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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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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는 거죠. 그게 김철수가 됐든, 이철수가 됐든 말이죠."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한국경제로 시작한 그와 이야기는 정치로 끝을 맺어가고 있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과). 최근 국내 정치사회에 일고 있는 '불평등'을 주제로 한 이른바 '자본' 논쟁의 한 가운데 그 역시 서 있다.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낸 <21세기 자본>이 세계적인 소득 불평등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국내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케티의 한국어 번역판이 서점에 소개됐을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자본'이 나왔다. 그것도 순수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장하성 교수가 3년 넘게 공들여 낸 책이었다.

그는 최근 '자본'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한국의 자본주의를 이야기하자"고 했다. 29일 방송된 <오마이뉴스> 데일리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한 장 교수는 "왜 다른 나라, 남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시키는가"라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의 연구와 책에 대해서도 "훌륭하다"고 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직설적인 어투와 비판은 오랜만이었다. 잠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요즘 우리의 경제에 대한, 자본주의 논쟁이 굉장히 파편적이에요. 우리나라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자본주의 논쟁이 지배하고 있어요. 안타까울 뿐이죠. 왜 다른 나라, 남의 이야기를 한국에 적용시켜서, 말하고 있는지…. 저는 우리 이야기를 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병을 앓고 있는데, 옆 병실에 있는 환자의 처방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 <한국자본주의>라는 책을 오랫동안 준비를 하셨다고 들었다. 왜 지금 이 책이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
"(곧장) 두 가지다. 국가경제 성장하는데 일반 국민들의 삶의 질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은 오르지 않고, 가계소득도 안 오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국가 경제가 왜 성장해야 하는지 소리없이 아우성을 내고 있다. 정말 절박한 상황이다. 소득 불균형 문제는 더이상 계층 간 문제가 아니다.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 구조의 모습과 대안을 담으려했다. 또 하나는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의 한국경제에 대한 논쟁이 매우 안타깝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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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양극화 계속되면 사회부정, 체제부정 위협갈 수도"

-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이른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인가.
"그럴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가 박정희 향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고성장은 철저한 계획경제에 따른 것이다. 또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없는 보수는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 없다. 그런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 진보좌파는?
"진보좌파도 그렇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시장보다 정부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 때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정부만 있었다. 그 시대 경제성장은 철저한 노동탄압과 정경유착, 부정부패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다. 일부 진보좌파 분들이 그시대 향수를 느끼는 것은 자기부정이고, 자기모순이라고 생각한다."

- 교수께선 책에서 '경제가 호전되어도 국민들은 점점 더 하층으로 몰린다는 사실은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쓰셨다.
"국민들에게 노동 소득은 자기 삶의 절대적이다. 외환위기까지는 경제성장과 기업, 가계소득이 비슷하게 가는 추세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가계, 노동자 간의 소득 괴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최근 5년에는 더 커졌다. 우리 경제는 17% 성장했는데, 노동자 실질임금은 2.5% 성장했을 뿐이다."

- 우리 월급봉투 수준이 거의 그대로?
"그렇다. 국민들 모두가 '경제가 성장했다는데, 굉장히 힘들다'고 하고있는데, 그것이 실제로 수치로도 드러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중산층이 얇아지고, 서민층이 많아지고,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게 되면 이들은 사회를 부정하게 된다. 체제부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회부정', '체제부정'이라는 단어도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비판에도 직설적이었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한국자본주의에 대해 우리가 치열한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최근 담뱃세와 주민세 등 증세에 대해서도 장 교수의 비판은 계속됐다. 그는 웃으면서 "나는 책에서 아예 '증세가 필요하다'고 단언적으로 썼다"고도 했다. 또 증세를 통한 복지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미  "선진국들은 복지에서 후퇴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제 복지를 시작하고 있다"고 썼다.

"최경환의 기업 내부유보금 과세, 김무성 반대하면 국민심판 해야"

하지만 증세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고소득자와 기업들의 세금부터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정작 세금을 내야 할 중산층과 서민들 다수가 세금을 낼 처지가 못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면서 "고소득자와 기업들의 세율부터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다.

"우선, 개인소득세 중에서 고소득자의 누진세율을 강화해야죠. 현재 상위 1% 고소득자의 세율이 23.5%예요. 상위 2%는 12.6%, 상위 3%는 9.8%인데요. 재벌총수 가족 중 소득이 1000억 원이 됐든, 1조 원이 됐든, 중견기업인과 세율이 같아요. 연봉 2억 원을 받는 사람이나 이건희 회장이나 세율이 같다는 거예요.

기업들에 매기는 법인세도 마찬가지예요. 그렇잖아도 실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은 더 낮아요. 그래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세율이 같다. 기업에 대한 세금 문제도 얼마든지 증세할 부분이 많은 거죠. 이미 잘못돼 있는 세금 구조, 특히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대한 왜곡된 누진 구조부터 바꾸면 복지를 위한 재원을 상당 부분 마련할 수 있는 거죠."

- 최경환 부총리가 기업들의 내부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추진 중인데.
"기업의 내부유보금에 대한 과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의 양극화, 불평등이 심해진 이유에 대해 일부에선 '소득재분배가 되지 않아서 그런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재분배가 아니라 원천적인 분배부터 되고 있지 않다. 원천적인 분배부터 되지않고 있는데, 재분배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 기업이 만들어낸 이익도 마찬가지다. 이익을 쌓아놓기만 하고, 분배를 하지 않으니까 노동소득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기업이 번 이익을 일차적으로 노동자 등에게 분배하도록 하는 게 초과내부유보세다."

- 하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입법화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있다.
"(곧장)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양극화 돼서 중산층이 얇아지면 체제를 부정하게 된다. 김무성 대표가 반대한다면 대안을 내놔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불평등이 뭐가 문제냐'고 국민들에게 인식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책임있는 발언이 아니다."

- 요즘 박근혜 정부가 비리기업인 사면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비리기업인 무관용 원칙을 이야기해 왔다. 이것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웃으면서) 바뀌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아직 실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라고 국민들이 요구해야 한다. 과거 비리 재벌총수들 사면해줬지만 과연 경제가 살아났나. 어떤 근거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전히 정치적 계산일 뿐이다. 일반국민들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다. 시장경제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정성, 법체계를 행정부가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 예전에는 경제민주화 얘기를 꺼내면 빨갱이라고 몰렸다. 이제는 박 대통령도 말로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한다. 교수께선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가야 한다고 지적하셨는데.
"한국사회는 양극화, 불평등,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不義)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정의의 반대말은 '의리'다.(웃음) 말하고 싶은 정의로운 경제는 정의로운 분배가 이뤄지는 경제를 말하는 것이다. 분배만큼 소유가 생기고, 소유의 정의와 공정한 경쟁의 정의가 생기게 마련이다."

- 장 교수는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는 스스로 소멸한다고 하셨다. 투표가 돈을 이겨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한국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
"요즘 청년세대들의 경우 사실상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있다. 처음 직장이 비정규직이 되고 있다. '1회용 노동자'로 나오고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투표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남좌파, 강북우파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난 계급배반 투표를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한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더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임금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웃음)
"(웃으면서) 웃을 일이 아니다. 맞다. 국가가 성장한 만큼 내 임금, 우리들에게 분배되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요구해야 한다. 기업들이 돈을 벌면 투자를 해야 한다. 그동안 쌓아둔 돈이 투자됐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누가 요구하겠는가.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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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유효... 제2의 안철수 나오면 도울것"

-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진심캠프에 계셨다. 왜 안철수에 주목하셨나.
"참, 지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은데, 2012년 봄부터 중국 상하이에 가 있었다. 이 책도 그때 상당히 썼다. 물론 정치에 전혀 관심없었다. 여야 대선 후보 쪽에서 연락이 왔지만, 받질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김종인 박사께서도 연락을 해오셨다.

과거 경제민주화 운동할 때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무지개를 쫓아다녔다.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대선 당시에 내 경험이 무지개를 좇는 이상론자들에게 힘이 된다면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끝까지 무지개를 좇아가지 못했다."

- 지난 2년간 안철수식 새정치는 성공했다고 평가하시나.
"안철수 의원은 정치인이 될 길을 걸어온 사람이 아니다. 나와 오래된 친분이 있었다. 내가 해야할 몫은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를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현상은 아직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김철수든, 이철수든 상관없다. 대선 때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가 진보세력이 오랫동안 주장했던 정책을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안철수 현상의 한 모습이었다.

국민들이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공통분모로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그 현상과 자신을 결국 일치시키지는 못했다. (안 의원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순수했고 정치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안철수현상을 다시 대변할 수 있는 대안적인 리더가 있다면, 굳이 집권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사회에 균형을 맞춰가는 사람이 있다면 돕고 싶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여전히 나는 현실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가장 최근에 만나는 정치인이 있다면 누구인지.
"(웃으면서) 음, 안철수 의원이다."

- 요즘에도 만나시는가.
"(웃으면서) 그렇다. 오래된 사이인데.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지 요즘도 만난다.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다. 언론에서 결별했다'고 하는데 정치인 이전에 오래된 삶도 있고 제가 아끼는 분이다. (웃으면서) 성공 못하면 다 헤어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만날 사람이 하나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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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하성, #한국자본주의, #장윤선의 팟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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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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