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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 역시 눈이 멀기를 바랐다. 사물의 눈에 보이는 거죽을 뚫고 들어가 내면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그 눈부신 불치의 실명상태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구절이다.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머는 전염병에 걸린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만 눈뜬 채다. 남편이 눈이 멀어 강제수용소로 향할 때 실명을 가장하여 함께 수용소에 갇힌다. 모두가 눈먼 세상에서 눈을 뜨고 있다는 게 너무 거추장스럽다. 여인은 마침내 자신도 눈이 멀어 내적인 것을 볼 수 있기를 갈망한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200여 일이 지났다. 사라마구의 표현을 빌자면 아직도 '불안한 밤'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를 지켜보는 따듯한 눈빛들은 아직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차라리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혼자만 눈뜨고 있음이 미안했던 안과의사의 아내가 된다.

'눈감은 자'가 진정 '눈뜬 자'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 외 11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14. 10 / 231쪽 / 5500원)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 외 11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14. 10 / 231쪽 / 5500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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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한 눈빛들이 모여 보고 느낀 것을 시리도록 아픈 마음으로 쏟아놓았다. 허버트 조지 웰즈의 단편 <눈먼 자들의 나라>를 차용한 걸까. 책은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이름으로 김애란씨 외 11인의 올올이 시린 마음들을 한 땀 한 땀 묶었다. 그들이 눈감았던 걸 죄송해하며.

조지 웰즈는 안데스 산맥 속에 있는 눈먼 사람들의 나라에서 왕 행세를 하려다 불구자로 오인 받고 탈출하는 한 사람 이야기를 한다. 사라마구의 주인공 안과의사의 부인이나 조지 웰즈의 왕이 되려던 주인공이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그래서 차라리 눈멀기를 바란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왕을 요구하지도, 눈뜬 자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12명의 지성들은 한 결 같이 눈먼 죄에 용서를 빈다.

온통 눈멀었는데 권세 잡은 이들은 눈을 떴다고 한다. 나라는 기울어졌는데 자신은 꼿꼿하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통령이 그렇고, 정치가 그렇고, 신자유주의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다. 이것은 가슴 아픈 역설이다. 온 나라가 눈멀었는데 기이하게도 눈뜬 사람이 이 나라에 너무 많다.

박만규씨는 '눈먼 자들의 국가'(책 이름이기도 한)라는 글에서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눈을 떠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역설로 들린다. 그만큼 '눈뜬 자'라는 이들이 눈 감고 있고, 눈 감았다 자책하는 이들이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땜빵, 고개 숙임, 사과, 담화 그리고 눈물, 이 모든 것들의 공허가 자신이 눈떴다는 자들로 인해 메아리만 찬란하다. 박만규씨는 아이들이 죽어가며 했던 "내 구명조끼 입어"라는 말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인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절규한다.

'사고'를 '사건'으로 만든 나라

세월호 사고, 세월호가 멈춰 섰을 때, 세월호가 기울어갈 때, 우리는 세월호에 해상사고가 났구나 생각했다. 맞다. 세월호가 보통 여객선이고 보면 해상사고다. 세월호는 사고에서 그쳤어야 했다. 사고가 잘 처리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건이 되고 말았다. 사고를 사건이 되게 한 기적은 누가 뭐래도 국가가 만들었다.

하기야 그래서 막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교통사고 가지고 왜 이리 떠드느냐'고. '유가족이 벼슬이냐?'고. '차타고 가다 죽으면 대통령에게 가서 항의하느냐?'고. '이제 그만하자'고. '사고'를 '사건'으로 만들어 놓고는 여전히 '사고'라고 우기는 이들이 있어 가슴 아프다. 책에 의하면,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대한민국호는 진실을 못 본 체하고 있다. 사고를 내고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간 건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사고를 내고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였다. 그러니 '눈먼 자들의 나라'라 말하는 것이다. 해상사고가 났지만 전원 구조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해경은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에어포켓, 골든타임, 해경의 구조 등의 단어들을 기사화하며, 726명의 구조대원,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 거짓말이다.

진실은 4월 16일이나 지금이나 가려져 있다. '사고'가 '사건'이 되는 기적이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때 "그럴 듯한 말들이 주로 위에서 내려왔고" 이어 "책임을 지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결코 진실이 아니었다. 김애란씨는 정치인들의 그런 발언들을 '언어약탈자'란 말로 표현한다. 김행숙씨는 "미안하다"와 "부끄럽다"가 간신히 우리를 숨 쉬게 할 뿐이라고 자조한다.

'호러국가'여서 미안하다

국가는 유병언만 들쑤시다 결국 죽었다며 사건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누가 무엇이 이 사건을 최종 책임져야 하는가? "선박이 침몰한 사고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으로 만들고도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하면 되는 나라, 이 나라가 과연 눈먼 자들의 나라가 아닌가.

무엇보다 476명이 탄 선박이 침몰한 참사가 일어났는데 아무런 대책회의가 없었으며, 그 위중한 일곱 시간 동안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는 답변을 했다. 그날 국가는 없었다는 가설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본문 52쪽 중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었으나 독립성 보장이 우려되는 지금, '이것이 국가냐'는 물음과 '이것이 인간이냐'는 물음이 유효하다. 국민은 신자유주의의 의리가 통하는 사회이길 원하는 게 아니다. 홍철기씨의 말처럼, '공적 무능력'을 드러낸 사유화된 신자유주의의 정부를 원하지도 않는다. 세월호 가족들을 사적인 당사자로 모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책에서 김서영씨는 "햄릿이 '타자의 시간'에 사는 인물"이었다는 라캉의 말을 소개한다. 맞다. 우리는 모두 '타자의 시간'을 살아선 안 된다. 세월호가 잠길 때 대한민국호도 잠겼다. 이제라도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눈떴다 여기며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차라리 눈감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부끄러워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사건'이 된 세월호에서 나오는 길은 그들만의 눈먼(눈떴다고 말하지만) 리그에서 나오는 길밖에 없다. 잃었던 국가를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가족들과 국민의 질문에 이 나라는 대답해야만 한다. 배명훈씨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명 질문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사람 자리로 슬쩍 바꿔 앉는 순간에 붕괴될 것이다.(본문 113쪽 중에서)

전규찬씨는 '영원한 재난 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에서 우리나라를 '호러국가'라고 부른다. "국민 보호를 앞세워 권력을 독점한 주권자가 오히려 국민을 잡아먹는 '호러 스테이트(Horror State)'라 이름 붙이면 과연 과장인가?"라고 질문한다. 왜 이 표현이 이리도 공감이 갈까.

'호러국가'의 국민이어서 미안하다. 눈뜬(실은 눈감은) 자라는 이들 사이에서 눈 감고(실은 눈뜨고) 있어서 미안하다. 기울어진 나라에서 혼자만 꼿꼿해서 미안하다. 가라앉은 나라에서 아직도 두둥실 떠 있어서 미안하다. 열두 명의 미안함이 <눈먼 자들의 국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덧붙이는 글 |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 외 11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2014. 10 / 231쪽 / 5500원)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문학동네(2014)


태그:#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세월호,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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