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는 원래 일본 리그 출신 프로 축구선수였다. 귀국해서 농협에서 일하다가 뜻하지 않은 아픔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이에 축구지도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거기서 사업에 손댔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사기를 당하기 전까지는. 사기를 당하고 무일푼이 된 그는 귀국했다.

이광훈대표는 평소에도 방역소독 복장으로 있다. 늘 일한다는 맘으로 사려는 그의 자세다. 초심을 잃지 않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 이광훈대표 이광훈대표는 평소에도 방역소독 복장으로 있다. 늘 일한다는 맘으로 사려는 그의 자세다. 초심을 잃지 않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자살시도 하던 운명의 날에 무슨 일이

5년 전,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 지인이 없는 안성을 택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인 안성 내리 원룸에 자녀 둘과 그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피자와 치킨 배달을 했다. 그 땐 살 희망이 없었다. 초기 2년은 거의 폐인 수준이었다.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다. 죽지 못해 살았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운명의 날이 왔다. 그 날도 그는 자살을 하려고 줄에 목을 맸다. 이때 운명처럼 전화 한통이 왔다. 그의 큰 아들(당시 초4)이었다.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 아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빠 죽지 마, 아빠 죽지 마" . 그리고는 아들의 끝없는 흐느낌.

이 소리를 들은 그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야. 그래 나에게 내가 책임져야할 자녀들이 있었지" 그 전에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통화에선 아이들이 마음에 확 들어왔다.

광훈씨는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순간 먹먹해 했다. 아들아이에게 지금도 너무나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 살아야겠다. 죽을 각오로 살아야겠다. 이런 맘이 들었다. 그 후로 그는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피플크린은 현장에서 일하는 식구와 사무실에서 도우미를 하는 사무실 식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사는 한 식구다.
▲ 사무실 식구들 피플크린은 현장에서 일하는 식구와 사무실에서 도우미를 하는 사무실 식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사는 한 식구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이를 악물고 자식 위해 도전에 나서다

그 후 안성시 보건소를 찾아 우울증 치료에 들어갔다. 우울증 치료약을 먹다가 그마저도 약을 끊었다. 우울증 치료약을 먹으면 맘이 가라앉아 아무 일도 못해서다. 당장 쌀통에 쌀이 떨어졌다. 약을 끊고 그는 일하러 나섰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3년 전, 그날 이후 만난 기관이 안성맞춤지역자활센터(센터장 심상원)다. 그에게 있어서 자활은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상항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야 했기에.

그 때, 그는 청소 사업반 반장이었다. 다른 사업 반의 반장인 장문희 씨를 알게 되었다. 반장 회의를 하면서 만나다가 서로에게 끌렸다. 결혼을 했다. 졸지에 그들에게 4명의 자녀(남편 쪽 2명, 아내 쪽 2명)가 생겼다.

남다른 사업수완, 사회적기업의 놀라운 변화 일궈내

그는 자활센터에서도 남달랐다. 옛날에 사업해봤던 경험이 고스란히 거름이 되었다. 기존의 자활센터 방식이 아닌 회사방식의 운영을 선택했다. 3년 전 그렇게 '피플크린(청소업체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그는 직원들(저소득층)에게 때론 야단을, 때론 칭찬을 겸한다. 자신도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을 알기에 가족을 대하듯 그들에게 다가간다.

"직원들에게 무엇보다 소득성취감과 자신감을 찾아주는 것이 제일 목적"이라는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렇게 직원들과 함께 달려온 결과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피플크린 식구들이 단합대회를 했다.
▲ 단합대회 피플크린 식구들이 단합대회를 했다.
ⓒ 피플크린

관련사진보기


일단 눈에 보이는 성과는 이랬다. 초창기 연매출 800만원의 기업이 지금은 연매출 4억 기업으로 성장했다. 17명의 직원이 함께 달려온 결과다. 청소업체에서 방역소독 업체를 겸하고 있다.  이제 '피플크린'이란 이름의 경기도 지점이 10군데 생긴다. 직전 서울 강남지점을 포함 11군데의 지점이 생긴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직원들에게 참 많은 변화가 찾아 왔다. 기초수급자 생활에서 탈출한 직원들이 생겨났다.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직원은 이제 이사가 되었다. 남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던 그들이 이제 이사가 되어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우뚝 섰다. 몇 몇의 사람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뛰쳐나갔던 사람이 일주일만에 여기가 좋다고 다시 찾아와 적응한 직원이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를 받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할 때는 정말 뿌듯했단다.

직원들에게 삶을 찾아주기 위한 열정은 이어지고

지금도 그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의 수익이 올라가고, 자신감이 올라갈까"를 고민하며, 잠을 설친다. 하루에 5~6시간 자기에 늘 잠이 모자란다고 했다. "우리는 타 기업보다 느릴 순 있지만, 결국 결승점엔 직원 모두 같이 간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직원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그는 사회봉사를 택했다. 장애시설, 그룹홈, 양로원 등으로 사회봉사를 같이 나갈 때, 직원들은 정말 좋아했다. 자신도 이 사회에 뭔가 나눌 수 있다는 보람에 마음 뿌듯해 한다는 것. 

"직원들과 상담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가난해서 별로 희망이 없다"며 물려받은 가난에 대해  '자포자기'하더란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 가난은 당신 대에서 끝내고, 아이들에게 만은 물려주지 말자"며 힘을 북돋아준다고 했다.  가난을 팔자처럼 받아들이는 그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 광훈씨가 하는 일 중 중요한 일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 했지만, 이런 구조라면 넉넉하게 구할 수 있어 보인다.

남편 이광훈씨와 아내 장문희씨는 3년 전, 안성자활센터에서 만나 결혼했다. 이광훈씨는 오늘의 자신은 아내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들은 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 부부 남편 이광훈씨와 아내 장문희씨는 3년 전, 안성자활센터에서 만나 결혼했다. 이광훈씨는 오늘의 자신은 아내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들은 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자신이 가난을 통과해보니 평소 누리던 일(예컨대 가족과 함께 외식)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알겠다고 했다. 이젠 모든 걸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고, 자연스레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행복에너지는 이제 자신의 가족을 넘어서 직원들, 더 나아가 '피플크린'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피플크린은 수익 중 60%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사회적기업이며, 이 인터뷰는 지난 11일, 피플크린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사회적기업, #피플크린, #자활센터, #이광훈, #안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