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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8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 왕십리뉴타운 1구역 분양 모델하우스를 찾은 시민들이 견본주택을 보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 왕십리뉴타운 1구역 분양 모델하우스를 찾은 시민들이 견본주택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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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서울 약수동 달동네였다. 집주인은 문간방 쪽에 살았고, 우리 가족은 그 집 뒷방에 살았다. 집주인 네와 함께 떡볶이도 해 먹고, 작은 마당에서 김장도 같이 담그곤 했다. 생애 최초 놀이공원도 집주인 가족과 함께 갔다. 누가 부자랄 것도 누가 가난하다 할 것도 없이 그저 한 집 사는 동네 이웃이었다.

약수동 달동네에서 아랫마을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6~7세대가 함께 살았는데, 여기에서도 우린 뒷방에 살았다. 집이 평지였던 관계로 반지하인 것처럼 햇볕이 들지 않았다. 우리 형제·자매가 어려서 부모님은 염려가 많았지만, 산동네보다 아랫마을 평지가 더 낫다고 판단하고 이사한 것이다. 전세금 폭등으로 가장이 자살하는 그 시기, 집주인은 7년간 한 번도 전세금을 올려 받지 않았다.

평화도 잠시 이 지역 일대 재건축으로 내쫓기다시피 이삿짐을 싸야 했다. 그러나 집주인을 크게 원망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물론, 20여 년 전이라고 집 없는 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집주인이 난데없이 찾아 와 이것저것 물건을 강매했다. 엄마는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이지만 집주인이 들고 오니 어쩔 수 없이 샀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늦은 시간 찾아와 동네 시끄럽게 큰소리를 내고 가기도 했다. 귀여웠던 강아지는 집주인 반대로 키울 수 없었다. 애들 많은 집이 그렇듯 엄마는 집주인 눈치 보느라 하루하루 전전긍긍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집은 사람이 '사는(住) 곳'이 아닌, '사는(買) 것'이 되었고, 부동산 투기는 투자로 둔갑하여 부동산에 집단 광기가 몰아쳤다. 국가의 정책은 집 없는 사람에게는 유명무실했다. 법은 집 있는 자들의 것이었다.

집에 대한 현금 지분, 즉 전세가가 집의 70~80%에 달하는데도 세입자는 비합리적인 논리로 '을'이 된다. 반면 전세금과 주택담보 융자라는 빚을 안고 있는 집주인은 '갑'이 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가정을 꾸린 나의 신혼생활의 시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계약을 망연자실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물려받은 재산 없으면 피할 수 없는 '10년 세입자 인생'

나와 함께 근무했던 한 교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명문대 출신으로 임용고시에 합격한 공립학교 정교사인 A는 교사 3년차로 30살에 결혼을 했다. 신혼집은 월세 60만 원의 오피스텔이었다. B교사는 A교사와 같은 명문대 출신으로 발령도 비슷한 시기에 받았고 같은 나이인 30살에 결혼했다. 그러나 B교사는 부모로부터 3억 원 이상의 주택 매입 자금을 지원 받았다. 즉, A교사는 월세로 신혼을 시작했고, B교사는 부모의 도움으로 '내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2~3%대인 요즘 저축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A교사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팍팍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 해도 승천은 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를 졸업해도, 고시에 합격해도 우리나라의 평균 내 집 마련 기간인 '10년 세입자 인생'은 피할 수 없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 계속된다면 세입자 인생의 끝은 하우스 푸어로 전환할 때나 가능해진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요즘 저축만으로 내집을 마련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사진은 한 견본주택 모습.
 경제성장률이 낮은 요즘 저축만으로 내집을 마련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사진은 한 견본주택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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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높은 임대료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돈이 없는 성실한 노동자의 근로 의욕마저 짓밟고 있다. 재계약 때마다 마주하는 전·월세값 상승은 맞벌이 노동 소득으로도 따라 잡기 어렵다. 하우스 푸어는 차라리 사치다. 세입자는 전세 푸어, 월세 푸어라는 이름으로, '대출'이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는 위험한 거래를 하며 삶의 터전을 위태롭게 지켜나가고 있다.

세입자들은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집주인에게 줘야 한다(전·월세값).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받은 돈으로 자신들 자녀 공부에 필요한 소비를 한다. 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방치된다. 즉, 가난한 부모가 열심히 일해 모은 재화를 집 주인의 자녀가 소비하는 구조인 셈이다.

더 서글픈 현실은, 이렇게 방치돼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한 세입자 자녀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상황은 반복된다는 점이다(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않았을 경우). 그들 역시 부모들처럼 열심히 일해 집주인에게 임대료를 주고, 그 돈은 다시 집주인들의 노후 자금으로 쓰인다.

결과적으로 세입자 부모는 열심히 일해 집주인 자녀를 공부시키고, 세입자 자녀가 성인이 되어 번 돈은 다시 집주인의 노후 생활 안정에 쓰인다. 너무 극단적인가? 아니다. 현실이 이러하니 부자가 아닌 노동자를 가리켜 '노예'라 하고, 취업과 결혼, 출산의 기회 박탈로 '3포 세대'가 등장하는 것이다.

'부동산 임대업이 꿈인 나라' 이건 아니다. 집으로 인한 계급사회,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사회의 광기는 집단으로 짧은 시간에 전염되지만, 각성은 개개인별로 느리게 시작된다. 이래도 '투자'라 생각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 가난한 사람 등골을 빼 먹는 '합법적 등골브레이커'가 되고 싶은가?

'매운 전·월세 살이'의 신파극 주인공은 그만

'세입자'라 하면, '설움, 가난, 불편, 허술한 방범, 전세 만기가 돌아올 때의 불안, 치솟은 전·월세 값 공포, 고장 수리나 이사할 때 집주인과의 한판'. 이런 밑바닥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켜켜이 쌓아가며 '고통 받는 자'의 이미지와 동일시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70년대 대중문화의 코드였다. 노래 가사도 있었고, 똑같은 제목의 영화도 개봉되었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회전의자, 출세하여 억울함을 보상받고 나를 짓밟는 사람 위에서 그가 가진 것을 빼앗음과 동시에 지난날이 모두 용서되는 '출세'. 자식의 출세와 남편의 출세에 모든 걸 바쳤던 '70년대'식의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전의자가 아닌, 의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의자놀이'로 출세를 향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학생 무상급식으로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었던 선택적 무상급식을 받는 가난하고 불쌍한 학생에 대한 개념이 사라진 것처럼, 기초노령연금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노인 지원 대상의 개념이 사라진 것처럼 공공복지의 주거와 인간의 기본권으로서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 실질적인 방법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전국세입자협회'가 미약하게나마 조직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세입자를 위한 법과 제도가 없다면, 새롭게 만들어 가며 서로의 작은 손을 잡아주는 모임이다. 더 이상 '매운 전·월세살이'의 신파극 주인공이 돼 세입자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자. 세입자 vs. 집주인, 편 나누기는 갈등의 상처만 곪게 할 뿐이다. 세입자 권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시즌2 공모



태그:#세입자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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