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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TV 살까?"
"안 돼!"

1년 전 쯤 이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사야한다는 집사람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제가 반대했던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TV 보면 안 좋아. 그리고 TV 있으면 우리도 자꾸 켜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율이도 TV를 많이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율이 다섯 살 될 때까지는 TV 사지 말자."

그렇게 말을 한 제 자신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외국에 살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없으면 실시간으로 스포츠 중계를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스포츠 중계가 해외 지역에서는 인터넷으로 서비스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꼭 텔레비전을 산 후에 위성 방송을 달아야 국내 스포츠 중계를 마음 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꾹 참고 텔레비전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텔레비전을 사면 결국 위성도 달 것이고 그러면 스포츠 중계는 물론이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다 시간 맞춰 챙겨볼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거실에는 책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아들 녀석도 책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니 그대신 스마트폰을 자주 보게 된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끊어내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스마트폰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곤해서 더 자고 싶을 때는 아들과 놀아주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만화 동영상 등을 찾아서 보여주는 무책임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아들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혼자서 켜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빠질까봐 안 산 것인데 정작 세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스마트폰을 작동하려 하는 것을 보니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행동은 어른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일테니 저를 먼저 바꾸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제가 책을 보니 아들도 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들이 책을 들긴 들었는데 그 책이 '신공략 중국어'였습니다. 그것도 거꾸로 들고 그 책을 열심히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원래 읽던 동화책으로 바꾸어줄까도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고른 책이니 그냥 두자고 생각해 그냥 두었습니다. 일단 어쨌든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에게 빼앗긴 책
▲ 아들 아들에게 빼앗긴 책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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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날 또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책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제 책을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보고 싶은 책이었기에 다른 동화책을 보라며 권해주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를 것인데 열심히 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는 것인지 모르고 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당연히 모르고 보는 것이겠죠?) 워낙 열심히 보니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책 읽는 아들
▲ 책 읽는 아들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책 읽는 아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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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하는 것도 아니고 책 보겠다는데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도 이상하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기다렸을 뿐인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순간 아들 녀석이 와서 제 머리를 위로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일어나! 일어나! 아빠."

그리고 거실로 나가서 놀라고 손을 잡아 끕니다. 그리하여 원래 제가 의도했던 부자가 책을 읽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책 읽는 아빠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했는데 계속된 실패에 조금은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정말 아들을 위한 것은 아들이 아빠와 놀고 싶을 때 같이 놀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아직도 스마트폰과 잠과 아들과 놀기 중에서 항상 아들과 놀기를 제일 먼저 선택하지 못하는 저. 아빠로서 아직도 많이 노력해야겠죠?


태그:#아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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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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