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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섯 달 만에 쓰는 육아일기다. 지난 봄, 결혼 6년 만에 비로소 봄이 눈에 들어온다는 감격에 겨운 일기를 쓰고 찬란한 봄을 기대했지만, 잔인한 4월을 맞았다. 생때 같은 목숨과 함께 시간도 가라앉아 멈춘 듯했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빨리 흘러 어느새 가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손을 놓았던 육아일기를 다시 시작해본다. 셋째 낳기 전까진 블로그에 사진도 꾸준히 올리며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해 두었는데 셋째 출산 후 블로그는 잠정 휴업 중이다. 복댕이가 태어난 후부터 쓰기 시작한 <오마이뉴스> 육아일기에도 지난 봄부터 엄마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셋째 복댕이는 20개월을 가득 채웠고, 몇 달만 지나면 세 살이 된다.

육아의 하루는 길지만, 아이의 1년은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이다. 복댕이를 이만큼 키워놓고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갓난쟁이 엄마 시절이 그립다. 기록으로 남겨지 않은 세 아이의 시간들이 아깝고 미안하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들을, 남은 내 시간 중에 내가 가장 젊고 예쁜 지금의 시간들을.

이젠 나도 여섯살 엄마
▲ 젖먹이 엄마의 날들은 안녕 이젠 나도 여섯살 엄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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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육아일기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다섯 식구가 동네 치킨집으로 마실을 나갔다. 세 아이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둘러 앉았다. 수유도 거의 하지 않고 더 이상 임산부가 아닌 나는 편안하게 남편과 함께 생맥주를 시켰고 아이들은 준비 해 온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다섯 식구 다 같이 건배! 먹기 좋게 닭고기를 찢어 아이들 접시에 담아주니 복댕이까지 혼자 포크로 찍어서 먹었다.

몇 년 만의 밤나들이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더구나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즐기는 밤나들이는 처음인 듯했다. 아이를 업지 않고, 보채는 아이 달래지 않고,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각자 독립해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있다니! 이런 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정신없이 아이 셋 낳고 살아온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다섯 식구 모두 애를 참 많이 썼다. 그동안 내가 힘든 게 먼저라 남편에게 우는 소리도 많이 하고 아이들에겐 "엄마도 힘들다"며 부끄러운 투정도 했다. 처음 해보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허둥대며 보낸 지난날들. 그런 아내와 엄마를 기다려준 가족들 덕에 치킨집 회식이 가능한 날이 왔다. 몇 해만 더 자라면 애들만 집에 두고 남편과 둘이 영화 보러 가는 날도 오겠다.

생맥주 한잔,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 동네 치킨집 마실 생맥주 한잔,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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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댕이가 위 두 아이보다 빨리 독립하며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 못자며 24시간 풀타임으로 매달렸던 영유아기 육아가 한 단락 마무리되는구나 싶다. 아직도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캥거루 주머니'에선 거의 독립한 덩치는 세 살, 나이는 두 살인 복댕이다. 누나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며 만만한 형을 따라잡기 위해 걷기보다 뛰면서 자라는 우리집 막내.

첫째 아이 나이대로 사는 집이 있고, 막내의 나이대로 사는 집이 있다고 한다. 야무진 첫째와 승부욕 강한 둘째, 막무가내 막내 덕에 우리집은 여섯 살 첫째 까꿍이 나이로 산다. 엄마도 첫째 나이만큼 '여섯 살 엄마'로 이제 막 글자를 깨쳐 세상이 달리 보이는 한 단계 성장한 듯싶다. 몸이 힘든 시기에서 마음을 단련해야 하는 단계로의 진입.

까꿍이는 병설유치원 6세반 2학기에 접어들었다. 주말에도 유치원 가고 싶다던 아이는 개학날에 다음 방학날을 기다리는 꾀가 는 유치원생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씻고 입고 갈 옷과 신발을 골라놓고, 아침 메뉴를 주문하며 나를 깨운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혼자 글자를 깨쳐 막힘없이 책을 술술 읽어 유치원 가기 전에 두 동생들에게 책도 읽어주는 자상한 누나이다.

개학 전날 방학숙제 벼락치기.
 개학 전날 방학숙제 벼락치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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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걸어갈 길을 그려본다

내 잔소리에 때론 대들기도 하고, 문을 쾅 닫으며 방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엄마같은 두 동생의 누나로, 자매같은 엄마의 딸로, 애인같은 아빠의 딸로 자라고 있는 우리집 첫째 까꿍이. 유아에서 어린이로 향해 가는 까꿍이가 내 품이 아닌 세상의 품에서 스스로 자라는 모습을 보는 요즘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이젠 정말 내 품에서 독립을 했구나, '훈육'이라는 꼬리표는 이제 잔소리일 뿐이구나, 이젠 스스로 자라고 싶은 방향을 찾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구나….

아이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그려본다. 7살이 되어 선망의 대상인 형님반이 되면, 8살이 되어 학교에 가면.... 어떤 길이 펼쳐질까? 무엇에 제일 먼저 흥미를 가져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까? 용돈을 모아 제일 먼저 사는 건 뭘까? 언제 남자친구와 비밀을 만들며 설레는 날을 보낼가? 어떤 문제로 나에게 고집을 부리며 자아를 찾아갈까? 누구와 연애하고 누구와 결혼해 누구를 닮은 아이를 낳을까? 성미 급한 내 상상은 순식간에 몇 십년 후로 훌쩍 달려간다. 

까꿍이를 따라 산들이와 복댕이가 제 아빠 발보다 더 커진 어느 날이 따라 온다. 귀엽기만 한 두 녀석 목욕시켜 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꾀꼬리같은 목소리가 굵어지고 턱엔 수염도 나겠지. 밥투정하던 녀석들이 라면 다섯 개씩 끓여먹는 날이 곧 오겠지.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는 엄마 길을 가세요, 우리는 우리 길을 갈게요.
 엄마는 엄마 길을 가세요, 우리는 우리 길을 갈게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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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걷고 언제 말문이 트이며, 언제쯤이면 혼자 밥을 먹고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아도 혼자 잠을 잘 지... 조바심 내며 젖먹이의 하루를 키워내고 돌쟁이의 하루를 버텨내던 긴 터널 같은 날들의 끝이 보인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몸은 덜 고되지만, 머리가 아파온다더니 정말 그렇다. 세월호 사건 이후 이 사회의 모든 가치가 붕괴되고, 미래의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니 더더욱 그렇다.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보처럼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러나 답은 없다. 답을 내기엔 엄마인 내 나이도 이제 겨우 6살일 뿐이다. 6살, 4살, 제 멋대로 크는 2살 아이를 함께 키워보니 아이가 크는 건 아이들의 몫이지 싶다. 아이들은 내가 가르쳐 주는 세상보다, 내가 사는 세상,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을 취사선택해 자라고 있다.

나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

지난 봄 마을극단을 만들어 작은 도서관에서 동네 엄마들과 어린이극 한 편을 지어 올렸다. 아이를 업고 젖을 먹이며 도서관 한켠에서 아이들 낮잠 재우고 공연 연습을 했다. 아이들은 엄마들의 연습을 보다가 혼자 책을 보고 또래들과 어울려 놀며 마을극단과 함께 했다.

그렇게 공연 한 편을 함께 만들었던 아이들은 틈만 나면 누나 까꿍이의 연출 아래 공연을 만들며 논다. 여름 동안 제일 많이 자란 복댕이도 한 몫 하는 삼 남매의 '아무렇게나 공연'은 엄마인 내 눈엔 혼자 보기 정말 아깝다.

공연 준비로 끼니도 대충 챙겨준 날이 많아 미안했는데, 내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을 보니, 나만의 위해 마을극단 일을 한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간식만 챙겨주고 아이들끼리 놀게 하고 책상 앞에 매달려 글을 쓴다.

집에 있으면서도 일 하느라 바빠 책 한 권 자상하게 읽어주지 않고,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라 늘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하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꾸준히 자라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며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기에 미안함을 한 숟가락 덜어낸다.

가을 공연은 <팥죽할멈과 호랑이>
▲ 아이들과 함께 꿈꾸는 마을극단 밥상 가을 공연은 <팥죽할멈과 호랑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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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내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의 고민으로 발전한다. 요즘 들어 까꿍이가 자주 묻는다.

"엄마는 뭐가 되었어? 아빠는 뭐가 되었어? 엄마 아빠는 이제 뭐가 될 거야?"

아이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다. 지금 내 직업을 말하면 "그럼 다음엔 뭐가 될 거야"라고 다시 묻는 아이. 아직 어린 까꿍이는 어른들이 나이가 먹는다는 건 늙는 게 아니라 자기들처럼 자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까꿍이의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른다. 육체의 나이만 늙는 것이지 나이가 든다는 건 더 깊은 지혜의 마음으로 더 나은 어른으로 크는 것일 테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가 된 것 같다. 환절기에 기침을 시작한 아이들을 위해 배숙을 만들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이겠다고 면보에 넣어 꾹 짜고 있자니, 더 엄마가 된 기분이 든다. 어릴 적 엄마가 기침을 자주 하던 내게 해주신 것처럼.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30년 넘게 출퇴근하며 본인의 일을 놓지 않으셨던 엄마. 게다가 시부모님도 모셨다. 나를 키운 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꿈을 꾸며 도전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사랑은 뭔가를 해 내는 일

더 이상 아이를 업지 않는 나
▲ 여유로운 나들이 더 이상 아이를 업지 않는 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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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장재열(조인성)의 입을 빌려 그랬지.

"사랑은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해내는 일이야. 넌 네 길을 가."

지금까진 나를 희생해 아이들을 키워낸다는 생각이 더 많았고 그래서 힘이 부친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이를 위해 내가 뭘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한다.

아이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따뜻한 밥을 짓고 이야기를 짓는다.

깔깔거리며 잘 놀던 아이들이 뭔가로 다투어 까꿍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산들이가 누나에게 사과를 하며 달래주고 복댕이는 누나 따라 울다가 형 따라 누나를 안아준다. 훌쩍이던 까꿍이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셋이 어울려 노는 소리가 들린다. 세 아이가 함께 한 시간의 힘이다.

여섯 살 엄마가 되어 돌아보니 시간의 힘이 사랑의 힘보다 더 센 것 같다. 하지만 그 세월을 사랑의 힘으로 견뎌 지금까지 왔다. 살면서 바닥을 드러낸 사랑의 힘은, 시간의 힘으로 다시 복원 된다. 그렇게 사랑이 시간을, 시간이 사랑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자라나갈 것이다. 친정 엄마의 문자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저녁 지으러 가야겠다.

나의 세 아이들과 나의 남편
▲ 나의 가장 큰 스승 나의 세 아이들과 나의 남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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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바라기 산들이,
산들이 따라쟁이 복댕이,
가람 보고 크는 까꿍이 생각하면
잘 살아야..."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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