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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동 계곡 입구에 서면 병풍처럼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 입구에 서면 병풍처럼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인왕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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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간은 지났지만 가을장마 혹은 국지성 호우라는 이름의 비가 심심치 않게 내리는 요즘, 비가 그친 후 혹은 비 개인 날 찾아가면 도심 속 무릉도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다. 종로구 수성동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평소엔 실개울만 희끗희끗 보일 뿐 시원한 계곡물을 보기 힘들지만 비가 내리면 그 옛날 안평대군과 겸재 정선이 살았다던 운치 있는 계곡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계곡물 소리가 크다 하여 '수성(水聲)'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수성동계곡. 2011년 7월에야 감춰진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냈다. 수성동계곡은 1971년에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를 2010년에 철거하면서 발굴됐고,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공원으로 복원됐다.

계곡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서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인공미가 가미된 공원이지만 당시 골짜기의 암반을 최대한 노출시켜 옛 모습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낡은 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에서 조선시대 계곡을 만날 수 있는 반갑고 이색적인 도심 속 자연 공간이다. 

겸재가 그렸고 추사가 읊었던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 자락의 산책길과 쉬어가기 좋은 쉼터 정자.
 수성동 계곡 자락의 산책길과 쉬어가기 좋은 쉼터 정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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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있는 수성동 계곡, 하단의 작은 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기린교'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와있는 수성동 계곡, 하단의 작은 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기린교'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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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수성동계곡 입구가 종점인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눈 앞에 인왕산 치마바위가 거대한 병풍처럼 나타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후기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벌어지는 입으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조선시대 회화속으로 오롯이 걸어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성동에서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고 심설(沁雪)의 운(韻)을 빌린다. 골짜기 들어오니 몇 무 안 되고, 나막신 아래로 물소리 우렁차다. 푸르름 물들어 몸을 싸는 듯. 대낮에 가는데도 밤인 것 같네.

고운 이끼 자리를 깔고, 둥근 솔은 기와 덮은 듯. 낙숫물 소리 예전엔 새 소릴러니, 오늘은 大雅誦(대아송) 같다. 산마음 정숙하면, 새들도 소리 죽이나. 원컨대 이 소리 세상에 돌려, 저 속된 것들 침 주어 꾸밈없이 만들었으면. 저녁 구름 홀연히 먹을 뿌리어, 詩意(시의)로 그림을 그리게 하네."

추사 김정희의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此心雪韻)>라는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누상동과 옥인동 경계, 인왕산 초입에 위치한 수성동계곡엔 비라도 내리면 청계천 발원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콸콸~ 기분 좋게 흐른다.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이라 부르던 옛 명성처럼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겸재 정선의 작품 <수성동>에 등장하는 풍경이 운치있게 펼쳐져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더불어 녹색빛을 더욱 진하게 머금은 소나무, 버드나무, 벚나무들과 물기에 젖은 갖가지 모양의 굳센 바위들은 늦여름 정취를 더 한다.

 계곡물에 발만 담궜을뿐인데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전신으로 퍼진다.
 계곡물에 발만 담궜을뿐인데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전신으로 퍼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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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1676~1759)은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 살던 터전인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를 8폭의 진경, 즉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겨 놓았는데 인왕산 일대 <수성동>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첩>을 직접 그린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인 수성동 계곡 초입 광장부에 그림과 실경을 비교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내가 찾아간 날에는 마침 어느 무명화가가 같은 자리에서 수성동 계곡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 발길을 멈춰지고 눈길이 머물렀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거대한 바위 사이로 급한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는 암석이 수려하며, 계곡에는 장대석을 두 개 맞댄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고, 선비들은 한가로이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늘날 인왕산 수성동 풍경의 원형이 18세기 겸재 정선의 회화 속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예술작품에서 추구했다는 고졸미(古拙美)가 잘 느껴지는 그림이다. 결코 화려하지 않으며, 어떤 이상향의 산수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무심(無心)한 마음으로 붓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그림으로 화가의 질박하고 겸손한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이외에 예술과 풍류를 아는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 이용(1418~1453)도 이곳에 '비해당'이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잠시 쉬어갈겸 계곡 중간에 있는 정자에 앉아 물소리를 들어보니, 그들이 이곳을 사랑했던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정자 안에 둘러앉아 과일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은 이곳이 서울이라는 걸 깜박 잊을 정도로 정다운 풍경이었다.

청계천의 발원지, 인왕산길이 이어지는 계곡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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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동 계곡 위쪽에 있는 청계천 발원지.
 수성동 계곡 위쪽에 있는 청계천 발원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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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聲洞 在人王山麓 洞壑 幽邃 有泉石之勝 最好 暑月 遊賞 惑云此洞 匪懈堂(安平大君 瑢蹟也) 舊基也有橋名麒麟橋."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으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여 시내와 암석의 빼어남이 있어 여름에 놀며 감상하기에 마땅하다. 혹은 이르기를 이곳이 비해당 터(안평대군 이용의 옛 집터)라 한다. 근처에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

- <한경지략>, 명승(名勝) 수성동(水聲洞) 가운데
(한경지략(漢京識略)은 조선 정조 때 수도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자세히 적은 작자 미상의 부지(府誌)다.)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 '기린교'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제자리에 원형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다.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 다리이기도 하다. 그 옛날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玉流洞)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으로 흘렀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옥같이 흐르던 '옥류동 계곡'과 청계천으로 향하는 물길은 복개돼 주택가로 변했지만, 수성동계곡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여전히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있다. 계곡 뒤로 펼쳐진 소나무 숲 사이로 인왕산이 아름다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계곡에서 쉬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눈앞에서 잡힐 듯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바라보며 수성동계곡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숲도 좋고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모래밭이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기분 좋게 들려온다.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찾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피서지다.

계곡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그늘진 깊은 계곡물이 보이면서 도롱뇽, 가재, 개구리, 버들치 등이 서식하는 청계천 발원지가 나온다. 그야말로 생태 청정 지역이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며 바라보는 수성동계곡은 청계천의 발원지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만든다. 수성동계곡의 끝 지점에 오르면 인왕산 자락길과 등산로, 북악 스카이웨이 산책로가 이어져 도심 속 걷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8월 21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교통편 :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9번 마을버스를 타면 수성동 계곡 바로 앞이 종점 (10여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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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 매일이,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