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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돌탑을 만든 이는 구미시 도량동에 거주하시는 김용수씨(67)다.
▲ 등을 보이고 있는 분이 바로 오형돌탑의 주인공 오형돌탑을 만든 이는 구미시 도량동에 거주하시는 김용수씨(67)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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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가 험하기로 유명한 금오산 정상부에는 '오형돌탑'이라는 걸출한 명소가 있다. 하나의 관광명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려한 경관도 필수요소지만, 오랜 시간의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

금오산 매표소를 지나 할딱고개를 거쳐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마애석불과 정상을 향하는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오형돌탑은 이곳에서 마애석불 방면으로 500m 거리에 위치한다.

마애석불 방면을 알리는 푯말의 밑에는 오형돌탑을 알리는 푯말을 덧대어 붙여놓았다. 모양새로 보아 금오산도립공원 측에서 만든 것 같지는 않은 비공식적인 푯말이다.

오형돌탑은 금오산도립공원측으로 부터 아직 인정받지 못해 정식 푯말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 오형돌탑을 알리는 푯말 오형돌탑은 금오산도립공원측으로 부터 아직 인정받지 못해 정식 푯말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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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약사암을 거쳐 내려오다가 우연히 보게 된 신비로운 오형돌탑을 보며 "이렇게 험한 낭떠러지에서 누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공들여 탑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후 친구들과 함께 금오산을 다시 찾은 난, 친구들에게 오형돌탑을 보여주기 위해 또다시 정상을 지나 약사암을 거쳐 내려오게 되었다. 평일에 혼자 왔을 때와는 대조적으로 일요일이라서 많은 등산객들이 오형돌탑을 찾았다.

다시금 오형돌탑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한 분이 말하기를 부처님 얼굴에 빛이 난다며 돌탑 속의 작은 부처님 상을 가리켰다.

오형돌탑속의 부처님에게서 빛이 발하는 듯한 신기한 현상을 체험했다.
▲ 빛이나는 돌탑속의 부처님 상 오형돌탑속의 부처님에게서 빛이 발하는 듯한 신기한 현상을 체험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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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처님의 얼굴에 빛이 비쳐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처님상 아래에 놓은 10원짜리 동전에 반사되어 나온 빛임을 알게 되었다. "참 신비롭지요?"라며 허허 웃음 지며 얘기하시는 분의 말투와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빛이 난 부처님이 있는 돌탑의 맞은편에는 글귀가 적힌 넓적한 돌판과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함께 있었다. 옆에는 방금 전에 말을 했던 한 분이 서 계셨다. 문득 돌탑을 만든 장본인일 거란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오형돌탑을 만드신 분이 맞지요?"라고 먼저 물어보니, 또다시 허허 웃음 지으신다. 죽은 손자를 기리기 위해 오형돌탑을 쌓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 돌탑에 얽힌 사연을 물어보았다.

등산객들은 오형돌탑에 얽힌 사연을 듣곤 숙연해 했다.
▲ 손주를 기일을 맞아 꽃을 가져다 놓은 오형돌탑의 장본인 김용수씨 등산객들은 오형돌탑에 얽힌 사연을 듣곤 숙연해 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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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이 기일이며, 낙동강에 죽은 손주의 재를 뿌렸고, 손주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돌탑을 쌓았다고 하신다. 이름의 유래는 금오산의 '오'자와 손주의 이름에 '형'자를 따서 오형돌탑이란 이름을 만들게 되었단다.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한 위치의 돌탑은 어떻게 쌓았는지 물어보니 웃으시며 비밀이라고 말씀하셨다.

돌탑의 주인공 옆에서 얘기를 듣던 등산객들은 그동안 홀로 외로이 돌탑을 쌓은 주인공의 고생이 가슴에 와 닿은 듯 그동안 참으로 애 많이 쓰셨다며 한마디씩 건넨다.

아찔한 낭떠러지의 끄트머리에 만들어 놓은 돌탑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보면 행여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지나 않을까 싶어, 도립공원 측에 얘기해 안전 설비 같은 것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하면 어떨까 하고 의견 드려보았다. 본인 또한 전에도 여러 번 구미시청에 부탁을 하고 건의했지만, 구미시청에서는 일말의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정성 들여 돌탑을 쌓은 공덕으로 인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어 기쁘다며 얘기하시는 어르신의 표정은 근심걱정이 없으신 듯 편안해 보였다. 손주에 대한 사연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미소 띤 얼굴의 어르신에게 혹시나 마음 한켠의 아픈 곳을 건드릴까 싶어 참기로 했다.

집으로 되돌아와 오형돌탑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실제로 10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손주를 위해 공든 탑을 쌓아온 어르신의 정성에 비례하듯, 오형돌탑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니터 화면을 가득 메웠다.

가슴 애틋한 사연이 가득한 오형돌탑을 찾은 이날은 형석이의 기일이었다.
▲ 손주 형석이를 기리는 글귀 가슴 애틋한 사연이 가득한 오형돌탑을 찾은 이날은 형석이의 기일이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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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에 의하면, 뇌 병변 장애로 인해 손주 형석이는 태어날 때부터 말하지도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아픔을 겪고 있는 손주를 위해 자식들을 대신해 돌봐왔는데, 형석이는 10살이 되던 해에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손주를 그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둘씩 쌓은 돌탑은 어느새 금오산의 상징이 되어 있었고, 태어나 등교를 단 하루밖에 못 한 형석이를 위해 '오형학당'이라는 돌탑을 쌓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석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알려주려고 한 듯 이곳 오형돌탑에 있는 돌로 만든 우리나라 지도와 우주선 모양의 돌탑의 의미가 비로소 더욱 내 가슴에 와 닿았다.

하늘 나라에 있는 형석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알도록 해주는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우주선 모양의 돌탑 하늘 나라에 있는 형석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알도록 해주는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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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르신에게 있어 오형돌탑은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고 평생토록 지속될 삶의 연장선이 된 곳이다. 어르신이 손주 형석이를 기리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9년간 매주 두세 번씩 무거운 돌들을 쉼 없이 날라 만든 이곳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되어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어르신에겐 즐거운 곳이 되었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 어르신이 올 때면 하늘나라에 있는 손주 형석이도 놀러와 오형돌탑에 노닐다 갈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의 애틋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관만 하고 있는 도립공원과 구미시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어르신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닿아 언젠가는 더욱 안정되고 길이 남을 금오산 자락의 한 부분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오산 오형돌탑, #세상에 이런일이 오형돌탑, #한국유통신문 오마이뉴스 후원, #구미김샘수학과학전문학원 수학무료동영상강의, #돌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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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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