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화천 산소길..."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묘지로 가는 길인 줄 안다. 북한강 최상류 강변을 따라 조성된 길옆엔 유독 풀이며 나무들이 많다.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의 맑은 물도 신선한 공기를 토해낸다. 그래서 이 길을 산소길이라 불렀다. 체험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북한강 100리길 중 9km구간의 타원형 코스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느끼는 운치는 늘 다르다. 이름 모를 꽃들로 치장했던 봄은 어느새 가을에게 연출을 넘겼다.

위로 오르면 파로호가 나온다.
 위로 오르면 파로호가 나온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오전 7시. 나는 산소길 폰툰다리에 들어서자마자 건너편 풍경을 담았다. 카메라 후레쉬에 놀란 '구만리' 마을이 부스스 잠에서 일어났다. 구만리란 마을 유래가 재미있다. 물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파로호'가 나온다. 그런데 이 호수의 원래 이름은 파로호가 아니었다. 대붕호라는 이름을 가졌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오랑캐를 크게 무찔렀다 하여 파(깨뜨릴 破), 로(오랑캐 虜), 호(湖)로 바뀌었다.

옛날 그 호수엔 전설속의 새 대붕이 살았었단다. 그 새가 한 번 날개 짓을 하면 구만리를 날았다고 해 파로호 둘레를 둘러싼 마을 이름이 구만리다.

폰툰다리 1km 시작 점.
 폰툰다리 1km 시작 점.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폰툰다리. 산소길의 얼굴마담이다. 배도 아닌 것이 물위에 떠 있는 길이는 무려 1km에 이른다. 바람이 아무리 흔들어서 끄떡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올라서도 요지부동이다. 이 폰툰다리 길의 탄생배경은 이렇다. MB정부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말했던 훨씬 이전에 화천군은 북한강변 자전거 100리길을 구상했다. 군민들이 매일 자전거를 타고 100리길을 달리면 100세 장수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다. 재미있는 건 이 길을 만든 지 10여 년이 지났건만, 이 길 때문에 100세를 살았다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매일 자전거로 이곳을 달린 사람이 없어서 일게다. 

단풍이 북한강 맑은 물에 얼굴을 씻었다.
 단풍이 북한강 맑은 물에 얼굴을 씻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산소길을 걸으면 세 개의 산(山) 만난다. 눈에 보이는 산, 물속에 비친 산. 마지막 하나는 마음속의 산이다. 물이 맑기 때문일까. 그동안 쌓였던 시름이 사라졌다. 

산삼 썩은 물맛은 약간 썼다.
 산삼 썩은 물맛은 약간 썼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폰툰다리 중간쯤에 샘터가 있다. 전국 최초 다리 위 우물이다. 강물을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했다면 왠지 꺼림칙하다. 물이 들어오는 호스를 찾았다. 산속 높은 곳 맑은 물을 끌어내려 이곳에 연결했다. 100년 묵은 썩은 산삼을 돌아 내려왔기 때문일까, 물맛은 신선함 뒤 쌉싸름함이 돌았다.

나무가 산소길에 반해 그곳을 덮었는지, 아니면 산소길이 나무밑을 지났는지 모를 일이다.
 나무가 산소길에 반해 그곳을 덮었는지, 아니면 산소길이 나무밑을 지났는지 모를 일이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산소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길을 덮은 나뭇가지가 있어 물과 다리 그리고 공간의 어울림 때문이다. 

강변옆 숲길. 가을은 추운 겨울에 대비해 낙엽 깔기에 한창이다.
 강변옆 숲길. 가을은 추운 겨울에 대비해 낙엽 깔기에 한창이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1km 길이의 폰툰다리를 지나자마자 흙길이 나왔다. 원시림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길을 만들 때 불도저 등의 장비를 동원하지 않았단다. 사람들이 모여 괭이와 삽으로 조성했다. 우뚝선 나무를 피하고, 커다란 바위를 피해 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인지 이 길 푯말엔 '머리조심'이란 글귀가 많다. 

한소길은 과거 강변에 만들어 놓았던 농로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한소길은 과거 강변에 만들어 놓았던 농로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폰툰다리(1km)와 원시림 숲길을 지나자 2m 정도 넓이의 시멘트 길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끌며 이곳까지 도착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소다. 딱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교행할 정도의 넓이로 만들어졌다.

마을, 카누, 물...산소길은 어떤 풍경도 조화를 만든다.
 마을, 카누, 물...산소길은 어떤 풍경도 조화를 만든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오전 8시 20분인데, 강물을 가로질러 보이는 마을은 늦잠을 잤다. 부스스한 모습이 흡사 언젠가 꿈결 속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고목에 단풍이 들었다.
 고목에 단풍이 들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나무는 담쟁이가 감아서 죽었다 하고, 담쟁이는 나무가 죽었기 때문에 감았다고 한다. 서로의 핑계가 어쩌면 이렇게 우리 사는 세상 같을까!

2시간 여 산소길 산책은 끝났다. 멀리 화천읍내가 보인다.
 2시간 여 산소길 산책은 끝났다. 멀리 화천읍내가 보인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산소길 끝자락에 이르자 화천읍내가 눈에 들어왔다. 38선 이북 마을. 매년 1월이면 한 달 새 150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산천어축제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물고기를 잡기 위해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얼음위에 모인 풍경에 대해 2011년 미국 CNN은 '세계 겨울철 7대 불가사의'로 산천어 축제를 꼽았다.

새벽 2시간 동안의 산책길에 펼쳐진 북한강변 풍경들. 요즘 힐링이 풍년이다. 아무 곳에나 가져다 붙인다. 산소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힐링이란 표현에 인색해 한단다. 한 5년쯤 젊어진 기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북한강, #산소길, #화천, #힐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