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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압도적인 '원전 유치 반대'로 끝났다. 투표에 참여한 삼척 시민 중 84.97%가 반대표를 행사했다. 투표인명부에 이름을 올린 주민 4만 2488명 중 2만 8867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삼척 시민 대다수가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투표율은 67.94%였다. 오후 8시 투표를 마감한 결과, 삼척원전 유치에 반대 의견을 나타낸 주민 수는 2만 4531명으로, 찬성표를 던진 주민 수인 4164명보다 2만 367명이 더 많았다. 이로써 삼척 시민들은 삼척원전 유치에 대한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무효는 172명이었다.

주민투표에 참여한 삼척 시민들.
 주민투표에 참여한 삼척 시민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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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삼척시는 그동안 삼척원전을 유치하는 문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이에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삼척 시민들은 그동안 이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전임 시장으로서 삼척원전 유치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김대수 전 시장은 삼척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당시 김대수 전 시장은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이유로, 2010년 3월 주민들로부터 원전 유치 찬성 서명을 받은 결과, 96.9%에 달하는 주민이 찬성에 서명을 한 사실을 들었다.

삼척시는 정부에 원전 유치 신청을 하면서 이 서명부를 삼척 시민들의 동의를 거친 자료로 제출했다. 결국 이 서명부는 정부가 2012년 말 삼척시 근덕면 일대를 원전 건설 예정 지역으로 지정고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정부는 근덕면 일대에 1500㎿급 가압경수로를 4기 이상 건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삼척시가 제출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는 이미 그 당시부터 조작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원전을 유치하는 데 주민 96.9%가 찬성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김대수 전 시장은 이 서명부가 삼척 시민들의 원전 유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주민투표를 거부했던 것이다.

정부 역시 이 서명부를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빌미로 삼았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원전 백지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양호 삼척시장이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자, 정부는 "원전에 관한 사안은 국가 사무에 해당하므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0년 당시 삼척시가 원전 유치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로 이미 삼척 시민들 대다수가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주민투표를 실시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부의 그 같은 주장은 삼척 시민들의 뜻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작 의혹이 제기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 일부. 같은 필적, 서명란에 일률적으로 동그라미만 친 사실이 확인된다.
 조작 의혹이 제기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 일부. 같은 필적, 서명란에 일률적으로 동그라미만 친 사실이 확인된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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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의혹 제기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

주민투표가 실시되기 하루 전인 8일, 김제남 의원(정의당)은 국정 감사 자리에서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이날 "그동안 행방불명됐던 삼척원전 유치 신청 서명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하고 그 내용을 확인한 결과 대리, 중복, 위조 서명 등 서명부가 조작된 정황이 다수 보인다"고 밝혔다.

이날 결국 삼척 시민들이 품었던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런 사실을 밝힌 뒤, "만약 이 서명부가 일부라도 조작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부가 조작된 문서를 근거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삼척원전은) 주민투표를 통해 삼척 주민들의 정당한 요구가 확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입수한 '삼척시 원자력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성 서명부'는 총 12권으로, 삼척 시민 5만 6551명의 서명이 수록돼 있다. 이 서명부는 당시 원전 유치에 나선 삼척시와 삼척시원자력산업유치협의회가 정부 기관과 한수원 등에 제출한 서명부 중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번에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만 놓고 봐도,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가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9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도 알 수 있듯, 84.97%의 주민이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는 주민투표 결과와 96.9%의 주민이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는 서명부는 그 내용에서 분명히 다른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원전 유치를 결정하는 데는 주민들의 의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비로소 주민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났다. 원전 유치 찬성 서명부를 근거로 주민투표를 거부하던 정부와 원전 찬성 측도 더 이상 주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삼척 시내 주민투표를 홍보하는 천막.
 삼척 시내 주민투표를 홍보하는 천막.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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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삼척 시민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삼척시에 '원전 반대 시장'이 당선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양호 시장은 시장 취임 첫 업무로 삼척원전 유치를 '주민투표'로 결정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삼척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겨우 시민들이 중심이 돼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었다.

8일 사전투표가 실시됐고, 9일 본투표가 실시됐다. 그리고 그 결과 삼척 시민 대다수가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4년 방폐장 유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안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을 제외하고, 원전 문제를 놓고 주민들이 직접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은 삼척이 처음이다.

주민투표는 국내 반핵 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는 삼척시와 마찬가지로 새로 원전을 유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영덕군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덕군은 그동안 삼척만큼 적극적으로 원전 반대 운동을 펼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삼척 주민들이 국내 반핵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민투표는 곧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삼척에서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에 이제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 할 때가 왔다.

삼척시의회 시의원이면서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에서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이광우 의원은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 9일 밤 기자와 한 통화에서, 정부가 "삼척 시민들의 뜻을 분명히 받아들여 즉각적으로 고시를 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삼척이 제2의 부안이 될 것이고 대정부 투쟁 역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정부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삼척 시민들의 갈망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척 시내 중심가 도로변에 나부끼는 반핵 리본들.
 삼척 시내 중심가 도로변에 나부끼는 반핵 리본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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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척원전,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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