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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우리는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하나' 화가 나기도 했다. 가슴 뛰게 희망적이다가도 '넘사벽'이라는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오연호가 발로 뛰며 보여준 덴마크는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굉장하고 아름답지만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사는 나에게는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가 대세로 되면서 관심은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에게로 쏠렸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을 동경하면서, 한국 사회의 복지국가 이행을 위한 전망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북유럽 국가들을 조명하는 책들의 출간 러시도 이어졌다.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여타의 책들에 비해 확실한 차별성 있다면, 바로 '오연호'라는 이름 석자다. '덴마크가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탐사보도 전문가다운 근성이 빛나는 책이다.

과연 미국이었다면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표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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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지인들과 더불어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일을 하다 보니, 덴마크의 '스반흘름(Svanholm) 마을공동체' 이야기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35년간 '경제 생태 공동체'를 실험해오고 있는 스반흘름 마을은 공동소유, 100% 유기농 자급자족, 더불어 사는 삶, 모두가 주인인 마을을 실천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한다.

스반흘름의 구성원들은 월급의 80%를 마을공동체에 내고 20%만 개인이 소유한다. OECD 국가 중 불평등 지수가 가장 낮은 덴마크에서도 스반흘름의 불평등 지수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저자는 묻는다. 이들은 어떻게 개인 소유라는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들은 행복할까?

스반흘름 사람들이 소비 욕망을 통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덴마크의 복지 정책과 마을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없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도전이 가능하다. 이것이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 사회에서 대안적인 마을공동체 실험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과연 미국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건강보험, 실업보조금 등 사회 복지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 실패하면 타격이 크죠. 그런데 덴마크는 병원비가 평생 무료고 실업보조금도 2년 이상 나올 정도로 여러 기본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잖아요. 실험을 하다 실패해도 괜찮은 거죠." (135쪽)

사회 복지가 취약하고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 공동체 운동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발적 가난, 소박한 삶,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통해 행복한 삶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의 길이 언제나 '비단길'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나 또한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사보험을 모두 끊고 최대한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공동체를 '내 인생의 보험'으로 여기며 살고는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감수하고 각오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대안 공동체 운동이 '공동체'라는 이름 석자가 만든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급의 80%를 공동체에 내고 자신은 20%만 소유하면서도 행복하다는 그들이 어찌 부럽지 않겠나. 스반흘름과 같은 마을공동체가 아니더라도 덴마크 국민들은 저소득층은 36%, 고소득층은 50% 정도를 세금으로 낸다. 소득불평등과 조세저항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수치다. 우리 사회도 덴마크처럼 변화할 수 있을까.

진짜 '작은 정부'란 이럴 때 쓰는 말

"코펜하겐의 중앙역에서 덴마크 사람 두 명이 열차의 앞자리에 탔다고 합시다. 종점까지는 45분 정도 걸리는데, 출발역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두 사람은 종점에서 내리기 전에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합의합니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보통 있는 일이죠."(108쪽)

협동조합 만들기 참 쉽다. 50대 후반의 변호사인 에리크 크리스티안센이 들려주는 이 짧은 일화에서 덴마크가 어떤 사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덴마크를 '조직의 나라'라고 말했다. 덴마크에서는 사람들간의 신뢰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강하게 발달해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 각종 시민참여형 모임이 활발하다.

두 사람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조직할 정도로 협동조합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는 '협동조합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조합원 총회에서 만든 정관만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으니 굳이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고, 국가는 이를 간섭하는 대신 지원하는 역할만을 하는 나라. 진짜 '작은 정부'란 이럴 때 써야 하는 말이 아닌가. 이제 막 협동조합 붐이 일기 시작한 한국의 갈 길이 참 멀어 보인다.

덴마크에서 사회 복지 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돕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다. 덴마크인들은 국가 복지 제도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행복지수 1위'는 제도적 안정에만 기대지 않고, 풍부한 '사회적 자본'으로 신뢰와 평등의 문화를 정착시켜 온 그들의 노력이 만든 성적표다.

덴마크의 모습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50여 년에 걸친 각성과 노력으로 대를 이어 일궈온 것이다. 150년 전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룬트비가 주도한 '깨어있는 농민 되기 운동'이 출발점이었다.

당시 주요 시민이었던 농민들이 각성되어야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농민 학교'를 열고 교육 운동을 펼쳤다. 이곳을 거쳐간 인재들이 덴마크의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가 됐다. 이들은 전국에서 협동조합을 일구고 오늘날 덴마크 모델의 근간이 된 115년 전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낸 주역들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우선 이것부터 인정하자. 씨 뿌리지 않고 거두려 해서는 안된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는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덴마크에는 150여 년에 걸친 '깨어 있는 시민 만들기'가 있었다. 오랜 세월을 투자했고, 리더가 있었으며, 리더를 신뢰하고 따라준 시민들이 있었다. 길게 보고 뚜벅뚜벅 가자. 설익었는데 뚜껑을 열고 밥 맛을 논하지 말자. 핵심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위한 나의 일을 찾는 것이다. (262쪽)

저출산 고령화 쇼크에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한국사회의 내적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긴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호흡도 중요하겠지만, 오늘의 현실을 미래 세대에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혁신적인 사고와 강한 의지를 가진 우리안의 '그룬트비'들이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150년 전에 덴마크인들이 그러했듯이.

덧붙이는 글 |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씀, 오마이북 펴냄, 2014년 9월, 318쪽, 1만6000원
*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복지국가, #복지사회, #덴마크, #공동체,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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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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