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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가 남아있는 난지 한강공원 강변길.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가 남아있는 난지 한강공원 강변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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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남단에서 자전거 타고 여행하듯 달릴 수 있는 코스가 여의도~암사동이라면, 한강 북단엔 난지한강공원~서울숲~뚝섬 유원지~광나루(광진정보도서관) 코스가 있다. 둘 다 주행거리 약 27km의 거리로 누구나 즐겁게 자전거로 달릴 수 있어 좋다. 한결 선선해진 바람과 민낯에 쬐도 부담 없는 한낮의 부드러운 햇살, 중간 중간에 가끔씩 나타나는 완만한 언덕길은 힘들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강변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한강 북단의 자전거도로 코스에도 유구한 한강 역사에 어울리는 명소와 풍경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계절마다 여러 번 달려가도 식상하거나 지겹지가 않다. 자전거 여행의 들머리로 삼은 하늘공원, 노을공원,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길 등 명소가 많은 난지한강공원은 불어오는 강바람에 물결치는 억새꽃들이 만발한 강변길이 참 좋아 빼놓을 수 없는 자전거 코스다. 손 흔들며 반기는 억새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기분이 한층 신난다.

강변에서 감상하는 애절한 태평소, '땡땡땡' 철길 건널목 소리

절두산 절벽 아래 눈길을 끄는 철문, 신부와 수녀들이 퇴직을 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문이란다.
 절두산 절벽 아래 눈길을 끄는 철문, 신부와 수녀들이 퇴직을 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문이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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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탄 할아버지가 애절하고도 멋들어지게 들려준 태평소 연주.
 휠체어탄 할아버지가 애절하고도 멋들어지게 들려준 태평소 연주.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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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성산대교 밑을 지나 옛날엔 양화진이라 불렀던 합정동 강변을 지나면 누구나 고개를 들어 쳐다보게 되는 '절두산'이 나타난다. 원래 이름 '잠두봉'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비극적인 역사의 사연을 품고 '절두산'으로 바뀌었다.

절두산 아래를 지날 때마다 절벽 아래에 덩굴 잎사귀가 가득한 철문에 눈길이 머물게 된다. 절두산 안에 있는 천주교 성당의 신부, 수녀가 퇴직을 하고 나오는 의미있는 문이라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 퇴직문을 나서면 어떤 세상을 맞게 될지 절두산 아래를 지날 적마다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이다.

마포대교가 위로 지나가는 마포 나들목에서 웬 농악소리가 들려와 자전거 페달을 멈추었다. 동네 주민센터에서 취미로 풍물을 배우는 노인들이 한강가에 나와 이렇게 연습을 한단다. 우리의 농악소리는 역시 야외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가 독주로 들려준 태평소(혹은 날라리, 새납) 소리는 들을수록 가슴을 뛰게 하는 신명과 애절함이 느껴졌다. 농악대의 맨 앞에서 장쾌한 소리를 내며 단순히 흥만 돋우는 악기가 아니었다. 80년대 작은 거인이라고 불리던 가수 김수철이 이 태평소에 미쳐서 국악인으로 전향을 했는데 그럴 만하다 싶었다. 

자전거 여행의 첫 번째 쉼터로 정한 곳은 한강대교 북단 바로 위에 있는 작고 전망 좋은 카페다. 다리 양쪽으로 2개가 있는 카페의 이름은 재미있게도 '견우와 직녀'다. 한강자전거도로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카페 내부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편하다. 한강다리 위에 붙어 있는 카페이니 만큼 강 주변 조망이 참 좋아 자전거족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잠수교 북단을 지나가다 들려오는 '땡땡땡~' 소리의 진원지,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잠수교 북단을 지나가다 들려오는 '땡땡땡~' 소리의 진원지,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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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대교를 머리에 이고 있는 잠수교는 한강 남단과 북단을 손쉽게 이어주는 자전거족의 가교 역할을 하는 다리다. 1976년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겨났지만, 이젠 차량보다 보행자와 자전거족을 더 우대하는 친인간적인 다리가 되었다. '달빛무지개분수'로 중국, 일본 여행객들까지 찾아오는 명물 한강다리지만, 내겐 반포대교 밑을 지나는 철길 건널목이 있어 꼭 들르게 되는 곳이다.  

잠수교 북단 언덕위로 오르면 어디선가에서 "땡땡땡~" 향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련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소리를 따라 가면 정말 도심 속 보기드문 풍경이 나타난다. 낡은 철로 위로 빨간 테두리를 한 길고 둔중한 차단봉이 서있는 '서빙고 북부 건널목'이다. 직원 두 분이 3교대로 근무하는 유인 철도 건널목으로 서울에 몇 개 안 남은 귀한 건널목이다.

하품이 나올 것 같은 한가하고 고요한 건널목에 '땡땡땡' 신호음이 울리면 주변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사무실 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역무원 아저씨는 어느 새 빨간봉을 손에 들고 나타나고 '정지' 안내판이 달린 차단봉이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차량들을 일제히 멈추어 세운다. 곧이어 중앙선 전철, 경춘선 열차, 화물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윽고 차단봉이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민들과 차량들이 부지런히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언제봐도 정답게 다가온다.

꽃사슴들이 사는 공원, 뚝섬의 오래된 시장 '뚝도시장'

귀여운 꽃사슴에게 먹이를 주면 눈을 맞출수 있는 서울숲.
 귀여운 꽃사슴에게 먹이를 주면 눈을 맞출수 있는 서울숲.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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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센트럴파크, 런던엔 하이드파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서울숲이 있다! 35만 평의 규모로 조성된 서울에서 3번째로 큰 공원답게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구석구석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강변을 따라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겸 자전거길을 통해 갈 수 있어 꼭 들르게 되는 곳이다.

서울숲이 자리하고 있는 뚝섬은 원래 유원지가 있던 곳으로 옛날 시외로 피서를 나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와서 놀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밤섬, 노들섬, 선유도가 한강의 섬이지만, 여의도를 비롯 뚝섬, 잠실(잠실도), 난지도는 한강의 대표적 자연섬 혹은 하중도(河中島)였다. 하중도는 강이 오랜 시간 흐르면서 모래 등의 퇴적물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생긴 섬이다.

장마철 한강을 따라 흘러들어 온 모래와 흙은 자연 제방과 삼각주 섬을 형성했다. 한강변 지명에 섬 도(島)와 나루 진(津) 자가 많이 들어 있는 이유다. 양화진(합정)부터 노량진, 이촌, 뚝섬, 광나루(광진)까지 은빛 백사장으로 이어져 강(江)수욕을 즐기던 자연 휴양지였단다.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에 갇혀 강물인 듯 강물 아닌 강물 같은 지금의 한강 풍경을 보면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사슴용 먹이를 파는 자판기에서 풀을 뽑아 귀여운 꽃사슴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마치 대나무 숲같이 하늘을 가리는 은행나무 숲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 보기도 했다. 색색의 단풍같은 잉어들이 몰려다니는 연못과 단풍나무길이 늘어서있어 늦가을의 멋진 경치를 기대하게 하는 곳이다.

신발을 파는 양화점, 자전차 가게, 토탈 의류점이 남아있는 오래된 시장 뚝도 시장.
 신발을 파는 양화점, 자전차 가게, 토탈 의류점이 남아있는 오래된 시장 뚝도 시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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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에서 나와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다보면 바닥에 '뚝도시장'이란 글씨가 크게 써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강가에서 이렇게 바닥에 시장 이름이 써있는 것도 처음보고 뚝섬의 한자어가 분명한 시장의 이름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화살표를 따라 시장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뚝도시장(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이었던 곳이라더니, 처음 마주친 허름한 자전거 가게 이름이 '동일 자전차'다. 사실 자전거는 도로 교통법상에 차와 같은 법규를 적용받는 이륜차로 나와 있음을 보면 정확한 표기다.

자전차 가게로 인해 한껏 기대하고 찾아간 뚝도시장은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침체 상태였다. 과거 서울의 대표 재래시장답게 시장 골목이 미로처럼 깊고, 도로 양편으로 넓게 퍼져 있다. 시장이 커서 그런지 문 닫은 가게들이 흔히 보이는 시장골목의 그늘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시장 골목을 지나는 손님은 가끔씩 눈에 띄었고, 텅 비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바로 인근에 시장통의 모든 가게들을 빨아들일 듯 진공청소기처럼 자리하고 있는 이마트와 홈플러스, 큰 개인 슈퍼에만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재래시장들처럼 주변 대형마트에 손님들을 뺏기면서 서서히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이다. 맛집들이 모여 있는 그러나 한산한 골목에 들어가 자전차 가게 아저씨가 추천한 코다리찜을 먹었다.

2인분이 기본이지만 배고픈 자전거족에게 특별히 1인분을 마련해준 식당 아저씨도, '뚝도 방앗간' 아주머니도 뚝도시장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말에 기운이 없다. 이웃 동네인 2호선 전철 성수역 부근 성수동엔 '수제화 거리'가 생겨나면서 세련된 아트 공방이나 갤러리, 카페들이 성업 중인 것과 대조되는 풍경이다. 뚝도시장의 가게들도 수제화 거리의 구두 가게들처럼 활기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그의 에세이에서 자기가 사는 도시의 가게 이름을 죽 나열한다. 출석을 부르듯 호명하는 가게들 이름은 무려 세 페이지를 넘어간다. 이스탄불에 대한 그의 기억과 애정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슈퍼마켓, 빵집, 피자 가게, 미용실, 옷 가게, 철물점... 이런 작은 가게들과 시장이 사라져가고 공룡같은 대형마트들과 백화점만 있는 도시는 작가에게도 시민들에게도 살 만한 도시가 아니다.

한강변을 풍성하게 해주는 건축물 '자벌레'

한강가 뚝섬 유원지의 명물이 된 문화 복합관 건축물 '자벌레'
 한강가 뚝섬 유원지의 명물이 된 문화 복합관 건축물 '자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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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도 치고 마음껏 뒹굴 수 있는 푹신하고 너른 풀밭과 한강이 보이는 야외 수영장, 강위를 둥둥 떠다니는 오리배들을 탈 수 있는 뚝섬한강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자벌레'라는 건축물 때문이다.

한껏 움츠렸다 온몸을 쭉 뻗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벌레'를 형상화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SF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우주선 같이 보이기도 한다. 안에는 전망대, 갤러리, 매점, 작은 도서관 등이 알차게 들어서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의 무난하고 보수적인 공공건물 일색인 도시에서 이런 건축물을 만나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넓은 보행로가 있어 한강을 여유롭게 걸어서 건너기 좋은 광진교와 광나루 지구를 지나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지점인 광진 정보도서관이 나온다. 풍광 좋은 강변에 있는데다 수려한 벚꽃나무들이 무성해 어느 곳보다 책 읽기 좋은 도서관이다. 도서관 1층 마당에 값도 저렴하고 한강이 보이는 야외 카페가 있어 달달한 카페 라떼를 마시며 자전거 여행을 마치기 좋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조금 더 남쪽으로 달리면 경기도 구리시 이정표가 나온다. 내친 김에 알록달록 예쁜 코스모스꽃이 드넓게 펼쳐진 구리 한강공원까지 달려 갔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강변을 따라 경기도까지 닿았다는 생각에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올 때 대중교통편을 이용한다면 5호선 광나루역이 한강가에서 가깝다. 

ㅇ 주요 자전거 여행 코스 : 난지 한강공원 – 절두산 성지 – 한강대교 위 카페 – 잠수교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 서울숲 – 뚝도 시장 - 뚝섬 유원지 자벌레 – 광진정보도서관

덧붙이는 글 | 10월 중에 두세 번 다녀 왔습니다.



태그:#한강 자전거여행, #서울숲, #서빙고 북부 건널목, #뚝도 시장, #뚝섬 자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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