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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주점 홍보 문제가 최근 몇 년간 거의 매번 문제가 되는 듯싶다. 주된 문제는 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반대론자의 주장은 왜 대학가에서 룸살롱처럼 영업하려 드느냐는 것이고, 찬성론자들은 주로 주점 사업의 참여자들은 우리끼리 합의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왜 외부에서 참견을 하냐고 반박한다. 이 논쟁에서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두 개다. 하나는 여성 담론의 문제, 하나는 대표성의 문제다.

담론하면 인문학도들이 습관처럼 글에 쓰는 단어라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담론은 하나의 대상을 둘러싼 모든 말과 글을 뜻하는 말이다. 이게 왜 중요한 개념이 되었느냐 하면 그 대상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점 홍보의 여성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여성이 성적으로 주체적인 존재가 되었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든 간에,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을 문제적인 주제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반대로 말하면 누구도 주점을 홍보하는 데 '모든 구성원이 반바지를 입는다는 것' 따위로 홍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지 길이나 치마(여기엔 약간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따위의 옷은 한 사람이나 행사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반바지는 안 되지만, 여성은 된다.

담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문제가 된 주점 포스터의 한 찬성론자가 '그렇다면 저기 여자 대신 남자가 있었어도 불편하냐'고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성이 비슷한 방식으로 등장한 포스터는 여성의 등장보다 덜 불편했을 것이고, 어쩌면 표현 방식에 따라 개그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왜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취급하느냐는 일침으로 이 찬성론자는 의도치 않게 여성 담론을 건드리게 됐다.

말하자면 문제의 포스터는 종속된 여성을 불편하게 드러냄으로써 지배적인 여성 담론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여성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에 유사 성매매(아주 약한 강도지만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나? 사실 여성 담론 자체를 없애는 방안은 '여성'을 한 인간이나 사건의 주요한 주제로 올리지 않는 것이다. 성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면 성에 차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정상적이다. 바지 길이로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판별하지 않는 것처럼.

다음은 대표성의 문제다. 대학가 주점 행사는 대부분 OO학과, OO섹션을 내걸고 한다. 이 말은 곧 그 주점 행사는 OO단체의 모든 구성원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지금 아마도 주점 행사의 주축일 13, 14학번 뿐 아니라 그 위에 포함된 모든 구성원을 대신해 행사에 나선 것이다. OO단체의 이름을 쓰는 한 그렇다.

만약 그 모든 구성원이 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하는 콘셉트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하면 원칙적으로 그 단체 바깥의 구성원이 그것을 갖고 참견할 순 없다. 물론, 그 앞에 OO대학교가 붙으면 대표성의 문제가 또 달라지겠지만. 그런데 이런 이상론을 갖고 무슨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겠나.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모두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면 행사가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최대한 많은 이들을 잘 대표할 수 있으려면 포스터와 행사에서 이야기하는 담론을 조금 넓힐 필요가 있다.

'여성'이 아니라 차라리 '성'이었으면 하는 거다. 여성이 포스터에 나와 남성을 유혹하는 버전 뿐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여기에 더해 동성이 동성을 유혹(물론 또다시, 호모포비아들의 거센 반발이 예견되긴 하지만)하는 버전을 만들면, 행사는 더 넓은 층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오늘 교내를 걷다가가 한 청소노동자가 길바닥에 붙은 포스터를 긁어 떼어내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닥에 허옇게 눌러 붙은 포스터를 땡볕 아래서 빗자루로 수십 번을 긁었다. 어떻게 홍보하든 간에, 뒷정리는 깔끔하게 했으면 좋겠다.


태그:#주점, #대학, #여성 담론, #대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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