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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에서 나이든 언니들이 연이어 내뱉는 어머~ 어머~, 하는 코맹맹이 감탄사가 괜한 방송용 여음이 아니었다. 실제로 보는 크로아티아는 TV 속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인상적이었다.

추석연휴를 끼고 여름에 아껴두었던 휴가 5일을 보태어 요즘 핫한 여행지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꽃보다 누나> 방영 이후 세간에 많이 알려지면서 왠지 방송을 따라하는 것 같아 김이 샜지만 그래도 갔다.

'지상낙원이 보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버나드 쇼의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십 년 전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친구가 여름휴가를 크로아티아에서 보냈다며 엄지손가락을 열 번쯤은 치켜들었던 생각이 떠나질 않은 탓이다.

발칸반도의 서쪽, 아드리아 해에 면해 있는 크로아티아는 수도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동서로, 아드리아 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부메랑 모양의 나라다. 20세기 '세계의 화약고'라 불렸던 발칸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불과 20년 전 만 해도 전쟁의 포화가 울렸던 비극의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

그러나 1995년 UN의 중재로 전쟁이 끝나고 크로아티아란 이름으로 처음 출전한 1998년 월드컵에서 강호 독일과 네덜란드를 꺾고 3위에 올라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관광대국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한해 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나라가 됐다.

'도대체 이 나라 뭐지'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나의 이번 여행은 호사스럽게도 차를 렌트해 수도 자그레브에서 시작해 내륙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들른 후 아드리아 해를 따라 두브로브니크까지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아줌마의 대통령 자랑, 이유가 있었네

토요일 오전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민속의상을 입고 노래부르는 마을 주민들 모습. 옆에서 구경하고 있으면 어린 꼬마들이 무화과 든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무화과를 나눠주며 동전을 모금한다.
▲ 민속의상을 입고 노래부르는 마을 주민들 토요일 오전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민속의상을 입고 노래부르는 마을 주민들 모습. 옆에서 구경하고 있으면 어린 꼬마들이 무화과 든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무화과를 나눠주며 동전을 모금한다.
ⓒ 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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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도착한 탓일까? 자그레브는 9월 초임에도 약간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숙소 주인아줌마를 만난 순간 낯선 여행지의 밤공기가 주는 을씨년스러움은 이내 사라졌다. 아줌마의 수다가 유쾌하다 못해 푸근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말에 따르면, 크로아티아는 범죄율이 낮고 안전해서 밤늦게 돌아다녀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맘껏 돌아다니란다. 그리고는 맞은편 대각선 건물을 가리키더니 저기에 대통령이 살고 있어 경찰이 가끔씩 순찰도 돌기 때문에 이 지역은 특히 더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매우 소박하고 검소해 관저를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 서민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며 아줌마의 대통령 자랑은 줄줄이 이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경비원도 없는 그냥 평범한 건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무슨 이런데 대통령이 산다고?'하고 건성으로 듣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차를 가져다주는 렌터 카 회사 직원에게 숙소 위치를 설명하느라 혹시나 해서 아줌마한테 들은 대로 대통령이 사는 건물 맞은편인데 아냐고 했더니 곧바로 안다고 하는 것 아닌가. 순간 '뭐야, 진짜였어? 그럼 대통령이 옆집 아저씨야?'라는 생각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격랑의 바다에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찢어지는 가슴으로 몇 달씩 울며 애원해도 만나주지 않는 대통령도 있는데, 옆집에 살면서 오가며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통령이라니,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었다.

홍해 갈라지듯이 순식간에 갈라지는 도로

그런데 대통령만이 아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건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자그레브 시가지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구시가다 보니 도로는 좁은데 차는 많았다. 내심 어쩌나 하는 찰나, 홍해가 갈라지듯 순식간에 차들이 쩍, 하니 갈라지는 것이었다.

딱 3초였다. 구급차는 이내 멀리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차들은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넓은 도로가 아니었음에도 순서대로 착착착 빠져서 공간을 만드는 솜씨가 몸에 밴 습관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득 이런 사람들에게 긴급 자동차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는 차량에 범칙금을 물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한다는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면 뭐라고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나라에 살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는 난 그날 크로아티아가 좋아졌다.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1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빠지면 된다. 쭉쭉 뻗은 숲 사이로 난 고속도로의 풍경도 시원하고 좋았지만, 물의 요정들이 살 것 같은 라스토케 마을을 지나 플리트비체로 가는 꼬불꼬불한 산길은 무척이나 운치 있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매표소를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벨리키 폭포.
▲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내 벨리키 폭포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매표소를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벨리키 폭포.
ⓒ 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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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6개의 호수와 90여 개의 폭포가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으로 더없이 아름다웠다. 4시간여의 트레킹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걸으면 걸을수록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카르스트 지형이 많지만 물이 지하가 아닌 지면 위로 흐르는 모습은 무척 이채로웠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풍광을 만드는 건 자연만이 아니었다. 연중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만 마치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것처럼 그 넓은 국립공원이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맑고 투명해서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
▲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내 호수 속 물고기들 맑고 투명해서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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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립공원 내 운송수단은 오직 전기로만 움직이고, 다른 일체의 탈 것은 들어갈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매연 등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득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름철이면 계곡 곳곳, 바위틈 사이사이에 버려진 쓰레기로 눈살 찌푸리고,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사찰까지 매연과 먼지를 뿜으며 달리는 차로 인해 온전히 마음 편하게 걸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 덧붙여지지 않는 이상 세계문화유산은 훌륭한 자연환경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보여주고 있었다.

10년 무사고 경력의 나에게 운전을 다시 가르쳐주다

크로아티아 남단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아드리아 해를 끼고 해안도로를 타거나 혹은 고속도로를 타거나. 나는 자다르에서 스플리트까지는 해안도로를,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는 고속도로를 거쳐 해안도로를 탔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안도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아찔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7번 국도를 생각했다간 아득한 절벽 저 밑에서 출렁이는 아드리아 해를 보며 가는 내내 오금이 저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10년 무사고 경력의 나에게 운전을 다시 가르쳤다. 구급차에 길을 양보하는 기본에 감격했던 내가 크로아티아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의 원칙을 새로 배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1차로는 추월로, 2차로가 주행로라는 점이다.

제한속도 130km인 크로아티아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는 것이 아닌가. '뭐지? 경찰이 있다는 신호인가?' 온갖 추측을 하며 달리다 보니 이상하게도 차들이 모두 1차로는 비워둔 채 2차로로만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오가는 모든 차들이 그랬다. 추월할 때만 잠깐 1차로로 들어갔다 추월 후엔 곧바로 2차로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고속도로가 끝날 때까지 살펴보아도 심지어 국도에서도 차들은 모두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까의 그 깜빡이가 '너 왜 2차로가 아닌 1차로에서 달리고 있니?'하는 꾸짖음이라는 것을. 순간 무척 부끄러웠다. 10년 무사고라는 둥 혼자 나름 목에 힘주고 다녔는데, 한 마디로 나는 차를 몰고만 다닐 뿐 제대로 운전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을 하며 내가 보고 느낀 크로아티아는 기본과 원칙이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나라였다. 사람이 길을 건너려고 하면 차들은 무조건 정지, 사람보다 차가 먼저 움직이거나 사람을 위협해 운전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전쟁이 많은 곳이어서인지 크로아티아에선 늘 사람이 우선이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안전하다는 느낌과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국민들이 바다 속에서 죽어 가는데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대통령이나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모욕을 주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건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 빼어난 문화유산, 예쁜 집들 모두 멋졌지만 무엇보다 뇌리에 남는 건 사람을 배려하고 원칙과 기본을 중시하는 크로아티아의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상흔을 딛고 크로아티아를 관광대국으로 이끈 가장 큰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태그:#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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