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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도서관 견학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해요
▲ 작지만 즐거움을 주는 만들기 체험 도서관 견학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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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 뒤라서 그런지 들녘의 풀과 꽃들이 한층 생기를 머금고 있는 아침입니다. 늘 그렇듯이 출근길은 버스를 타고 내려서 십 분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걸으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그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울산에서도 동해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동구 방어진, 옛 사람들은 방어진이라는 지명이 낯익을 테지만 요즘은 '꽃바위'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저 역시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가는 이 출근길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보람된 일인지 자주 되새기며 살아간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하루를 시작하는 도서관의 일상생활들이 매일매일 다르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늘 새로운 것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없습니다.

도서관의 아침은 우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명씩 맡아서 도서관을 열지요. 아침마다 도서관 문을 여는 동시에 청소를 하고, 흐트러진 도서관 이곳저곳을 정리하고, 서가마다 잘못 꽂힌 책들을 다시 정리합니다. 도서관의 하루를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입니다.

"샘~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하나요?"
"뭐할지 그건 걱정하지 마이소. 제가 샘들 할 일거리 다 준비해뒀죠."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 행사들도 많고, 그나마 이번 북페(동구 북페스티벌)가 끝나서 좀 낫다 그쵸."
"네~ 다 샘들 덕분임더. 안 그래도 북페 때 사람들 엄청 많이 와서 우리가 준비해간 체험재료는 거의 다 소진했다 아임니꺼."
"샘, 뿌듯하겠네요."
"그렇지요. 내만 그런가? 샘들은 안 뿌듯한교? 아마 샘들도 나름 보람이 쪼매 있을 텐데."
"맞아요. 처음 도서관에서 무슨 자원봉사를 하나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샘한테 참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쫌 보람도 있고 그래요."
"그래 생각해주니 저도 마아 기분 좋고, 뿌듯하네요."

"가을이고 하니 '꽃잎책갈피' 맹글어봐요"

계절에 따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뭔가를 만들어요
▲ 늘 뭔가를 만들고 있네요 계절에 따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뭔가를 만들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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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캐릭터를 구상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합니다. 파이팅!
▲ 알록달록 이제는 척척 만들어요 재미있는 캐릭터를 구상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합니다. 파이팅!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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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청소를 마치고 자원봉사자 '샘'들과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그동안 행사며 북페스티벌이며 마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처음 문을 두드린 이분들은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 묵묵부답 표정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그때그때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았지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마음자세여야 하는지 알고 있거나 관심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그저 묵묵히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던 자원봉사자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일 년 가까이 되어가는 샘들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본인이 오는 날 아침엔 무엇을 해야 하고 오후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알아서 잘 하십니다.

그리고 유독 우리 도서관에서는 다른 도서관과 달리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도서관 체험행사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늘 만들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서관 이용하시는 분들은 늘 자원봉사 작업 테이블을 지나칠 때마다 묻고 지나가십니다.

"이번엔 뭐 하는교?"
"아~ 이번엔 도서관 견학 오는 애들, 새로운 책갈피 만들기 체험할라꼬 그거 준비함더."
"아이고~ 만날 꽃바위도서관은 뭘 예쁘장하게 만드네요. 애들 진짜 좋아하겠네요."

늘 도서관 한 구석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앉아서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느니 자연스레 이용자분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봐라보게 되었지요. 도서관이 좋은 책 많이 비치해두고 잘 빌려주고 하면 되는 것이지 다른 건 뭐가 필요할까,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 많이 사서 많은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도서관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서 가끔은 도서관의 변화된 모습을 보기를 원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서관을 통해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도서관을 통해 자신이 변화되어감에 자신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 저나 자원봉사 샘들은 또 다른 할 일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샘~ 다른 도서관하고 차별되는 거 뭐 그런 거 하나 맹글어보입시더."
"아이고~ 샘이 우째 그런 말 다하는교? 자질구레한 거 안 할 끼라 해놓고."
"그땐 그때고. 암튼 가을이고 하니 꽃잎에 막대기 붙여서 '꽃잎책갈피' 맹글어봐요. 네~?"
"그거 좋네. 그라믄 샘이 샘플 하나 맹글어보소."

못 한다고 뒷걸음 치던 자원봉사 새댁(?), 이제는 알아서 척척 만들기 구상을 해봅니다
▲ 손재주가 없다더니 이젠 제법 척척 합니다 못 한다고 뒷걸음 치던 자원봉사 새댁(?), 이제는 알아서 척척 만들기 구상을 해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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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잘 안 보인다던 이모님(?) 고모님(?)도 만들기에 푹 빠졌어요
▲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누가 보면 제가 너무 시킨다고 하겠죠? 눈에 잘 안 보인다던 이모님(?) 고모님(?)도 만들기에 푹 빠졌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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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하나로 웃음을 줄 수 있는 '마음 나누기'

곧 다른 축제 행사에 초청되어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자원봉사 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나가길 원했습니다. 매일 만들기만 시킨다고 한 소리 하던 자원봉사자들이었는데, 이젠 시시한 건 싫다고 새로움을 추구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코스모스도 만들고 해바라기도 만들고 별의 별 꽃 모양으로 샘플을 만들더니, 어느새 애들이 한눈에 반할 꽃잎을 만들어 막대기 하나 붙이고 눈알을 두 개 붙이니 웃고 있는 꽃잎이 되었습니다. 이렇다 할 반대 의견 없이 이구동성으로, 도서관 견학과 나중에 참여하게 될 행사 체험 품목으로 꽃잎책갈피가 낙찰되었습니다.

한동안 알록달록 꽃잎들이 도서관을 수놓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예쁜 꽃잎책갈피 하나씩 나눠줘야겠습니다. 도서관으로 하나 되는 마음은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웃음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 나누기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샘~ 단풍 지기 전에 우리도 함 주전 바닷가나 가을단풍 구경 가요."
"올해는 우째 이래저래 시간이 다 가부렀네. 미안쿠로."
"그러게. 함 가요."
"그랍시더. 제가 사는 태화동 십리대밭도 좋고, 도시락 싸서, 따신 커피는 제가 대령할게요."
"아이고, 그라믄 더 없이 좋제. 그람 우째 샘이 날 잡아보세요."
"알았심더. 가까운 날에 함 야외 나들이 가입시더."
"날은 샘이 잡고, 우린 얼릉 애들 만들기 준비합시다."

도서관을 통해 만난 사람들, 이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우리 도서관의 미래는 밝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괜히 오늘은 이 따사로운 가을 햇살만큼이나 자랑하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생각하며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이나 꽃바위작은도서관의 도서관지기인 제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그리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뒤로 물러나려 했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이 이 지역 아이들에게 작지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이 바로 작은도서관이 주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행하는 캐릭터 앞에 아이들이 한눈에 반했네요
▲ 작은 것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예쁩니다 유행하는 캐릭터 앞에 아이들이 한눈에 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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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샘들이 예쁘게 만든 책갈피. 요 예쁜 친구들이 앞으로 도서관에 자주 와서 책 많이 읽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 아이들에게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는 자원봉사 샘들 자원봉사 샘들이 예쁘게 만든 책갈피. 요 예쁜 친구들이 앞으로 도서관에 자주 와서 책 많이 읽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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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원봉사자, #체험, #견학, #꽃바위작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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