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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의 신호탄인가, 정당한 법 집행인가.

시국사건으로 법정에서 끊임없이 부딪쳤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검찰이 끝내 정면충돌했다. 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민변 회원 7명의 징계 개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민변은 "정권과 공권력에 대항하는 변호사들의 옷을 벗기겠다는 악의에서 비롯됐다"며 "공안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민변 변호사들이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며 10월 31일 대한변협 앞으로 징계 개시 신청서를 보냈다.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관련 집회에서 경찰관에게 항의했던 권영국·김유정·김태욱·송영섭·이덕우 변호사가 변호사법 24조 1항 '품위유지의무'를 ▲ 장경욱·김인숙 변호사는 피고인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등 같은 조 2항 '진실의무'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법 97조 2항은 검찰의 징계 개시 신청을 의무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 자체는 보통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민변 변호사들을 무더기로 징계해달라고 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 지금껏 징계 개시 신청 대상은 대부분 개인 비리 등을 저지른 경우였다. 민변 변호사들과 함께 징계를 요구한 4명만 해도 사기를 치거나 경찰관 등을 폭행하고, 의뢰인의 돈을 횡령한 사람들이었다.

검찰 "민변 변호사들, 그동안 문제 많았다"

검찰은 사안이 다를 뿐 해당 변호사들은 충분히 징계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2012년 5월부터 2013년 8월까지 7회에 걸쳐 도로를 점거하거나 경찰관을 때렸고, 김유정·김태욱·송영섭·이덕우 변호사는 지난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에서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의 양팔을 잡고 20m정도 끌고 가면서 그를 다치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같은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관련 기사 : 검찰 '대한문 쌍용차 집회' 변호사 4명 기소).

장경욱·김인숙 변호사의 경우 '피고인'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장경욱 변호사가 2012년 북한 보위부 여간첩사건 피고인 A씨에게 허위진술을 하게 시켰고, 김인숙 변호사는 세월호참사 관련 집회에서 경찰관에게 하이힐을 던졌던 여성이 혐의를 인정하려는데도 묵비권을 행사하게 했다며 두 사람이 진실을 은폐했고,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봤다. 변호인의 변론권을 넘어선 행위라는 뜻이다.

"두 사람의 사안은 변호인의 변론권과 변호사의 진실의무, 이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변호인의 변론권을 무제한 허용하다 보면 진실의무를 망각하는 사태가 온다. 그런데 그동안 민변 변호사들의 이런 행위가 상당수 있었고, 그대로 방치하기엔 너무 문제가 많아서 저희가 징계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민변 변호사들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북한 보위부 간첩사건 등 박근혜 정부 들어 불거진 공안사건에서 검찰과 거듭 대립했다. 검찰의 징계 신청이 '민변을 겨냥한 것이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배경이다. 또 장경욱·김인숙 변호사 사례는 진술거부권 등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권리와 연관 있기에 논란의 여지가 크다. 취재진 역시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 그럼 진술거부권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얘기인가.
"변호사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알릴 수 있다. 근데 본인이 '나는 진실을 얘기하고 싶다'는데 변호인이 '왜 자백을 하려고 하냐, 하지 마라' 하면서 진실을 은폐하면 안 된다."

- 민변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변을 겨냥한 것인가.
"우려의 표시인데, 검찰도 민변이 그동안 인권 보장의 보루를 지켜왔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온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좀 도를 넘었다. 길거리에서 불법행위하고 경찰관을 폭행, 체포하는 건 일반인이 한다고 해도 상상할 수 없는데 법조인이 그랬다. 민변이 아니라 해당 변호사들 행위가 문제다."

- 징계 신청은 대검과 상의한 것인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일심회·왕재산 사건 등에서 굉장히 부적절한 행동이 많았다. 수사를 담당하는 평검사들의 '계속 이런 행위를 용납해야 하느냐'는 의사들이 결집해 이번 조치까지 나왔다. 자꾸 정치적 의도로 보는데, 정권과 관계없는 사안이고 그동안 국가안보현장에서 공안검사들이 느껴온 것을 이제는 해야겠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대한변협은 우선 조사위원회를 꾸려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일지 판단할 예정이다. 그 결과 징계 개시 청구로 결론이 나면, 대한변협은 곧바로 징계 절차를 개시, ▲ 6개월 이내에 견책 ▲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 3년 이하의 정직 ▲ 제명 ▲ 영구제명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변협의 결정에 어느 쪽이든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가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더라도 갈등은 잦아들지 않을 모양새다.

"민변 활동에 재갈 물리려는 것... 치졸하다"

검찰이 대한문 앞 집회와 탈북자 사건, 세월호 사건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에게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징계개시신청은 공안탄압이다"고 규탄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검찰의 무차별 기소와 징계개시 신청은 정권과 공권력에 대항하는 변호사들의 옷을 벗기겠다. 재갈을 물리겠다는 공포정치의 향수와 유우성 무죄사건 등에 따른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다"며 "검찰의 형태가 더 이상 공권력이기를 포기한 국가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보복이다"고 비판했다.
▲ 민변 "검찰의 징계 신청은 공안탄압" 검찰이 대한문 앞 집회와 탈북자 사건, 세월호 사건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에게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징계개시신청은 공안탄압이다"고 규탄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검찰의 무차별 기소와 징계개시 신청은 정권과 공권력에 대항하는 변호사들의 옷을 벗기겠다. 재갈을 물리겠다는 공포정치의 향수와 유우성 무죄사건 등에 따른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다"며 "검찰의 형태가 더 이상 공권력이기를 포기한 국가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보복이다"고 비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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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이번 일이 자신들을 탄압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이들은 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 대한문 집회는 법원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른 적법한 집회였고 ▲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진상조사 후 오히려 경찰의 집회 대응이 집회방해죄 등에 해당하므로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당사자들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국 변호사는 "검찰이 변협 징계로 변호사들의 생존권을 잡아서 인권 옹호활동이나 사법정의 실현에 재갈을 물려보겠다는 것"이라며 "치졸하고, 편향된 징계 신청"이라고 말했다. 김인숙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묵비하라는 건 가장 기본적인 변론권"이라며 "검찰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부인하는가"라고 우려했다.

한택근 민변 회장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을 변론하던 강신옥 변호사가 법정구속된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유신'이란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태그:#민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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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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