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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칭다오 이공대학에서 중국 학생들을 가르쳤다. 칭다오라는 지역성, 건축이라는 전문성, 교수와 대학생이라는 계층성, 한국인과 중국인이라는 민족성… 언뜻 보면 좀 특이한 소재이지 싶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이며 작고 밀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대표할 만한 잘난 사람이 아닌, 고만고만한 약력을 가진 한국인 선생과 함께 지지고 볶던 고만고만한 중국 대학생들과 이웃의 울퉁불퉁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 기자말

오전 8시가 다가오면 학교 앞은 새카맣게 몰려드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강의실로 향하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나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런타이두어(人太多, 사람이 너무 많다)를 실감하며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갈 때마다 지나치는 건물이 있었다. 바로 여학생 기숙사, 1950년대 소련풍으로 지어진 2층짜리 벽돌건물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기숙사 창문마다 형형색색의 여성 속옷이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기숙사 앞 공터에 이불이 널려 있었다. 화장기 없는 여학생이 묵직한 가방을 메고 기숙사를 나섰다. 잠이 덜 깨어 부스스한 여학생은 양 손에 커다란 보온병 두 개를 들고 기숙사 안으로 사라졌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기숙사를 나온 여학생은 목욕통을 들고 어디론가 후다닥 뛰어갔다. 색 바랜 벽돌건물, 황토의 공터, 구식 보온병, 낡은 인민복을 입은 청소부, 그리고 아침 안개까지 끼는 날이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기숙사 창문에 걸린 옷가지들
▲ 칭다오 이공대 여학생 기숙사 기숙사 창문에 걸린 옷가지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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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1실이 6인 1실보다 '재미 없어서' 싫다는 아이들

2학년 수업시간에 '최소한의 공간 설계'를 할 때였다. 학기 초, 워밍업삼아 기숙사 방을 설계해 보기로 했다. 먼저 현재 살고 있는 기숙사 평면을 그린 후 그 공간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 프라이버시 문제로 생각하고 기분 나빠하는 건가? 그 생각을 했을 때, 반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기숙사에 아무 것도 없는데,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없다니, 그럼 어떻게 생활해?"

내가 묻자, 학생들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음, 그냥 방만 있어요. 방에는 이층 침대가 3개 있고요. 방 하나에 여섯 명이 지내거든요."
"세수하고 빨래하는 곳은 1층에 있어요. 그런데 더운 물이 안 나와요."
"샤워는 학교 공중목욕탕에서 해요. 거기도 더운 물은 아침과 저녁에 두 시간씩, 딱 두 번만 나와요."
"날씨가 춥거나 머리를 감을 때는 식당 근처 급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사 와요. 보온병 두 통이면 돼요."

아, 이제야 알겠다. 목욕통과 보온병의 정체를...

"밥은 학교 식당에서, 공부는 도서관이나 설계실에서 해요."
"빨래는 창문 밖에 널어요. 방 안이 비좁거든요. 이불은 공터에 널면 금방 보송보송해져요."

그 말에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여학생 기숙사는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교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비오는 날이 아니면 언제나 알록달록한 속옷이 보란 듯이 창문에서 휘날린다. 그걸 보고 민망해하는 사람은 외국인뿐이다. 아무래도 이곳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나 보다.

"겉옷이나 두꺼운 옷은 그냥 세탁소에 맡겨요. 돈이 아깝긴 하지만, 빨래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없어서...."
"새로 지은 기숙사는 나아요. 안에 식당도 있고, 공간도 좀 더 넓고....."
"에이, 거긴 학교 밖에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난방이 안 되잖아."
"난방이 무슨 필요가 있어. 여섯 명이 있으면 체온 때문에 춥지도 않은 걸."
"아주 추운 날에는 기숙사 방에 있는 냉난방기를 틀면 돼요.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히터로 사용할 수 있어요."
"대신 오래 틀면 안 돼요. 방안이 너무 건조해져서 감기에 걸리기 쉬워요.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결국 여섯 명이 다 걸리고 말아요."

듣다 보니 그들의 기숙사가 내 머리 속에 빤히 그려졌다.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생활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지고 보면 기숙사에 있을 것은 얼추 다 있었다. 철제 이층침대와 책상, 화장실, 세탁실... 문제는 공간의 배치였다. 그래서 기숙사 안에서 벌어질 광경이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보온병과 목욕통을 들고 교정을 돌아다니는 학생처럼...

학생들이 기숙사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로 아무 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있을만한 곳에 없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기숙사는 뭐 하는 공간이지?"
"잠자는 공간이요."

내가 묻자 학생들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잠만 자는 공간과 잠도 자는 공간은 의미가 다르다. 그러고 보니 4층짜리 학생식당 건물도 1층부터 4층까지 식당만 있다. 국제학원 건물 안에도 교실, 사무실, 화장실만 있다. 매점이나 복사집도 없고 휴게실이나 잠시 쉴 수 있는 개방된 공간도 없다. 다른 건물들도 대개 하나의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이런 건물의 내부는 모든 층이 같은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도 1장만 그리면 설계는 끝난다. 그만큼 건물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행위는 획일적이고 공간의 성격은 심심해진다. 대신 아주 '경제적'이다.

20여 년 전 내가 살았던 대학교 기숙사를 생각했다. 여학생 전용 기숙사였는데, 지금처럼 고층형이 아니라 지면에 넓게 퍼진 제법 규모가 큰 양옥집 형태였고 마당도 있었다. 나는 중국 학생들에게 그 기숙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기숙사 1층에는 출입구 왼편에 사무실이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오른편에는 작은 도서실이 있었다. 그 사이 안쪽에 식당이 있었는데 다목적이었다. 배식구 쪽에 식탁이 있고 정원이 보이는 창가에는 텔레비전과 소파가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드라마도 보았다. 학교 축제 기간에 여학생 기숙사가 개방되는 날이면 식당은 청춘남녀들이 모인 파티장소가 되었다. 기숙사 방은 2층과 3층에 있었고, 층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4층에는 자동세탁기가 있는 세탁실이 있고 그 옆으로 빨래를 널 수 있는 옥상이 연결되어 있었다.

건물을 단면으로 보면 층별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쉬는 기능으로 구분된 생활공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중국 학생들은 기숙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하며 탄성을 질렀다.

나는 내친 김에 그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가 바로 룸메이트이다. 코드가 안 맞거나 생활 습관이 정반대이면, 일상의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고 감정의 골이 생기기 쉽다. 한 명은 불면증이 있는데 한 명은 코를 골거나 이를 간다면? 한 명은 온갖 깔끔을 떠는데 다른 한 명은 청소의 개념조차 모른다면?

우리의 이성은 생리적인 욕구나 나만 손해를 보는 상황 앞에서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 중국학생들이 6인 1실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그 좁은 방, 아래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침대에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냄새는? 청소는?' 당연히 학생들은 더 큰 소리로 감탄을 하리라.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두 명? 에이, 재미없겠네요."

재미없다니? 타인과 살면서 일어나는 세밀한 감정사를 싹둑 잘라 버리고, 그저 두 명은 여섯 명보다 적으니 재미없단다. 왜 그럴까? 단체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런가? 이유가 궁금했다.

"기숙사에 두 명만 있으면 집처럼 심심하잖아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저만 보고 있어요. 집은 불편하고 심심한 곳이에요."

그러고 보니 학생들은 모두 '한 자녀 낳기' 정책 이후에 태어난 외동이었다. 가족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소황제로 자라난 아이들은 풍요를 누렸지만 외로웠나 보다. 어른들만 있는 집을 벗어나 기숙사에서 또래와 생활하는 즐거움이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선 모양이었다.

더운 물이 나오는 시간을 놓친 학생들은 보온병을 들고 급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사기도 한다.
▲ 기숙사 출입구에 놓인 구식 보온병 더운 물이 나오는 시간을 놓친 학생들은 보온병을 들고 급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사기도 한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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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에 익숙해진 '바링허우' 세대

2인 1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학생들은, 내가 기숙사에 추첨으로 들어갔다고 하자 아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기숙사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추첨에서 떨어진 학생은 하숙이나 자취를 했다. 운이 좋아 기숙사에 들어가더라도 3학년이 되면 나와야 했다. 빈자리는 신입생으로 채워졌다.

기숙사는 방학 때마다 문을 닫았는데, 그때마다 모든 짐을 싸서 창고에 보관해야 했다. 우리는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짐을 쌀 박스를 구하러 동네 슈퍼를 돌아다녔고 개학을 하면 싼 짐을 다시 풀고 정리하느라 입이 한 주먹이나 튀어나왔다. 고향으로 가지 않는 학생들은 단기 하숙이라도 구해야 했다. 어떤 학생들은 싼 게 비지떡이라며 불평을 해댔지만, 사실 기숙사비가 그리 싼 것도 아니었다.

중국학생들은 기숙사 시설이 나쁜 것은 이해해도 기숙사 자체가 부족한 것을 이해하기 힘든 듯했다. 그들은 입학과 동시에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워도 기숙사에 들어온다.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한다. 시간을 절약하고 학교생활 하기에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서는 1교시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칭다오 이공대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 2시까지 두 시간이다. 1교시에 맞춰 일어나고 등굣길에 중국식 두유인 더우쟝(豆浆)을 마시면서 교실로 간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학생 식당에서 후다닥 점심을 해결하고 곧바로 기숙사로 가서 낮잠을 잔다. 낮잠은 유치원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당연히 학생들은 기숙사와 교실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좋아한다. 그런데 그들의 기숙사비는 얼마일까?

"오래된 기숙사는 1년에 800위안이고 새로 지은 기숙사는 1년에 1000위안이에요."
"파마 두 번 할 수 있는 돈이에요."

파마 두 번 하는 금액으로 1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 수 있다니. 더운 물도, 난방도, 샤워시설도 없을 만하다. 평면도 1장으로 설계를 끝낼 만도 하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가장 경제적인 건물을 지어야 했을 테니까. 질보다 양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건축미학을 살린 설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기숙사에서 학부생은 4인실이나 6인실을 쓰고 대학원생은 2인실을 쓰며 하루에 단 두 번 더운 물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샤워를 한다. 내 연구실 근처에 있는 저학년 여학생 기숙사는 밤 10시 30분이면 소등을 한다. 건강한 신체와 절약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절약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중국인은 사회주의 집단생활을 했다. 농민은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하는 집단농장에서 일을 했고,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탁아소와 양로원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인민공사'가 감독했고 심지어 호적과 혼인까지 담당했다. 도시민은 소속된 직장을 의미하는 '단웨이(单位)'가 양육, 교육, 의료, 관혼상제, 가족계획까지 관리했다. 모든 인민은 인민공사와 단웨이에서 생활 전반을 보장 받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집단과 단체가 있을 뿐 개인은 없었다. 최소한의 사적인 공간과 최대한의 공적인 공간으로 조직된 장소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인민공사와 단웨이는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부동산 시장이 형성되면서 해체됐다. 그동안 중국은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중국 학생들은 그 성장의 단물을 마음껏 먹고 자란 '바링허우(80后, 80년대생)'이다.

그런데 서구문화와 개인주의에 빠졌다는 바링허우들이 어떻게 사회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낡고 불편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개혁개방은 중국 경제와 직결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이다. 집단주의 문화와 교육, 관리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바링허우의 신세대다움은 서구지향의 소비문화에 국한된 것일 뿐, 정신문화와는 관계가 없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교육을 받아왔으니 집단적인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겠지, 나는 이렇게 짐작했다.

몇 년 후, 최소한의 공간을 설계했던 2학년이 5학년이 되었다. 다시 만난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묻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서류상으로는 한 방에 여섯 명이긴 한데, 제대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애들은 보통 두세 명 정도밖에 안 될걸요?"
"짐만 기숙사에 놓고.... 집이 칭다오에 있으면 집과 기숙사를 왔다 갔다 하고, 그게 아니면 친구와 방을 구해 살기도 하고...."
"어휴, 여섯 명이 어떻게 한 방을 써요? 담배 냄새 때문에 공기도 텁텁하고 누가 컴퓨터 게임이라도 하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기숙사는 도무지 사생활이 없어요. 사생활이!"

결국 나의 짐작이 틀렸다.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했던 것은 앳된 2학년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머리가 굵어진 5학년에게 6인실 기숙사는 심심함을 달래는 장소가 아니라 사생활이 없는 불편한 장소였다.

"사생활? 우리땐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기숙사가 불편하다고 다른 데 방 구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구요. 대학교에 다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70년대생인 교직원의 말을 들으니, 역시 신세대 바링허우는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바링허우도 다 같은 바링허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그:#중국 칭다오, #대학교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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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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