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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검둥이와 한통속인 놈이냐?" 로버츠가 고함을 질렀다. "선생님 기분이 어떨지 압니다"하고 슈워너가 대답했다. 왼손으로 슈워너의 어깨를 잡은 채, 로버츠는 그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슈워너가 수로에 고꾸라졌다. 곧바로 로버츠는 굿먼을 끌어내 말 한 마디 없이 총 한 발로 그를 살해했다. 바로 그때 조던이 차에서 내리며 "한 놈은 나한테 넘겨줘!"하고 말했다. 조던이 제임스 체이니를 끌고 나왔다. 체이니는 허둥대며 도망가려 했다. 총탄 세 발이 체이니를 쓰러뜨렸다. "당신들 나한테 고작 검둥이만 남겨주었군. 하지만 적어도 난 검둥이를 죽였지"하고 조던이 말했다. (452쪽)

1964년 6월, 미국 민권운동단체 중 하나인 인종평등회의(CORE, Congress of Racial Equality)의 실무자 제임스 체이니와 마이클 슈워너, 그리고 '프리덤 섬머(Freedom Summer)'로 명명된 여름 프로젝트의 활동가였던 앤드루 굿먼이 백인우월주의자로 구성된 폭력단체 KKK(Ku Klax Klan)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보루라 불리는 미국에서 불과 50년 전에 일어난 백색 테러였다.

600쪽에 가까운 <프리덤 서머, 1964>는 1964년 6월부터 8월 사이에 펼쳐진 '프리덤 서머' 프로젝트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부제가 알려주는 것처럼 프리덤 서머는 자유와 평등, 민권운동의 이정표였다. 인종 분리와 백인우월주의, 폭력적인 KKK의 소굴로 내려간 참가자들은 전쟁터보다 더한 공포와 폭력 속에서 흑인 유권자 운동에 헌신했다.

역사학자인 저자 브루스 왓슨은 당대의 모든 자료를 광범위하게 분석, 그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묘사해냈다. 이를 통해 프리덤 서머 프로젝트의 명암과 더불어 찬란한 미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치부를 고스란히 밝혔다. 그 점에서 이 책은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과 민주주의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이자 냉정한 역사서라고 할 만하다.

선량한 사람들의 침묵... 또다른 형태의 폭력

프리덤 서머, 1964
 프리덤 서머, 1964
ⓒ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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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주는 왜 프리덤 서머의 표적이 되었을까. 저자는 아름다운 자연과 자랑스러운 유산을 물려받은 미시시피가 인종차별로 인해 '비열하고 혼란스러운 주'가 됐다고 말한다. 미시시피에서는 인종 증오로 얼룩진 불법 처형과 폭력, 협박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미시시피를 제외한 다른 주의 흑인 투표율은 50퍼센트가 넘었으나 미시시피는 7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민권운동 지도자 중 한 명인 로이 윌킨스는 1960년대 초반의 미시시피를 "비인도적 행위와 살인, 폭력, 인종차별적 증오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보유한 주"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프리덤 서머 기간 중 평화적인 흑인 유권자 등록 운동에 헌신한 700여 명의 활동가 덕분에 1965년 흑인투표권법이 통과됐고, 여섯 달 만에 미시시피는 흑인 60퍼센트가 투표할 수 있게 되는 곳으로 변모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폭력과 악의적 인종 차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프리덤 서머 초기에 실종됐다가 결국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세 명의 활동가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폭력적 협박은 일상이었다. 프리덤 서머의 주요 거점이 된 흑인 교회 수십 곳이 화염에 휩싸였다. 경찰조차 과속과 난폭 운전, 심지어 난폭 보행 등의 혐의로 활동가들을 체포하면서 온갖 폭력을 저지르는 데 앞장섰다.

이 모든 폭력이 미시시피 주에 사는 모든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미시시피) 토박이인의 테러범 숫자는 도시마다 열두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머지 대다수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책의 저자가 활동가 세 명의 죽음을 "선량한 사람들의 거대한 침묵과 무관심에 의한 살해"로 규정한 <워싱턴 포스트> 1964년 7월 24일 자 기사를 인용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중립으로 가장된 '선량한 사람들'의 침묵과 무관심은 결코 중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이나 로자 파크스와 같은 유명인만으로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을 떠올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시의 민권운동이 불굴의 진보 정신으로 무장한 수많은 풀뿌리 단체 소속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에 힘입었음을 알게 된다. 그중 가장 걸출한 인물은 프리덤 서머를 최초로 기획한 사람으로 알려진 밥 모지스다.

하버드대학 석·박사 출신이자 전액 장학생으로 평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밥 모지스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핍박받는 흑인의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갖은 폭력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운동에 매진한 그는 결국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양심적인 민주주의자로 우뚝 섰다.

옮긴이의 말처럼 그는 "민권운동의 소크라테스이자 아리스토텔레스였고 더 나아가 모세이고 예수였던 사람"이었다. 또 다른 평자는 그를 "생존해 있는 사람 가운데 미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은 것을 감수했고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프리덤 서머가 미국 민권운동의 역사에서 이정표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흑인 유권자 운동에 불을 붙였다는 역사적인 평가 외에 프리덤 서머에 참가한 700여 활동가의 출신 성분에서 찾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700여 활동가들은 주로 백인 중산층과 상류층 부모의 자녀로, 명문대학 재학생 출신이 많았다. 프리덤 서머 이전의 민권운동은 흑인 활동가 중심이었다. 프리덤 서머 이후 백인이 전면적으로 결합한 운동으로 바뀌면서 민권운동은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한 관심과 지지를 받게 된다. 동시에 당시 미국이 숨기고 있던 슬픈 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미시시피에서 살해당한 흑인은 하나같이 주 경계선 너머까지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없었다. 허버트 리(1961년, 흑인투표권을 설명하려 내려온 뉴욕 흑인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평생지기였던 백인 친구에게 죽임을 당한 흑인)의 살해 사건을 보도한 건 주요 신문사 한 군데뿐이었다. 하지만 '백인'이 살해되었고... "두 백인 청년이 실종된 뒤에야 전국적인 관심이 치솟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고 존 루이스는 언론에 발표했다. (163쪽)

누구를 위한 분열인가... 밥 모지스의 현실 리더십 배워야

흑인 인권운동을 펼치다 KKK에 살해당한 의인 세 사람
 흑인 인권운동을 펼치다 KKK에 살해당한 의인 세 사람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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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우리 현실과 관련하여 프리덤 서머가 시사하는 교훈은 한둘이 아니다.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국가적 재난을 마주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진보 운동,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모든 사회운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프리덤 서머 시작 직후 일어난 활동가 세 명의 실종 사건은 국가적 재난에 버금가는 중대 사건이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인종 간 소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에 입각한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대응이 다른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당시 대통령은 린든 존슨이었다. 그는 프리덤 서머 참가자들에 대한 모든 보호 요청을 묵살했다. 실종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충분한 조치를 제때 내리지 않았다. 마지못해 실종자 부모를 만난 그가 내뱉은 "법무부와 국방부의 모든 권한을 수색에 쏟아붓고 있습니다"란 말에서 2014년 대한민국이라는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프리덤 서머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사회 운동의 명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프리덤 서머를 총괄한 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SNCC, 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는 집단지도체제를 강조했다. 어떤 구성원도 다른 구성원보다 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결정은 며칠이 걸리든 회의에서 벼려지는 합의로 도출됐다. 구성원들은 서로 책을 돌려보고 토론을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를 지도자가 아니라 조직가로 생각하는 SNCC 구성원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운동을 조직할 수 있도록 지역에 권한을 줬다.

하지만 저자는 프리덤 서머가 끝난 뒤 SNCC의 '아름다운 공동체'가 금이 가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용감하고 대담한 집단이던 SNCC는 하루아침에 실무자 400명, 그 가운데 20퍼센트가 백인인 단체가 됐다. 규모의 거대화에 따른 관료화.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인종 간 적대감이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것.

밥 모지스가 떠난 뒤 한 해가 채 안 되어 SNCC 구성원들은 서로 더 이상 말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돼버린다. 새로 들어선 의장은 '블랙-파워! 블랙-파워!'를 외치며 백인사회 전체의 거센 반동을 자초했다. 그는 SNCC를 행동만큼이나 말이 많은 곳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나날이 늘어나는 증오에 가득한 말들로 말이다.

진실에 터를 잡은 통합의 리더십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분열을 부추기고 증오감을 부채질하는 지도자가 들어섰다. 표적을 빗겨난 잘못된 언어 프레임이 조직과 운동을 지배했다. 그 속에서 SNCC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분오열한 채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는 우리나라 진보세력이 눈여겨봐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은 진실과 보편에 입각해야 한다. 프리덤 서머가, 미시시피의 백인들에게 그들의 적이 '흑인'이 아니라 '가난'임을 주지시키려 한 것처럼, 세월호의 진실 규명 또한 세월호 유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이 미시시피에 있지 않다면, 미시시피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미시시피에 있다면 나머지 세계가 현실이 아니죠." (287쪽)

프리덤 서머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을 무렵, 밥 모지스가 갖가지 잔악한 폭력의 충격과 공포로 지쳐가던 프리덤 서머 참가자들에게 던진 위로와 독려의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표류하는 세월호 정국 속에서 그 너저분한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프리덤 서머, 1964>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4. 8. 22. / 576쪽 / 2만 5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프리덤 서머, 1964 - 자유와 정의, 민권운동의 이정표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2014)


태그:#<프리덤 서머, 1964>,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미국 민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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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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