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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1972년에 발행된 고향마을 통계를 봤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그때 필자가 살고 있던 면(面)에는 자동차가 딱 1대 있었습니다. 그 즈음 고향마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차는 발전소에서 운행하던 트럭,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오시탱'이라고 부르던 트럭이 한 대 있었는데 그게 고향 면에서 유일한 자동차였나 봅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친구네 한 집만 해도 농업용 차량까지 합하면 차가 넉 대나 됩니다. 당장 정확한 통계는 제시하지 못하지만, 차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전화기도 그렇고….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것들이 여럿입니다.

많아진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없어진 것도 참 많습니다. 겨울방학이 되면 으레 시작하던 연날리기도 없어졌습니다. 밤만 되면 관솔불을 가득 채우고 휘휘 돌리던 망우리(쥐불놀이)도 이제는 거의 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그때는 그것들이 그냥 일상 속 놀이였는데 말입니다.

요즘도 가끔은 텔레비전을 통해 쥐불놀이나 연날리기를 하는 장면을 봅니다. 하지만 그건 기획하고 연출해서 보여주는 몇몇 사람들만의 놀이라고 생각될 정도여서 세시풍속이라 하기에도 서먹합니다.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로 이미 잊혀졌거나, 기억에서 조차 희미할 정도로 점점 잊어지고 있는 세시풍속이 참 많습니다. 연날리기나 쥐불놀이 말고도 연중행사로, 계절마다, 달마다 들어있 게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이름조차도 듣기 힘들어진 게 한둘 아닙니다.

그때, 1920∼1930년대에 볼 수 있었던 세시풍속

<조선총독부 기관지『조선』소재 1920∼1930년대 세시풍속> (엮은이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 옮긴이 최인학, 김민지 / 채륜 / 2014년 9월 10일 / 값 2만 3000원)
 <조선총독부 기관지『조선』소재 1920∼1930년대 세시풍속> (엮은이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 옮긴이 최인학, 김민지 / 채륜 / 2014년 9월 10일 / 값 2만 3000원)
ⓒ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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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엮은이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옮긴이 최인학, 김민지)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조선」에 연재되었던 1920∼1930년대 한궁의 세시풍속을 번역해 엮은 내용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문화나 세시풍속을 계승시키기 위해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보존을 위한 역사적 사료로 기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식민지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자료를 구축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필진을 동원해 기록하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책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친일노선을 걷던 오청(본명 오정섭)이 총독부 잡지 <조선>에 연재하고, <조선의 연중행사>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내용과 조선 총독부 편집 서기였던 신정현이 쓴 '조선의 풍속(음력정월)', <조선> 편집부에 쓴 '일본 본토와 유사한 조선의 풍습-연중행사에 관하여-', <조선>편집부 좌담회 기사를 차례로 엮었습니다.

책에서는 세시풍속을 월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월 조리걸기와 척사(윷놀이), 2월 청명일과 한식일, 3월 곡우, 4월 팔일의 등석,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등 정월 원일(元日)부터 섣달그믐날 올리던 묵은세배(舊歲拜)까지를 차례대로 소개하며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덕담과 대조되는 문안비(問安婢)라는 것이 있습니다. '문안비'라는 것은 안부를 묻는 여자 하인을 말하는 것으로 일부러 하인을 보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매우 좋은 해로 댁내의 행복을 빕니다. 자녀가 탄생하였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어르신이 무고하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당신의 가족이 승진하셨다니 얼마나 기쁘십니까."와 같은 여러 가지 인사말을 합니다. 덕담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 만나서 하는 것입니다.
이마무라 잘 차려 입히고 비교적 미인을 보냅니다.
이나바    재미있군요(웃음)
           심부름꾼이라고 해도 천한 여자가 아닙니다. 기품 있는 여자를 보냅니다.
무라야마 살아있는 연하장이군요. "귀댁의 만복을 기원합니다."라든가……. -<세시풍속> 131쪽-

그때 당시, 정월 초하루를 전후해 양반가에서나 이뤄졌을 법한 세시풍습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자필로 쓰거나 그린 연하편지도 아니고 용모단정한 사람을 보내 대신 새해인사를 시켰을 정도로 정월 세시는 격식을 차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세시풍속 더듬어 보기엔 충분

추석하면 언뜻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는 달맞이가 떠오르지만, 그때는 달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유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그때는 젊은 아가씨들이 달빛 아래서 누가 바늘에 실을 빨리 꿰는지를 경쟁했다고 하니 세시풍속이 어떻게 달라졌거나 변했는지를 어림해 볼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시풍속들이 비록 일본인 필자들이나 친일노선을 걷던 인사들에 의해 기록된 내용이긴 하지만 그때 당시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세시풍속을 더듬어 보기엔 충분할 거라 생각됩니다.

기억으로만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연중 세시풍속을 차례대로 떠올리며 뒤적여 볼 수 있는 회상의 독서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총독부 기관지「조선」소재 1920∼1930년대 세시풍속> (엮은이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 옮긴이 최인학, 김민지 / 채륜 / 2014년 9월 10일 / 값 2만 3000원)



1920~1930년대 세시풍속 -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소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최인학.김민지 옮김, 채륜(2014)


태그:#세시풍속,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 #김민지,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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