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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간다.
▲ 검화당(집 이름)아침 준공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간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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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칼푸드(local food)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생활이라지만 시골집은 자칫하면 버려야 할 쓰레기로 주변이 지저분해지기 십상이다. 도시의 생활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도시에서는 잔손질이 된 먹거리이지만 시골 생활은 텃밭에서 수확해온 채소를 포함한 농산물이 식탁에 오르고 나면 많은 쭉정이가 남기 마련이다. 음식물 쓰레기야 썩혀서 퇴비로 사용한다지만 다른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거나 소각해야 한다.

텃밭을 가꾸고, 집주변 정리와 숲가꾸기(편백나무, 고로쇠, 산마늘, 곰취, 블루베리)까지 하려다보니 해가 뜨기 전에 일하러 나가고 해가져야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일벌레들이 아닌가?'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주인이고 집사람이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자축의 자리도 잦다. 집사람과 둘이서 한 잔씩이지만 매일 하다 보면 포도주병, 맥주병, 소주병, 막걸리병들이 상당히 쌓인다.

우리가 집 주변을 정리하는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필요한 부품은 구입해야겠지만 가능하면 집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귀촌하기 전 주말농장 관리사로 지었던 시랑헌, 본집, 공방까지 3채를 지으면서 쓰고 남은 자재들이 상당하다. 돌과 흙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쓰고 남은 판재 한 토막, 못 하나를 챙기고, 사용했던 연장들을 청소하여 정리하다 보면 귀촌하기 전 주말농장 시절에는 '돈을 쓰기보다 뿌리거나 흘리면서 살았구나!'라는 느낌이 절절하다. 텃밭과 정원에서 일을 하다보면 호미, 낫, 심지어는 삽과 곡괭이까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연장을 사용하고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연장이나 공구를 찾는 일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시골생활에서는 뭐든지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두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널찍한 창고가 꼭 필요하다.

매일 해야 할 일의 순서는 대부분 집사람이 정한다. 전 주 일주일 동안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창고를 만들었더니, 다음 작업은 쓰레기 소각장이란다. 3~4일 고생하여 소각장을 만들었더니, 이번에는 쓰레기 분리수거함이다. 이틀간 비 오는 날 임에도 틈틈이 분리수거함을 만들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은 지붕을 씌우기 위해 9000원으로 투명 비닐판인 2400x900 썬라이트 한 장 사온 것이 경비이고, 쓰레기 소각장은 시멘트 4포 2만4000원, 모래 2만 원이 경비 목록이며, 장작보관창고는 각 파이프와 나무기둥을 연결할 볼트·너트 10개 4500원이 들었다. 남은 시멘트와 모레는 상수도 보수공사에 사용할 것이다. 집사람의 집주변을 가꾸는 개념(Concept)은 경비의 최소화와 현지조달(돌, 흙, 간벌한 나무 또는 태풍에 넘어진 나무)의 최대화이다.

장작보관창고

나는 길을 떠날 때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길을 떠날 준비가 되면 길을 나선다. 장작보관창고 만들기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한 일이다.

올 봄 3월, 50% 정부지원 50% 자부담으로 시행하는 저온저장고 설치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적당한 설치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저온저장고와 고로쇠수액 정수기가 설치되었고 비가림 건물까지 완공했다.

이제 뒤안에서 썩고 있는 간벌한 고로쇠나무를 갈무리하여 보관할 창고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할 차례다. 쓰고 남은 자재들을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설계할 필요도 없다. 집사람 의견을 들어가면서 자투리 자재로 창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굴러다니는 각파이프를 모아 5000x800㎜ 크기의 받침판을 용접하여 만들었다. 휴대용 용접기는 사용하기가 쉽고 편리하다. 사용하다보면 금방 필요한 정도까지 숙달되는 것 같다. 철판에 90x90㎜ 방부목 기둥을 세우려니 지지대가 필요하다. 각파이프를 둘로 자르니 L자 지지대가 생겼다. 받침판에 용접하여 기둥의 앞뒤로 붙이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볼트너트로 조이니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기둥 위에 서까래를 짜 붙이고 사온 선라이트를 얹으니 훌륭한 장작보관창고 모습이 드러났다.

화목보일러와 장작난로로 난방하는 검화당은 나무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 여름애 준비하여 대비하여야한다.
▲ 장작보관창고 화목보일러와 장작난로로 난방하는 검화당은 나무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 여름애 준비하여 대비하여야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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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소각장

산골 생활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주변에 널브러뜨려 방치하기 십상이다. 귀촌한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요인이기도하다. 일상생활 중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2년 동안 집을 짓고, 정원을 조성하면서 데크(deck)를 비롯하여 소품 가구들을 만드느라 크고 작은 공사가 끊이질 않는 우리 집 형편이야 부언할 필요가 없다.

쓰레기 소각장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급한 일들 때문에 뒤로 미뤄둔 일이다. 집사람이 트럭을 몰고 나선다. 내가 소각장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모래와 시멘트를 사오겠단다. 일요일이라 사기 힘들지 모른다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하기 싫어하는 트럭운전을 자청하고 나선 것을 보니 쓰레기소각장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기다린 모양이다.

가게 간판에 쓰인 전화번호로 주인을 호출하여 모래와 시멘트를 사왔단다. 시골 인심이라 가능한 일이다. 3곳을 가봤지만 허탕을 치자 집사람이 순간 기지를 발휘한 모양이다. 트럭에서 내려서는 집사람 이마에 땀방울이 솟았다.

시멘트 모르타르로 두툼하게 바닥을 깔고 틈틈이 모아둔 돌들을 쌓아간다. 돌을 쌓는 일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창작활동에 가깝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돌들이 얽혀 일체감을 이뤄가는 것을 보면 '그 자리를 위해 그 돌이 존재한다.' 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돌은 다 쓸모가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이틀간 힘든 노동이자 예술 활동인 돌쌓기 끝에 소각장이 만들어졌다. 주변의 쓰레기를 모아 불을 지펴본다. 만족스럽다. 옆의 집사람도 웃고 있다.

산골생활에 필요한 소각장, 기름통으로 만든 소각장을 사용했으나 2년이 못되 교체해야한다.
▲ 쓰레기 소각장 산골생활에 필요한 소각장, 기름통으로 만든 소각장을 사용했으나 2년이 못되 교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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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함

바라던 소각장이 만들어졌으니 행복해야 할 집사람 표정이 그렇지 않다. 다그쳐 물어보자 머뭇거리며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없단다. 피곤이 누적된 내 모습을 보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쉬어야 할 것 같고, 일의 진도로 보면 바로 해야 할 일이라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집사람 기를 살려줘야 할 것 같아 "분리수거함까지 만들고 하루나 쉬도록 하세!" 하면서 일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비로소 집사람 얼굴이 밝아진다.

쓸 만한 재목을 컨테이너 창고와 공방으로 옮겨 다니며 모았다. 재목을 봐 가면서 일을 한다. 일이 거칠어지고 질도 축사 수준으로 떨어진다. 일이 진척되어가면서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나에 비해 집사람은 신명이 났다. '이 곳은 이렇게 저 곳은 저렇게' 집사람의 구상대로 만들어진다. 가능하면 집사람의 미적 감각을 존중하지만, 하자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집사람이 이해하고 양보할 때까지 논쟁이 계속된다.

집사람은 앞면에 문을 달지 않아도 쓰레기봉투를 위로 들어낼 수 있으니 벽으로 만들라는 요구이고 나는 쓰레기봉투가 가득 차면 밖으로 들어내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니 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병, 깡통, 프라스틱, 일반쓰레기를 분리하여 모을 수 있는 수거함, 사용하고 남은 자재들로 만들었다.
▲ 쓰레기분리수거함 병, 깡통, 프라스틱, 일반쓰레기를 분리하여 모을 수 있는 수거함, 사용하고 남은 자재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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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예뿐 문을 만들겠다." 다짐을 몇 차례 하고 난 후 문을 만들 수 있었다. 예뿐 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첩을 사와 문짝을 달고 나니 그런대로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파닭에 맥주 한 쪼끼' 사겠단다. "좋다!" 맞장구로 화답했다. 혈당관리는 그 다음 문제다.

통닭에 맥주 한 쪼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나와 집사람의 화제는 '내일부터 해야 할 일'이었다.

주변을 정돈하고 가꾸는 일은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다.


태그:#귀농귀촌, #정부흥, #검화당, #지리산 ,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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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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