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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상대로 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또 발생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성추행', '쌤앤파커스 고위 간부 성추행'과 '중소기업청 계약직 여직원 자살'에 이어 두 달 사이 알려진 것만 네 번째다. '직장 내 성희롱'이 법으로 명시되고, 성희롱예방교육을 의무화 한 지 올해로 15년이 흘렀지만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성희롱 사건 백서>를 보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오히려 느는 추세다. <오마이뉴스>는 두 차례에 걸쳐 직장 내 성희롱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이진영(30,가명)씨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이진영씨는 그일이 있고 난 뒤 몸무게가 30kg대로 변했다. 그는 법적싸움 과정에서 식욕을 잃었다고 전했다.
▲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이진영(30,가명)씨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이진영씨는 그일이 있고 난 뒤 몸무게가 30kg대로 변했다. 그는 법적싸움 과정에서 식욕을 잃었다고 전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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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밥을 먹어요, 먹기 싫어서. 식욕과의 전쟁이에요."

쌤앤파커스 성추행 피해자 이진영(30,가명)씨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몸무게가 30kg대까지 빠졌다. 한눈에 봐도 보통 여성의 체형보다 훨씬 더 왜소했다. 진영씨는 지난 2013년 7월 회사에 성추행 사실을 알린 뒤 지금까지 가해자와 법적 싸움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식욕을 잃었다. 이제는 "울면서 밥을 먹는다"는 말을 웃으며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왜 상무님께 맞춰드리지 않았니?"... 수습사원의 이중고

진영씨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히트를 친 대형출판사 쌤앤파커스의 수습사원이었다. 2011년 4월 17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차지한 자리였다. 그는 매일 출근시간보다 1시간 빠른 오전 8시쯤 사무실에 도착해 블라인드를 거두고 냉·난방기를 켰다.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는 시속 150km로 달리며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게 17개월 동안 수습사원이었다. 두 차례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었지만 점수 미달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날은 진영씨에게 온 세 번째 기회였다. 가해자 이아무개 상무는 정사원 발표를 코앞에 두고 최종면접 성격의 술자리를 제안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술자리가 있었다. 술자리 다음날 진영씨는 소속 부서 팀장에게 "저는 맥주를 마시고, 상무님은 소주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왜 상무님께 맞춰드리지 않았느냐"는 책망을 듣기도 했다.

그날은 모든 걸 상무에게 맞추기로 했다. 진영씨는 '무엇을 마시겠느냐'는 상무의 질문에 주저 없이 "소주"라고 답했다. 소주 세 잔이면 얼굴이 불콰해지는 그는 그날 소주 한 병 반을 마셨다. 상무의 오피스텔로 따라 들어간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선물 받은 감 와인을 맛보게 해주겠다며 오피스텔로 안내한 상무는 옷을 벗으라고 지시하고 침대로 끌고 가 입을 맞췄다.

그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진영씨는 10개월 동안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회사 안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2013년 7월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9월께 회사를 나오면서 이 상무를 '업무 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올해 4월 이 상무가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고, 키스를 한 점은 인정했지만 "(진영씨의) 저항이 없었다"며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이 상무가 진영씨에게 위력을 행사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현재 진영씨는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주로 권력 관계 안에서 발생... 피해자가 불이익 받기도

연차가 낮은 평사원은 직장 내 성희롱의 주된 피해자다. 특히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수습사원이나 비정규직은 상사가 자신의 위력을 행사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다. 최근 두 달 사이 잇따라 알려진 세 사건의 피해자 역시 그랬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성희롱과 성추행 등을 호소하다 지난 9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권아무개(25)씨는 계약직이었고, 서울대공원 성추행·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들은 파견직이다. 쌤앤파커스 피해자 진영씨는 수습사원이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성희롱 사건 백서'를 보면 처리된 1152개 사건 중 중간관리자 이상이 평직원을 성희롱한 경우가 80.2%를 차지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직장 내 성폭력을 호소한 이들의 절반 이상(64.8%)은 고용주와 상사로부터 피해를 당했다. 앞서 나온 국가인권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70% 이상이 사회생활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20~30대였다.

직장 내 성희롱이 주로 권력 관계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받아내기 어려운 처지다. 회사 안 약자들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공식적인 분쟁 처리 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고평법)도 이 점을 고려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즉시 개입해 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만약 성희롱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도 사업주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된다.

법과 현실 사이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고평법은 성희롱 피해자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생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해고 등의 불리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여성노동자회 등의 상담 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국여성민우회로 접수된 성희롱 상담 사례(718건) 중 23%(162건)는 피해자 불이익 조치 때문이었다.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 사례(469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제가 왜 휴가를 가야 하나요?"... 피해자가 떠나는 일터

쌤앤파커스 피해자 진영씨도 불이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그가 회사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이 상무는 전 직원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한 뒤 사표를 쓰고 나갔다. 별도의 징계는 없었다. 이 상무가 떠난 이후 회사 분위기는 묘하게 흘렀다. 회사 대표는 이 상무 퇴사 후에 본인도 사임을 발표하면서 "어떤 이익을 대가로 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물론,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에 응하는 사람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전 직원 앞에서 말했다.

진영씨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전 직원이 대청소를 하는 날, 다른 부서의 한 상사가 진영씨에게 가시 돋친 말투로 "(가해자인) 이 상무님 방을 치우라"고 지시했다. 황당한 진영씨가 불만을 표하자 또 다른 상사가 다가와 "그게 뭐가 문제냐"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얼마 뒤 진영씨는 "이 상태에서는 일하기 힘드니 휴가를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원치 않는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휴가 첫날을 맞이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그는 "'소문이 새어 나간다'는 이유로 마케터의 기본 업무인 외근을 자제시켰고, 내근을 하며 SNS 관리를 맡았을 때는 한 상사가 등 뒤를 오가며 모니터를 살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쌤앤파커스는 지난 9월 18일에 입장을 내고 "피해자의 괴로움을 고려해 외근업무를 배려한다고 노력했으나 오히려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물론,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7월 서울대공원의 5급·6급 공무원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김희지(23,가명)씨는 파견직을 관리하는 서비스용역실장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네가 처리해야 할 일'이라는 답을 들었다. 결국 그가 대면하기 껄끄러운 가해자와 만나 직접 사과를 받아낸 뒤, 약속대로 사직서에 '개인사유'라고 쓰고 퇴사했다.

그와 함께 일한 한 동료가 "그만 둔 줄도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사건은 조용히 처리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공무원들은 다른 동료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이후에야 대기발령 상태로 바뀌었다.

성희롱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지난 9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소기업중앙회 비정규직 권아무개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씨는 숨지기 두 달 전쯤 자신이 당한 성희롱 사실 일곱 가지를 조목조목 나열해 직속 상사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거기엔 직속상사의 성희롱 사실도 포함돼 있었다. 매뉴얼대로라면 사내 고충처리위원회를 통해 비공개로 해결해야 했지만, 직속상사는 전화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내비치며 권씨를 다독이는 것으로 마무리해버렸다. 직속상사는 권씨가 숨진 뒤에야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가해자 징계하고 조직 문화 바꾸려는 노력 필요"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 마는 분위기 속에서 직장 내 성희롱은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회사 안의 공식 기구가 사건을 처리하고,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공론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야만 성희롱을 '짓궂은 장난'쯤으로 치부하는 조직문화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 기구가 존재하는 것과 더불어 기구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소희 활동가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는 고충처리실과 성희롱 담당자를 두는 등 형식은 갖춰놓았지만, 실질적인 내용까지 담보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우회 상담실로 '이것이 성희롱이 맞는지' '이런 경우 어느 정도 징계를 내려야 하는지' 등을 묻는 전화가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자주 걸려 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활동가는 "회사는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는 일을 외부 전문가에게 떠넘길 게 아니라 회사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며 조직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의 공개 사과문을 일정 기간 동안 게시해서 조직이 성희롱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거나,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성희롱 사건 처리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활동가는 "고용노동부가 모든 민간 사업장에서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했지만, 대규모로 이뤄지거나 동영상 강좌로 대체하는 등 내실이 떨어지는 실정"이라며 "전반적으로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희롱이 발생한 사업장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 맞춤형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측은 "근로감독관 900여 명이 민간 사업장에서 성희롱 예방과 모성보호 등에 대해 지도감독을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에 360만 개가 넘는 모든 사업장을 꼼꼼히 살피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현재 직장 내 성희롱 근절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맡겨 둔 상태이며, 그 결과를 토대로 제도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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