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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헤어질 때도 되었다. 이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변동의 당연함을 용인해 주는 기간이 10년인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무척 아프다. 아내는 하루 종일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청승맞게 왜 눈물을 찔찔 짜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내 마음도 좋을 리 없다. 긍휼의 마음이 유달리 많아서가 아니다. 헤어짐의 슬픔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개와의 이별도 이렇게 슬픈데, 백주 대낮에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10년을 동고동락한 개, '새벽이'

새벽이(사진 오른쪽, 개집 앞에 서 있는 큰 개)와 새벽이 주니어들
 새벽이(사진 오른쪽, 개집 앞에 서 있는 큰 개)와 새벽이 주니어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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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10년을 동고동락한 개의 이름은 '새벽이'라고 했다. 새벽에 낳은 것을 얻었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새벽'은 여명의 시간이고 하루를 여는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진돗개의 피를 많이 갖고 있는 새벽이는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나의 전 목회지에서 새끼를 얻어 기르다가 이곳으로 이사 올 때 함께 왔으니 근 10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새벽이의 나이가 된다.

무엇보다도 새벽이는 새끼를 잘 가졌다. 관리를 좀 게을리 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새끼를 낳았다. 진돗개의 피를 가지고 있는 새벽이에게서 생산되는 새끼도 어미 못지않았다. 아내는 그것이 신기한 듯, '발바리와 교배해도 진돗개를 낳는 신통방통한 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새벽이가 낳은 새끼는 모두 50마리는 거뜬히 될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한 열 번 정도 새끼를 낳은 것 같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많게는 열두 마리 적게는 세 마리를 낳았는데 평균 잡아 다섯 마리로 치면 쉰여 마리를 출산한 것이 된다.

기특한 것은 자신이 낳은 새끼를 얼마나 정성스레 키우던지, 새끼 사망률이 무(無)에 가까웠다. 한 몸으로 여러 마리의 새끼를 기르다 보면 힘들고 짜증날 텐데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보는 이들도 개의 새끼 사랑에서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새벽이 새끼들
 새벽이 새끼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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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는 영특했다. 외딴 곳에 위치한 우리 집은 늘 적막감이 돈다. 새벽이가 없다면 적막감이 더 클 것이다. 우리는 새벽이의 짖어대는 정도에 따라 어떤 사람이 왔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우리 식구들에게는 꼬리만 흔들 뿐 소리는 내지 않는다. 교회 신자 등 자주 보는 사람들이 올 때는 "멍~"하고 한두 번 짓는 데 그친다. 반갑다는 표현일 것이다.

아는 정도가 옅을수록 그 짖는 횟수와 소리의 크기는 비례해서 올라간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주인이 나가기 전에는 그치지 않을 만큼 앙칼지게 짖어댄다. 오는 사람이 혼쭐나 도망을 갈 정도이다. 언젠가 가장이 없는 틈을 타 '양상군자'가 틈입하려다가 새벽이가 위협적으로 짖어대는 바람에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가게 했다는 것은 우리 가정사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이다.

교회와 암자를 이은 새벽이 가출 소동

사택이 딸린 우리 교회는 한 사찰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종교의 상이(相異)를 꼭 의식해서 그런 것은 아닌데, 그곳과 큰 교류 없이 지내왔다. 내가 처음 부임해 와서는 부활절과 성탄절 등 행사가 있을 때 그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설령 응하지 않더라도 떡 등 음식물을 전하며 가까이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에서 더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즈음 새벽이가 가출을 했다. 알고 보니 사찰에 가서 그곳 수캐와 연인이 되어 다정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새벽이를 내가 직접 데리고 온 적이 있다.

새벽이가 물꼬를 터준 덕분에 그 후 사찰과 교회가 이웃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 하며 지내게 되었었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한 마리의 개가 해 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정리해서 나는 '새벽이 가출 소동, 교회와 암자를 잇다'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하기도 했다. 인심이 메말라 가는 것은 농촌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미물인 새벽이가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터는 가교 역할도 한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원 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 마을 빈 집을 사서 온 사람이 있다. 그 집에 보기에도 좋은 진돗개 수놈이 있었는데, 우리 새벽이를 덜컹 임신 시켰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는데, 수놈의 주인이 일부러 찾아와서 내용을 알려주었다. 암놈의 발정기엔 인근 수놈들을 애태우게 된다고 한다. 그 수놈 중 자기 개가 선택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웃었다. 그 때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튼실한 놈 한 마리를 수놈 주인에게 진상(?)해야만 했다. 그것이 관례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새벽이가 새끼를 낳으면 떠들어 댄 것도 아닌데, 어느새 소문이 먼 곳까지 퍼져나간다. 젖 뗄 때를 기다려 분양 받으려는 사람들로 줄을 선다. 새벽이의 핏줄들이 김천 인근, 즉 구미 상주 옥천 등지뿐 아니라 멀게는 경인 지역까지 퍼져 있다. 그곳에 가서도 귀여움을 받고 있으니 새벽이의 원 주인으로서 기쁘기 한량없다. 지금 분양해준 곳에 가서 훌쩍 커버린 새벽이 새끼들을 볼 때, 꼬리를 치며 친근하게 맞는 그들이 원 주인을 알아봐 주는 듯해 흐뭇하다.

새벽이의 공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낳은 새끼들이 얼마나 귀여우면, 아이들이 강아지 볼 욕심으로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였다. 또 멀리 사는 어린 조카들도 이모부 집 강아지 구경 가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처제가 어렵게 시간을 내 아이들을 태우고 일부러 왔던 적도 몇 번 있다.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오는 아이들을 제일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새벽이다. 아이들은 새벽이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 이래저래 따지면 새벽이가 우리에게 기여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참으로 충성스런 새벽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새벽이 주니어
 새벽이 주니어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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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3년여 새벽이와 새벽이에겐 아들이 되는 수놈을 같은 자리에서 키웠다. 둘은 사이좋게 지냈다. 교인 중 한 분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사위가 새 집을 지었는데, 충견이 한 마리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벽이의 충성스러움을 익히 알고 있는 집사님인지라 나의 의중을 떠본 것이다. 먹이 공급에 버거움을 느끼고 있던 나는 덥썩 그렇게 하라고 답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보다 더 귀하게 기를 사람에게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감정 표현이 남자인 나보다 더 민감한 아내는 좀 생각해 보고 주겠다고 해야지 그렇게 쉽게 답을 했느냐며 타박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했다면 주겠노라는 대답이 내게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눈물을 찔찔 짜며 석별의 정을 표현한 아내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벽이의 이거(移居)를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알면 또 한 번 슬픔의 눈물바다가 연출될 것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어미 잃은 수캐 아들의 반응이다. 어미에 비해 힘이 좋고 먹성도 배나 되는 녀석이 며칠째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이다.

어미가 트럭에 실려 갈 때도 눈만 꺼벅댈 뿐 별 반응이 없었다. 그 후 먹을 것을 줘도 먹지 않고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 않고 누워서만 지냈다. 강제 이별에 대한 무언의 항의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이제 겨우 음식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어미와의 이별을 현실로 받아 들이는 것인지….

함께 살던 개와의 이별도 이러할진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은 얼마나 슬플까. 나는 남은 새벽이 주니어(아이들은 새벽이 새끼를 이렇게 부른다)에게 더 잘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 못하는 이별의 슬픔을 빨리 잊도록 해주기 위해, 다시 옛 생기를 회복해서 제 역할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태그:#진돗개, #눈물바다, #충견 새벽이, #석별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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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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