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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세계일주여행하는 호주교민 주대회(남편), 변주옥 부부
 4년간 세계일주여행하는 호주교민 주대회(남편), 변주옥 부부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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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간의 말라위 여행이 끝나갈 무렵 우리가 묵고 있는 코리아 가든 로지에 한국인 부부가 찾아왔다. 청바지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평범한 배낭 여행객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별별 배낭족들을 만날 수 있다. 나홀로 족도 있지만 친구와 단 둘만 오거나, 세 명이 한 팀을 이뤄오거나, 아예 한 커플이 오는 경우도 보았다. 대부분은 대학생이거나 30대 중반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와 대화하는 동안 조금 별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 그들의 삶이 내속으로 들어왔다.

부부는 지금 호주 캔버라에 살고 있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잘 나가던 주대회(57)씨가 호주로 이민을 가게된 것은 IMF 때문이다. 주씨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IMF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다.

변주옥씨가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줬다. 어제 카톡 메시지로 보낸 부부의 현소재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근방이라고 알려줬다. 한국에 온 이후로도 카톡을 통해 부부의 소식을 듣는다
 변주옥씨가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줬다. 어제 카톡 메시지로 보낸 부부의 현소재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근방이라고 알려줬다. 한국에 온 이후로도 카톡을 통해 부부의 소식을 듣는다
ⓒ 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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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로 한국이 어려워지고 고객과 지인들은 죽을 지경이 됐다. 자신은 고액 연봉을 받으니 남들의 어려워진 사정에 모른 척하고 있으면 됐지만, 손님과 주변지인들한테 피해를 끼칠까 염려한 그는 호주로 이민갈 것을 결심했다.

주변사람들과 부모님은 "왜 그 좋은 자리를 두고 고생하러 먼 나라로 떠나느냐?"고 말렸다. 심지어 그가 사표를 내고 호주로 가 있는 3개월 동안에도 회사에서는 "돌아오라!"며 결재를 하지 않았다.

신문배달과 5백 벌 옷 보풀 떼며 어려움 극복해

"배려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제가 결심한 일이니 어떻게 하든지 이뤄낼 것입니다."

그는 이런 답변을 하고 시드니에서 고달픈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이민 초기는 힘들었다. 새벽 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신문배달, 신문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옷 공장에 들러 5백 벌을 집으로 가져왔다. 가족들은 5백 벌의 보풀을 제거한 후 비닐을 씌워 다시 공장에 납품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씨는 부족한 영어 실력도 쌓고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해 낮에는 AICC학교에서 2년 동안 마케팅을 공부해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민 온 지 1년이 지나 이민생활이 안정되자 부모님을 초청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님을 가슴 아프게 했다. 대기업 증권회사 지점장까지 했던 아들이 꼭두새벽부터 나가 신문배달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부모님께서는 새벽부터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전 8시까지 문 앞에 앉아서 울고 계셨다. 부모님은 "아들아!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단다.

우리 일행과 함께 말라위 호수로 가던 중 거대한 바오밥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부부. 안전하고 건강한 여행이 되길 빈다
 우리 일행과 함께 말라위 호수로 가던 중 거대한 바오밥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부부. 안전하고 건강한 여행이 되길 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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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들이 어렵다는 걸 안 부모님께서는 돈을 주려고 하셨어요. 돈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자존심 때문에 참았어요.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아들이 좋은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들을 보고 '아빠!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고급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하고 물었어요. 저는 아들한테 설명했어요. 한국에 있는 집과 주식을 팔면 당장에라도 먹을 수 있다. 먹을래 참을래 하고 물으니 참겠다고 대답했어요. 당시 한국 집값이 IMF 이전의 반으로 떨어졌고 주식은 휴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이 힘들고 자존심 상했지만, 적극적 성격인 주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의 의식주를 챙기는 아내 변주옥(56)씨는 달랐다. 큰딸(중2)과 아들(초등3)의 간식을 싸주면서 비스킷 한 봉지를 반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싸줬다. 빵도 슈퍼마켓 문 닫을 시간에 찾아가 샀다.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반값 할인을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공부를 잘했던 딸이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와 엉엉 울었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항상 손을 들고 발표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발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 또 다시 발생해 그녀를 울렸다.

이민 온 한국 아이들끼리 장난치면서 서로 밀고 때렸는데 호주 교사는 아들이 폭력을 행사한 걸로 알고 엄마인 그녀를 호출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그녀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엄마를 대동하고 담임 앞에 섰다. 같이 장난치던 한국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때린 게 아니고 장난친 것"이라고 말했지만 호주 교사는 "내 눈으로 정확히 봤다.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라며 경고를 줬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이렇게 때리며 장난친다"며 변명했지만 들어주지 않아 엉엉 울며 말했다. "앞으로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되면 당신을 꼭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일행과 같이 지내다  헤어졌던 주대회씨 부부 모습. 이런 모습으로 4년간  100여개 국가를 여행했다.
 우리일행과 같이 지내다 헤어졌던 주대회씨 부부 모습. 이런 모습으로 4년간 100여개 국가를 여행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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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이들이 영어가 부족해 이런 꼴을 본다고 생각한 그녀는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차원에서 한국에서 이민 왔지만 영어가 서투른 사람과 영주권을 따려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학원(주간반, 야간반)을 시작했다.

사람은 살면서 운도 따라야 한다. 그녀가 호주에서 한국인을 위한 영어 학원을 최초로 연 후 3년이 지나 어학연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심지어 50명 정원인 반에 1500명이 몰려와 시드니에 있는 여러 대학교를 빌려 강좌를 열기도 했다.

또한 모 통신사 호주 총판사장을 역임하며 시드니 스트라스 필드(Sydney Stras Field) 도서 대여점과 플라자 식품점을 열었다. 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IMF가 끝나고 나니 한국에 있는 집값도 오르고 가지고 있는 주식도 몇 배로 올라 부동산에 투자해 여생을 즐길 만큼 벌었다.

"당신 소원이 무엇이냐"... 아내의 대답은?

부모님이 고생한 걸 본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해 호주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 정착했다. 딸은 법대를 졸업해 호주 수상부 변호사로 근무하고 아들은 은행원이다. 원하는 만큼 돈을 번 주대회씨는 4년 전 모든 사업을 정리하며 부인에게 "당신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있는 빙하 앞에선 변주옥씨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있는 빙하 앞에선 변주옥씨
ⓒ 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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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대답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장롱 속에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늙어서 후회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세계여행을 원했습니다. 맨 처음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를 한 달 동안 여행했는데 전혀 싫지 않았습니다. 다음해부터는 동남아 6개월, 남유럽과 아프리카 7개월 이런 식으로 여행했습니다. 3년 차에는 남미를 7개월 돌았습니다. 배낭속 짐의 절반은 보약입니다. 건강을 위해서죠. 저는 집에만 있으면 아픕니다."

여행하며 겪었던 아찔했던 경험담도 들려줬다.

"페루에서 콜롬비아로 넘어가는데 데모 중이니까 가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사람 사는 곳인데 별일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공항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도끼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현지인을 만났지만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길을 물었더니 한 여자가 접근해 일본말로 몇 마디 해서 코리언이라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무표정하게 사라졌어요. 조금 후 두 명의 청년이 다가와 지갑에 손을 댔어요. 지갑을 안 빼앗기려고 하니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고 해 몸싸움을 했는데 철도 공안원이 달려와 도와줘 돈을 뺏기지 않았어요."
  
부부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도중 킬리만자로에 올라 기념촬영했다.
 부부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도중 킬리만자로에 올라 기념촬영했다.
ⓒ 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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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힘들게 킬리만자로를 올랐고 평생원했던 곳 중 하나를 올랐다는  감동에 벅차 우는 변주옥씨.
 너무나 힘들게 킬리만자로를 올랐고 평생원했던 곳 중 하나를 올랐다는 감동에 벅차 우는 변주옥씨.
ⓒ 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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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변주옥씨는 킬리만자로를 올라갈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과 해냈다는 감동 때문에 울었다. "여행할 때 어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고 위험한 곳보다는 위험하지 않은 곳이 더 많다"고 말하는 주씨는 "상대에게 표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돌아다녀 보니 큰 나라라고 잘사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먹고 사는 방법이 있다. 안도라는 스키로, 모나코는 카지노로 먹고 살더라!"

주씨가 전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다. 부부는 현재까지 100여 개 국가를 여행했고 다음에는 인도를 여행할 계획이다.

"우리 부부의 세계여행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이 자리 잡지 않은 곳에서 이민 1세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장래계획을 밝힌 주대회씨 부부에게서 프런티어 정신을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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