 미약한 처지에서 그래도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변호사님이실 건 분명하지만, 정말 이 나라에 진실을 밝힐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2014년 10월 15일 편지)

흥미로운 점은 이씨는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다시 편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자백 편지를 보냈던 이씨는 그로부터 약 2년 후 이병기 국정원장에게 전혀 다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씨는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월 1일 새로 임명된 이병기 국정원장님에게 편지 보냈습니다. …(중략)… 갑자기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편지 보냈습니다. '옛 합신센터 독감방에서 6개월간 조작된 희생양이니 간첩 음모론도 이젠 막을 내리고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달라구요'라구요." (2014년 9월 3일 편지)

여기까지가 검찰이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장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면서 빼먹은 것들이다. 물론 이씨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에 대한 판결은 아직 합신센터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 당신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과연 변호사의 진실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변론권만을 내세운 사례인가. 아니면 오히려 진실의무에 충실한 사례인가.

변호인단은 이씨의 재심을 모색하고 있다.


태그:#장경욱, #이경애, #검찰, #대한변협, #진실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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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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