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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한민국의 진실과 정의는 무너졌는가?>
<모국을 부정하고 침까지 뱉는 교포 시위대>

분명 두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의 차이가 크다.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스펙트럼이 진하게 얹혀 있다. 그렇다면 위 두 제목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선뜻 감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면 힌트 하나. 두 제목의 공통분모는 '세월호'와 '박근혜'로 요약된다.

이 정도 힌트라면 아마 금세 감 잡았을 터. 하나(위)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에 게재된 광고의 제목이고, 다른 하나(아래)는 국내 유력 보수 일간지 사설 제목이다. 이젠 다른 나라 신문까지 들먹이며 '비판을 위한 억지 비교'를 한다며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광고와 칼럼은 분명 그 성격과 역할, 기능이 각각 다르다. 흔히 스트레이트 기사와 피처 기사, 광고를 신문의 3대 구성요소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피처성 기사인 칼럼(사설)과 금전으로 산 지면의 광고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격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자칫하면 전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망신살이 번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왜 "대한민국의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가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지수가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에 새삼스레 언론의 자유와 직결되는 진실과 정의의 척도를 들먹이고 싶진 않다. 다만 광고에 비친 제목과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대한민국 국격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신중하게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먼저 위의 제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4일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실린 세월호 3차 광고 문구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방문한 시점에서 환영하며 반기는 광고가 보이기는커녕 조롱과 멸시, 냉대가 가득 찬 제목과 내용이 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대한민국의 진실과 정의는 무너졌는가?(The Collapse of Truth and Justice in South Korea?)'란 질문을 광고 머리로 올렸을까?

광고가 게재된 배경을 알면 그 답이 확실해진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여성(주로 주부)들이 주도하여 박근혜 대통령 방미 시점에 올린 광고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 회원들의 아이디어로 고국의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지난 9일부터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indiegogo)'를 통해 모금한 기금으로 게재한 광고다. 세월호 참사 이후 덩달아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호'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밀었으면 이역만리 낯선 땅에 살면서 그런 광고를 계획했겠는가?

그것도 일주일 동안 모금운동을 통해 27개국 1629명이 모금 목표액인 5만8273달러(약 6000만 원)를 초과한 6만5820달러(약 6800만 원)를 모았다고 하니 가히 놀라운 일이다.

미주 여성들, 첫 여성 대통령 향해 이유 있는 비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에 창궐하는 거짓과 불의, 불통과 겁박, 비상식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한국에 있는 국민들보다 오히려 더 상세하고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력을 다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해야 할 한국 언론보다 오히려 과감한 지적을 하며 때마침 방문한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을 나무랐다.

이들은 광고에서 "세월호 참사 5개월이 지났지만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의문점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가와 정부의 한심한 행태를 질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직후 골든타임 동안 제대로 된 행정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나 설명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의 행방을 묻는 이들을 비난했다"고 꼬집었다.

광고는 ▲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 ▲ 공정성이 무너진 사법부 ▲ 깨어진 약속과 묵살된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 모든 책임의 꼭짓점에 있는 대통령의 약속이행과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그 많은 국내 언론들도 감히 권력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못하는 판국에 외국에 사는 여성 교포들이 비싼 신문의 지면을 돈을 주고 사 통렬하게 비판하고 주문하는 모습에서 그나마 희망이 엿보인다. 나라 망신은 나라 안에서 확산시키고, 그걸 나라 밖에서 추스르는 형국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정의와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이 턱없는 억지인가?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스캔들과 세월호 참사에 민감해진 여론을 달래고 집권 여당의 지방선거를 돕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을 철저히 조사할 수 있는 성역 없는 특별법 제정을 국민들에게 약속했었다"는 말이 억측인가?

<조선일보>, <뉴욕타임스> 광고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절대 빈말이 아니다. 모두가 지당한 말들이다. 오죽했으면 비싼 돈과 많은 시간을 들여 그런 주장을 미국 신문에 했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이고 상식 있는 위정자라면, 나아가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통치자라면 이 대목에서 곰곰이 역지사지하며 성찰해볼 때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오히려 국내에서 발행되는 유력 보수 일간지가 내놓은 다음 날 사설은 오히려 나라 밖 신문의 광고만도 못하다.

<조선일보>가 25일 쓴 '모국을 부정하고 침까지 뱉는 교포 시위대'란 사설은 차마 나라 밖에서 볼까 민망하고 낯 뜨겁다. "일부 한인 시위대가 캐나다·미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비방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설은 음모론과 물타기의 중간에서 교묘한 상관조정을 꾸며댔다.

"시위 계획을 사전에 예고한 '미시USA'라는 인터넷 게시판은 지난 5월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광고를 싣기 위해 모금운동이 벌어진 곳"이라고 주장한 사설은 <조선>의 탁월한 장점인 '악의적 음모론' 프레임에 가깝다.

그래놓고 신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여성 대통령을 향한 성적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청와대가 지시하고 국정원이 각본을 짰다'는 가당찮은 음모설까지 있었다"고 비난했다. 자신이 권력의 친위대 노릇을 하며 음모론을 설파했으면서도 먼 타국의 교포들까지 훈계하며 나무라는 행태는 혹세무민, 교언영색, 자가당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설은 그것도 모자라 고국을 위한 진정어린 충고와 고언을 하는 교포들을 향해 '종복', '반정부', '좌파 성향' 등의 딱지를 붙여대며 '모국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고 매도했다. 이것이야말로 나라 망신 아니고 무엇인가. 대통령과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이야말로 비상식과 불통, 불의에서 일탈하는 자정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만이  더 이상 나라 망신 시키지 않고 국격을 높이는 첩경일 테니 말이다.


태그:#세월호, #박근혜, #뉴욕타임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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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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