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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안나푸르나 띠망에서 가루까지 가는 길. 갈수록 설상가상이다. 내 처지 말고 히말라야가.
 안나푸르나 띠망에서 가루까지 가는 길. 갈수록 설상가상이다. 내 처지 말고 히말라야가.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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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 달린 나무문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삐걱. 문을 여니 이른 새벽의 찬 공기가 슬그머니 새어 들어왔다. 마나출루의 봉우리가 달아오르고 있구나. 막 스위치를 켠 다리미처럼. 붉게 붉게 달아오르다, 뜨거운 햇살이 하얀 설산 위로 출렁. 넘쳐흘렀다.

공기가 조금 따뜻해지길 기다리며, 간단한 아침 식사와 차를 한잔했다. 나무 벽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찬 공기에 춥게 잤는지, 더스틴은 몸이 좋지 않단다. 그럼 오늘은 조금만 걷자.

세네 시간을 걸으니 차메 마을이다. 크다. 어제 띠망 초입에서 만난 포터도 차메에 간다고 했었지. 등에 커다란 문을 지고, 찬 공기를 입김으로 불어내며 산을 오르던 포터. 무겁고 큰 짐을 지고도 밝게 웃던, 악수까지 건네던 포터의 모습. 눈에 어린다.

띠망에서 차메로 가는 길.
 띠망에서 차메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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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메. 병원도, PC방도 있는 큰 마을이다.
 차메. 병원도, PC방도 있는 큰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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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메 마을을 나와 조금 더 걸었다. 평지라 힘들지는 않지만 공기가 차다. 어느새 해발 3000m.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이슬에 젖은 옷에 온몸이 오슬오슬하다. 아직 반팔 차림인 두 팔이 저리다. 차메에서 멈출 걸 그랬나. 더스틴 컨디션도 좋리지 않고... 아무 산장에나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후드득. 하늘 높이 솟은 침엽나무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둔 후드티를 꺼냈다. 여름은 끝이다. 어느새 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을 속을 걷고 있다. 지체하다간 소나기 속에서 산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에 무뎌진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빗물이 떨어진 길 위에서 흙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차메 마을을 나오는 길. 당나귀 무리가 와서 길을 양보했다.
 차메 마을을 나오는 길. 당나귀 무리가 와서 길을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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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과 초록의 나무. 그리고 당나귀.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과 초록의 나무. 그리고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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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늑한 불빛이 드문드문 보인다. 듀크레포카리 마을이다. 빗물을 가르며 산장을 향해 뛰었다. 얼른 들어오라며 맞아주는 산장 식구들과 트레커들. 넓고 깨끗한 방으로 들어가 비를 털어내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창 밖으로 비가 무섭게 쏟아진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해도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다.

후드득. 하늘 높이 솟은 침엽 나무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둔 후드티를 꺼냈다. 여름은 끝이다. 어느새 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을 속을 걷고 있다.
 후드득. 하늘 높이 솟은 침엽 나무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둔 후드티를 꺼냈다. 여름은 끝이다. 어느새 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을 속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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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레포카리로 가는 길.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소나기가 세차게 떨어졌다.
 듀크레포카리로 가는 길.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소나기가 세차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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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식사는 미국인 마커스와 프랑스인 니코, 그리고 영국인 로스와 함께다. 40대 중반의 마커스가 대화를 이끌었다. 평생 여행만 하며 살았는지 안 가본 곳이 없는 마커스. 히말라야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장장 5개월이 걸리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 걸었다. 필리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1, 2년 정도 일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장기 여행을 간다고 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 일한다.

"가족과 빚만 없다면, 가능한 생활이에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히말라야에 와서 자주 드는 생각이다. 5년 동안 여행을 했다는 조세프도, 필리핀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여행을 하는 마커스도.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걷기에 줄을 서야 하고, 조금만 지체하고 방심하면 '낙오자'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온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다.

그들의 인생이 정답인 건 아니다. 어떤 인생이 옳고 어떤 인생은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숨만 쉬며 살고 있는지, 정말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내 인생의 객체로 살고 있는지, 주체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적어도 그들은 묻고 있지 않은가. 시도해 보고 있지 않은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기엔, 나는 아직 겁이 많다.

모두가 다르지만 누구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이 모인 산장 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 밤새 비가 쏟아지고 나면, 봉우리 사이에 잔뜩 껴있던 구름도 모두 거둬질 것이다. 비가 온다고 나쁠 것도 없다. 하늘은 더 청량하게 개어 있을 테니까.

듀크레포카리 가는길. 침엽수림에 사이의 설산.
 듀크레포카리 가는길. 침엽수림에 사이의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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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설상가상, 내 처지 말고 히말라야가


다음날. 비와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듀크레포카리의 얼굴이 맑게 개었다. 손에 잡힐 듯한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림 같은 마을이다.

비와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듀크레포카리의 얼굴이 맑게 개었다.
 비와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듀크레포카리의 얼굴이 맑게 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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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레포카리의 아침. 손에 잡힐듯한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림 같은 마을이다.
 듀크레포카리의 아침. 손에 잡힐듯한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림 같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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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발 4000m 높이까지 오른다. 듀크레포카리의 고도는 3120m. 이미 고도 3000m가 넘는 이곳에서 하루 만에 1000m를 더 올라야 한다. 경사도 경사려니와, 해발 3000m 이상부터 나타날 수 있는 고산병 증상에도 조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조심하고, 조금 더 천천히 가자. 물론. 지금도 그 누구보다 천천히 걷고 있지만.

듀크레포카리에서 나왈까지 이어지는 길은 두 가지다. 어퍼 피상(Upper Pisang)과 로워 피상(Lower Pisang). 강물을 따라 이어지는 로워 피상이 지름길이다. 마커스와 니코는 로워 피상을 거쳐, 20km 거리에 있는 마낭까지 간다며 새벽 6시에 길을 나섰다. 천천히 걸으며 설산의 경치를 즐기고 싶다면, 힘과 시간이 조금 더 드는 어퍼 피상으로 오르면 된다.

안나푸르나에서 한시바삐 벗어날 이유가 없는 우리의 선택은 어퍼 피상이다. 모두가 마낭을 향해 걷는다. 속도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다. 머무는 마을도, 만나는 사람도, 하루하루의 경험도 다르다. 목적지는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가고자 하는 속도로, 내가 선택한 길로. 걷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 갈수록 설상가상이다. 내 처지 말고 히말라야가. 설상가상. 말 그대로, 어느 천 년에 내려 얼어붙었을지 모를 눈 위로, 어제와 오늘의 눈이 켜켜이 쌓여 있다. 몸 전체를 하얀 눈으로 덮은 거대한 산들. 서로의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선다.

어느 천 년에 내려 얼어붙었을지 모를 눈 위로, 어제와 오늘의 눈이 켜켜이 쌓여 있다. 몸 전체를 하얀 눈으로 덮은 거대한 산들. 서로의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선다.
 어느 천 년에 내려 얼어붙었을지 모를 눈 위로, 어제와 오늘의 눈이 켜켜이 쌓여 있다. 몸 전체를 하얀 눈으로 덮은 거대한 산들. 서로의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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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 피상. 어퍼 피상은 안나푸르나 2봉이 마을의 전면을 수호신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어퍼 피상. 어퍼 피상은 안나푸르나 2봉이 마을의 전면을 수호신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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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 피상은 안나푸르나 2봉이 마을의 전면을 수호신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이곳의 풍경을, 오늘이 아니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마주할까. 오늘 얼마나 더 멀리 걷는지, 정상에 얼마나 빨리 닿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안나푸르나 2봉에 적절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봉우리가 바로 앞으로 보이는 식당 2층으로 올라가 차를 주문했다.

춥다. 아침에 잠깐 입었다가 벗어버리곤 하던 잠바였는데. 오늘은 계속 입고 걸었다. 땀을 흘린 후 마시기에는 조금 덥던 차도, 이제는 몸을 녹이기에 적절한 온도다. 어퍼 피상의 고도는 3300m. 이쯤 오니 마을의 풍경도 조금 다르다.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은 마을 사람들의 머리에는 커다란 털모자도 하나씩 쓰여 있다.

2층 식당 아래로, 털모자를 쓴 아저씨 네 명이 동그랗게 모여 있다. 작은 환타 병을 든 아저씨가, 동그랗게 오므린 다른 아저씨들의 두 손에 한 모금 분량의 환타를 조금씩 따랐다. 두 손에 환타를 받아든 아저씨. 차가운 청량음료를 단숨에 들이킨다. "캬!" 세상에 다시 없을 청량한 감탄사를 내지르더니,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는다.

어퍼 피상의 고도는 3,300m. 이쯤 오니 마을의 풍경도 조금 다르다.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은 마을 사람들의 머리에는 커다란 털모자도 하나씩 쓰여 있다.
 어퍼 피상의 고도는 3,300m. 이쯤 오니 마을의 풍경도 조금 다르다.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은 마을 사람들의 머리에는 커다란 털모자도 하나씩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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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깐 입었다가 벗어버리곤 하던 잠바였는데. 오늘은 계속 입고 걸었다. 땀을 흘린 후 마시기에는 조금 덥던 차도, 이제는 몸을 녹이기에 적절한 온도다.
 아침에 잠깐 입었다가 벗어버리곤 하던 잠바였는데. 오늘은 계속 입고 걸었다. 땀을 흘린 후 마시기에는 조금 덥던 차도, 이제는 몸을 녹이기에 적절한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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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 피상과 다음 마을 가루 사이에는 700m의 고도차가 있다. 마을을 벗어나니 역시나. 4000m 고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길이 등장한다. 이틀 전이었던가. 길가에서 잠시 말을 섞은 적이 있는 이스라엘 트레커 세 명이 길을 오르고 있다.

나보다 속도가 빠른 더스틴. 속도가 비슷한 이스라엘 트레커들과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고도의 경사길을 숨도 고르지 않고 오르는 저들. 나만 힘든 거야? 시킴 갱톡에서 지프를 타고 4000m 고도의 쏭고 호수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을 내 두 발로 올라와 본 적은 없다. 머리가 멍하다. 산소가 부족한지 숨도 차다. 아닌가. 고산병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몸이 꾀병을 부리나.

길 위에는 언제 내렸는지 모를, 채 녹지 않은 하얀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미처 하얀색으로 채우지 못한 땅을 메우려는지, 하늘에서 하얀 눈이 조금씩 떨어졌다. 마침 가루에 도착한 참이다. 오늘 목적지는 다음 마을인 나왈이지만, 한 시간 거리인 나왈까지 내 속도록 걷다간 함박눈이 떨어지는 길 위에서 갇혀 버릴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시킴 갱톡에서 지프를 타고 4,000m 고도의 쏭고 호수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을 내 두 발로 올라와 본 적은 없다. 머리가 멍하다. 산소가 부족한지 숨도 차다. 아닌가. 고산병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몸이 꾀병을 부리나.
 시킴 갱톡에서 지프를 타고 4,000m 고도의 쏭고 호수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을 내 두 발로 올라와 본 적은 없다. 머리가 멍하다. 산소가 부족한지 숨도 차다. 아닌가. 고산병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몸이 꾀병을 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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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 피상과 다음 마을 가루 사이에는 700m의 고도차가 있다. 마을을 벗어나니 역시나. 4,000m 고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길이 등장한다. 이틀 전이었던가. 길가에서 잠시 말을 섞은 적이 있는 이스라엘 트레커 세 명이 길을 오르고 있다.
 어퍼 피상과 다음 마을 가루 사이에는 700m의 고도차가 있다. 마을을 벗어나니 역시나. 4,000m 고도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길이 등장한다. 이틀 전이었던가. 길가에서 잠시 말을 섞은 적이 있는 이스라엘 트레커 세 명이 길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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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산길 위에 가까스로 자리한 작은 산장의 가격은 50루피(한화 약 700원). 산 위로 올라갈수록 비싸진다는 산장과 음식 가격에 겁을 잔뜩 먹었지만, 언젠가부터 음식 가격은 비슷하고 산장 가격은 100루피를 넘는 법이 없다. 설산이 360도로 펼쳐진 산장의 가격이 700원이라니. 세상 어디에 이보다 저렴하고 경치 좋은 산장이 또 있을까.

이스라엘에서 온 트레커 세 명과 함께 차를 마셨다. 여자 둘 남자 하나. 안나푸르나 초입에서 만나 그때부터 같이 걸어왔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는 여자 한 명이 대화를 이끌어갔다. 알고 보니 미국 사람이다. 아니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 부모님이 이스라엘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민 2세대인데, 성인이 된 후 다시 이스라엘로 국적을 바꿨다. 

"군대에 가려고요.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남자건 여자건 다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되어 있어요. 군 복무를 할 나이가 돼서 미국 국적을 포기했어요. 다시 이스라엘 사람이 돼서 군대에 입대한 거죠."

같이 트레킹을 하는 친구 두 명도, 군대를 제대하고 여행을 온 경우다. 인도에서건 네팔에서건,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스라엘 여행자들의 특징은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이다. 대부분, 군대를 제대한 후 군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 애초에 무리지어 다니지만, 여행길에서 무리짓는 것 또한 좋아한다.

사흘 후에는 마낭에서 유대인 명절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사람끼리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축제 날짜에 맞추려면 오늘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 그들. 차를 마시는 사이 눈발은 더 굵어졌다. 굵은 눈발 사이를, 트레커 세 명이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눈 내리는 가루 마을
 눈 내리는 가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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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군대에 갔다면 조금 더 강해졌을까. 아니 더 약해졌을까. 단체생활. 군대문화. 이런 건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나다. 국적을 다시 바꿔서까지 군대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도 군대에 갔다면 조금 더 강해졌을까. 아니 더 약해졌을까. 단체생활. 군대문화. 이런 건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나다. 국적을 다시 바꿔서까지 군대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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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군대에 갔다면 조금 더 강해졌을까. 아니 더 약해졌을까. 단체생활. 군대문화. 이런 건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나다. 국적을 다시 바꿔서까지 군대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족에 대한 충성심? 종교적 이유? 오래 고심했을 여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국적을 바꾸는 큰 결정을 스스로 내린 강단도, 어쩌면 대단하다.

이스라엘 트레커들이 떠나고, 조용한 산장에는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식목일이네. 한국에는 봄이 한창이겠구나. 큼직하게 떨어지는 함박눈을 보며, 한국의 봄을 떠올리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산장 주인이 몸을 녹이라며 숯불이 가득 든 통을 가져다준다. 빨갛게 피어오르는 숯불 위로 손을 올렸다. 찬 공기 탓인지, 금세 불씨가 사그라졌다.
 산장 주인이 몸을 녹이라며 숯불이 가득 든 통을 가져다준다. 빨갛게 피어오르는 숯불 위로 손을 올렸다. 찬 공기 탓인지, 금세 불씨가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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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가루. 산장 안.
 눈 내리는 가루. 산장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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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가루 마을.
 눈 내리는 가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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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주인이 몸을 녹이라며 숯불이 가득 든 통을 가져다준다. 빨갛게 피어오르는 숯불 위로 손을 올렸다. 찬 공기 탓인지, 금세 불씨가 사그라졌다. 산장 가족이 옹기종기 모인 부엌으로 들어갔다. 주인 아저씨는 양털을 짜고 있다. 그 옆으로, 젊은 여자가 태어난 지 몇 주 안 되어 보이는 갓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아련한 눈빛으로 아기를 바라보는 할머니. 그 옆으로 삼촌뻘 되는 젊은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오롯한 가족이다. 가족은 아마 오랜 옛날부터, 이 산장에서 삶을 일구며 살아왔을 테다.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태어난 저 아이도, 히말라야의 하얀 등자락을 오르내리며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띠망 마을의 볼 빨간 아이. 아마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땐, 더는 산에 살기 싫다며 도시로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눈 내리는 산장 안.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 주위에 모여든 가족의 모습. 도시 생활에 지쳐 산으로 온 나에겐 눈이 시린 풍경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좋은 삶을 갈망한다. 어쩌면 어떤 삶을 살던, 나와는 다른 삶을 갈망하고 열망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들도 가끔은 도시의 삶을 갈망할까. 불꽃에서 피어오른 아지랑이 사이로, 나와 그들의 눈빛이 오갔다. 서로가 가진 것을 갈망하는 눈빛들이, 아늑한 공기 사이에서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눈 내리는 산장 안.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 주위에 모여든 가족의 모습.
 눈 내리는 산장 안.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 주위에 모여든 가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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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나푸르나, #네팔 트레킹,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드,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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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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