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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유니온은 '고객님 10분만 쉬어도 될까요?'라는 주제로 9월부터 매주 콜센터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과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한 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콜센터 노동 사례를 모아서 사례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릴레이 인터뷰는 콜센터 노동자의 사례집 발간을 위해 시작됐다. 콜센터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 기자 주

콜센터 감정노동자 처우개선 길거리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모습
▲ 콜센터 감정 노동자 처우개선 캠페인 콜센터 감정노동자 처우개선 길거리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모습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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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목소리 좋은데 나하고 데이트 한 번 하지?"

금방 물건을 구매할 것 같던 고객이 징그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이어지는 웃음소리. 그래도 그녀는 덤덤하다. 일 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익숙한 상황이다.  

지난 4일, 24살 김민주(가명)씨와 콜센터에서 일한 이야기를 나눴다. 4년 전 그녀가 처음 콜센터 일을 한 곳은 휴대폰 판매 콜센터. A텔레콤의 구인광고인 줄 알고 찾아갔지만, 대리점의 사설 콜센터였다고 한다. 15명 정도가 일했다.

"하루 평균 150통 이상의 전화를 했어요. 기본급 130만 원. 전화기를 20대 이상 판매하면 인센티브가 7만 원부터 붙기 시작해요. 15명 중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언니가 받는 급여는 150만 원 정도? 사실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몰라요. 직접 개통을 하는 게 아니라 개통 의사가 있는 고객을 넘겨주는 역할이라서 고객의 변심으로 개통이 취소됐다고 하면 확인할 길이 없어요. 그 달에 20개 이상 계약을 성사한 것 같아도 사장님이 19개 개통되었다하면 그만이죠."

'전망도 없는 일인데, 너도 힘들지?'

사장님은 실적을 높이라면서 가족 친지, 친구에게 휴대폰을 판매하라는 압박도 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도 압박이지만, 어떤 스트레스보다도 그녀에겐 양심의 가책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사장님은 실적을 높이라면서 가족 친지, 친구에게 휴대폰을 판매하라는 압박도 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도 압박이지만, 어떤 스트레스보다도 그녀에겐 양심의 가책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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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그날 실적이 안 나오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이렇게 하면 안 돼! 이게 뭐야.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렇게 집단 야단을 맞고 나면 그날은 더 열심히 오래 남아서 전화를 하게 된다. 어린 나이지만, 사장님 심정도 이해는 갔다. 월급을 공짜로 받을 수는 없는 일. 직장 생활하다 보면 그 정도 야단이야 들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A텔레콤 상담원 아무개입니다. 이번에 고객님께서 스마트폰 500분 무료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그녀의 첫 멘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도대체 전화만 받고서 누가 이런 조건으로 물건을 구매하나 싶은데요. 휴대폰이 팔려요. 그게 정말 신기해요. 전화 통화만으로 휴대폰을 산다는 게... 매번 그 당시 유행이 지난 폰들, 예를 들어 갤럭시S3가 유행할 때 그 전 모델인 갤럭시S를 비싸게 팔아요. 상식적으로도 그 가격에 파는 건 말이 안 된다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걸 때마다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 폰은 좋은 폰이다, 비싼 폰이다' 되뇌이며 전화를 했죠."

사장님은 실적을 높이라면서 가족 친지, 친구에게 휴대폰을 판매하라는 압박도 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도 압박이지만, 어떤 스트레스보다도 그녀에겐 양심의 가책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사장님은 전망있는 일이라며 좀 더 해보라고 달래기도 했다. 고작 3개월 일했는데 함께 입사한 동기 중 그녀를 제외하곤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이곳 콜센터에서 일하는 청춘들 누구도 사장님의 말씀처럼 전망을 찾지 못한다. 사장님이 말하는 전망은 어디에 있었을까?

호텔조리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9개월 만에 사회로 나온 20살의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콜센터 일에 익숙해졌다. 좀 더 괜찮은 콜센터가 없을까? 대기업이 운영하는 콜센터라면 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가 들어도 알 것 같은 B카드회사 콜센터의 면접을 봤다. 하지만 카드사 이름을 내세운 하청업체였다. 그래도 훨씬 더 체계적이었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고 교육 내용도 달랐다.  며칠간의 교육 과정을 거쳐 업무를 시작했다.

팀별로 10여 명씩 전체 직원들은 50여 명 정도 됐다. 그녀의 업무는 카드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카드 금액에 약간의 돈을 더 내면 가입되는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9시 출근 6시 퇴근, 기본급 130만 원에 높은 판매건수가 여러 날 유지되면 인센티브가 붙는 형식이었다. 오늘 아무리 수십 건을 계약해도 내일 계약건수가 적으면 인센티브는 사라진다.

"여기선 녹취도 되고 전화통화 내용을 통해 평가가 되기 때문에 지난 회사처럼 욕설을 하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어요. 카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 통화가 될 때까지 전화를 해요. 대부분 스팸 전화인 줄 알고 전화를 안 받는데 몇 번이나 전화를 하면 'XX년 그만 좀 전화하라'고 욕을 하죠. 그래도 죄송하다면서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저번 직장에 비하면 상당한 스트레스였죠."

여기서도 하루에 150통 이상의 전화통화를 한다. 150통은 영업 콜센터에서 불문율인가 보다. 날이 갈수록 계약 건수가 늘긴 했지만, 민주씨 월급이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실력에 따라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실적이 안 나오면 팀장이 불러요. '민주씨, 오늘 왜 이것밖에 못한 것 같아요?'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요. 나무라기도 하고 핀잔도 주죠. 그래도 저번 직장에 비하면 양반이에요. 업무를 중단 시키고 잘하는 사람의 전화를 듣게 하죠. 그리고 따라서 해보라고 해요. 근데 잘하는 사람은 정말 다르긴 해요. 목소리도 좋고, 말이 빠르면서도 발음도 정확하고 리듬감도 있죠. 콜센터에서는 그게 실력인 거 같아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매일 전화를 하고 실적에 시달리다 보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죠. 게다가 지난 번 직장과 달리 그 회사에 20대 초반에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제가 유일한 거예요. 힘들면 같이 푸념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3개월 만에 이 직장도 그만두게 됐죠."

잠깐 마트에서도 일해 보고 책 판매업체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또다시 세 번째 콜센터 면접을 봤다. 그녀가 세 번째로 찾은 콜센터는 인터넷 업체였다. 민주씨의 업무는 인터넷 계약해지 방어업무다. 계약해지를 하려는 고객에게 전화해 계약을 유지하게 하는 일이었다. 실적이 안 나와서일까? 한 달 근무를 하고 쫓겨나듯이 그만두어야 했다. 그 사장님은 '전망도 없는 일인데 너도 힘들지?'하며 마치 민주씨를 생각한다는 듯이 사직서를 내밀었다.

홈쇼핑 콜센터에서 처음 쓴 근로계약서

세 번의 콜센터 일을 하면서도 그녀는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처음 근로계약서를 쓴 곳은 B홈쇼핑 콜센터였다. 영업 실적에 시달리기보다는 상담전화만 받는 콜센터는 좀 할 만하지 않을까? 그녀는 네 번째로 홈쇼핑 콜센터를 찾았다.

200여 명이 일을 하는 곳이다. 잠시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15일간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니 7일 만에 교육을 마치고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첫 달에는 할 만했다. 단순 주문콜만 받으니 전화하기도 편하고 근무시간도 괜찮았다. 직장을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 단순 주문전화는 배당되지 않았다. 경력자들은 어려운 상담전화 담당이다. 배송지연, 반품, 물품하자 등 고객들의 항의를 들어야 하는 일이 되면서 업무는 배 이상 힘들어졌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까지 뒤죽박죽이다. 새벽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하다가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기도 한다. 식사 시간, 퇴근 시간도 불명확하다. 한참 전화를 받다보면 채팅창에 '##시에 식사 예정' '$$시에 퇴근 예정'이라고 뜬다.

그날 콜의 양에 따라서 식사시간, 퇴근시간이 정해진다. 야근수당도 생기고 월급은 전 직장에 비해서 늘었지만 낮밤이 바뀌고 식사시간도 불규칙해서인지 몸에서도 반응이 왔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몇 달 일하고 그만두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회사는 빨리 지쳐 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실 콜센터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딱히 잘 하는 게 없었어요. 부모님도 답답해 했고, 나도 답답해 했고.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나한테... 나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서 이렇게 일하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나는 사회에 단절된 것 같다. 숨어버릴까. 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 콜센터를 직장으로 선택한다면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직장같이 그 일을 오래하긴 정말 힘들 거 같아요."

"저도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콜센터 일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그녀는 지금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CAD(컴퓨터 지원설계)를 배우고 있다. 그녀가 꼭 하고 싶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전망 있는 일이라고 하니 꾸준히 학원을 다닌다. 그녀는 노래를 잘했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겐 꿈꿀 기회가 없었다. 아니 꿈을 찾을 용기가 없는지도 모른다.

'니가 노래를 한다고?' 부모님의 반응에 그녀는 손을 들었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 그녀에게 콜센터도 당당한 직장, 하고 싶은 일이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태그:#콜센터, #감정노동,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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