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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이 내려앉았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땅만 꺼지는 게 아니라 우리네 가슴도 덜컥 내려앉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리는 말 가운데 국민들이 쓰지 않는 어려운 영어와 한자말이 자꾸 나온다. 혹시 나만 모르는가 해서 우리 말 사전을 펴보아도 안 나온다. 그러니 신문에 난 기사로 말뜻을 짐작해볼 밖에.

초대형 동공(洞空․텅 비어 있는 굴)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ㄱ신문 8월 15일치 14면)
초대형 동공(洞空․빈 공간)이 발견됐다.(ㅎ일보 8월 18일치 31면)

나만 그런가. '동공' 하면 나는 '눈동자'가 떠오른다. 아이들한테 '동공'이 뭔가 물어보라. 열에 아홉은 '놀라서 동공이 커졌다' 할 때 그 '동공'이 아니냐고 되물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말을 쓰는가. 기사를 보면 '동공'은 '텅 비어 있는 굴, 빈 공간'하고 풀어놓았다. 기자도 동공만 써서는 독자들이 알아먹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공은 '동굴 동(洞)'에 '빌 공(空)'을 더해 만든 낱말이다. 땅바닥을 받치던 모래나 흙, 자갈 따위가 지하수에 쓸려 내려가거나 남모를 까닭으로 없어지면서 땅 밑에 생긴 '공간'을 말한다. 아예 위쪽이 푹 내려앉아 바깥으로 드러나면 '싱크홀'이라고, 드러나지 않으면 '동공'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어렵게 '동공'이냐? 그냥 굴이라고 해도 될 말이 아닌가. '빈, 비어 있는, 텅 빈' 같은 꾸밈말도 없어도 된다. 그냥 '굴'이나 '동굴'이라고 하면 안될까. 혼자 생각이지만 디디고 선 발 아래 생긴 굴이니 '발밑굴'하거나 갑자기 생겨난 굴이니 '갑작굴' 같은, 알맞은 새말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지.

'싱크홀(지반이 밑으로 꺼지는 현상)' 원인을 조사하던 중에 드러났다.(ㄷ일보 8월 15일치 10면)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와 제2롯데월드 공사장 인근에서 싱크홀(땅이 푹 꺼지는 현상)과 동공(洞空․ 텅 비어 있는 굴)이 잇따라 발견되자 시민단체들이 안전을 우려하며 제2롯데월드의 조기 개장을 반대하고 나섰다. (ㄱ신문 8월 20일치 16면)
싱크홀(Sink Hole․땅속에 갑자기 생긴 구멍)의 원인을 찾던 서울시 조사단은(ㄷ일보 8월 16일치 23면)
최근 잇따라 발생한 싱크홀(지반 침하)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ㅎ신문 8월 21일치 12면)

싱크홀은 ① 땅(지반)이 밑으로 푹 꺼지는 현상, ② 땅속에 갑자기 생긴 구멍, ③ 지반 침하와 같이 세 가지 뜻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때 ①, ③은 현상이고 ②는 구멍이라고 했지만 '굴'을 말한다. 그런데 땅바닥이 내려앉는 '현상'을 말하기도 하고, 땅 속에 생겨난 '구멍' 또는 '구덩이'를 말하기도 해서 헛갈린다. '싱크홀(땅꺼짐)' 현상으로 '싱크홀(구멍, 구덩이)'이 생겼다는 말처럼 되어 버린다.

이참에 현상과 결과를 구분하여 현상을 말할 때는 '땅꺼짐'이나 '땅꺼짐 현상'이라고 하고, 그 결과로 내려앉은 땅 모양을 말할 때는 '꺼진 땅'이라고 해야 한다. '뭉턱땅이나 우묵땅 같은 말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때 '뭉턱'은 '굳은 물건을 순간적으로 뭉툭하게 툭 끊거나 자르는 모양'을 가리킨다. '우묵땅'은 '우묵하게 팬 땅'을 가리키는 사전 올림말이다.

요컨대 동공이니 싱크홀이니 하는 말은 국민 누구나 알아들을 말이 아니다. 배운 사람들 말이다. 싱크홀도 우리 말에 없던 말이다. 어떻게 써야 우리 입맛에 바꿀까를 고민하고 알맞은 말을 다듬어야 한다. 그게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동공'이니 '싱크홀'하고 국민들 기죽이는 말로 쓰면 유식해 보이고 권위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실을 환히 알도록 하겠다는 신문의 사명을 생각하면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


태그:#싱크홀, #동공, #땅꺼짐, #발밑굴, #갑작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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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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