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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 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7월 1일 진도항에서, 나는 10년 뒤에 다시 돌아와 수장된 아이들에게 내 10년의 행적을 보고하기로 다짐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본 모든 양심적 인사들이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단결과 변화를 통해 야권 참패의 역사를 뒤집자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지난날의 민주화운동, 민주화세력의 집권전선에서 싸웠던 전과, 훌륭한 선배들과 함께했던 추억, 현대적 복지제도의 입법 성과를 냈다는 복지전략가로서의 자부심... 그런데 진도항에서 다 무너졌다. 아니 그 전에 내 아들이 던진 한마디에 이미 무너졌다.

"아빠 왜 세상이 이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좋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리라. 사회운동을 시작한 게 1987년이고 정치권에서 1995년부터 20년 가까이 밥 먹고 살았다.

경제 논리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1원 1표라서 돈 많은 사람의 권력이 강하다.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기본적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한다. 나는 정치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에서의 실패, 야권의 7.30 재보선 참패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올바른 대책 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지난 2007년부터 7년간, 두 번의 대선 참패와 두 번의 총선 참패, 2014년 지방선거의 아쉬운 실패, 그리고 스물 몇 번의 재보선 참패에 이르기까지, 야당의 최근 선거사는 패배의 역사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를 보는 눈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만큼 했으면 잘했다는 구조적 필패론도 있었다. 사실상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총력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의 캠페인이 승부의 명암을 갈랐다는 전략부재 무능론도 있다. 나는 무엇이 맞는 분석인지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7.30 재보선의 대참패도 야당의 존재 근거를 다시 물어야 할 정도의 참담한 패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이 깨져나가고 있었고, 인사 참사와 세월호 참사가 민심을 격동시킨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이 11대 4라는 어처구니없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 패배의 원인은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미 물러났지만 김한길과 안철수의 모자란 리더십이 불러온 패배라는 말은 차라리 쉽다. 대표적 원인으로 공천을 뽑는 사람도 있다. 공천의 혼선과 실패가 낳은 재앙이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구도, 전략, 전술, 리더십에서 캠페인까지, 승패를 가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야권은 공천을 엉망으로 하고 늘상 선거연대에 시달리며 젊은층 투표율에만 기댄다. 결국 또 다시 지고 말았다. 반복되는 패배와 반복되는 분석에 기시감이 든다. 또 다시 분열되고 지리멸렬해진다. 패배의 늪에 깊이 빠진 야권, 어떻게 살아나야 하나.

관점을 정확하게 정리해보자. 이런 때일수록 통찰력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승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을 껴안고 호남-충청연합으로 이회창을 이겼다. 신한국당은 이인제의 분열로 표가 더 분산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국민경선의 역동성에 더해 정몽준을 껴안아 미래지향적인 세대교체 흐름까지 포괄했다. 이회창은 특권층을 대표하는 낡은 인물로 낙인찍히고 또 다시 패배했다. 승리의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은 '단결과 변화'이다.  

세 가지 문제와 세 가지 해법

첫 번째 문제, 야권은 분열됐다.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누구는 민주당 혁신론을, 누구는 신당추진론을, 누구는 진보정당론을, 누구는 사회운동강화론을 펼쳤다.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작은 차이를 더 큰 차이로 만들며 다른 길로 가는 모습이었다. 현재 민주진보진영은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여러 정당으로 분열되었다.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대선후보 중심으로 계파가 분열되어 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지역주의 정치판에서 영남과 충청을 하나로 묶어냈으며, 보수진영 전체를 단 하나의 정당으로 묶었다.

민주진보진영은 분열을 독립으로 합리화한다. 다수파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손해볼 것이 없다고 안주하고, 소수파 진보정당은 진보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 노선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성과 없는 연합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감동도 없다 오히려 식상하다.

선거는 구도다. 단 1표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다수대표제 선거체제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진보진영간의 "사실상의 1:1 구도만 선거판에서 만들면 된다"라고 떠드는 자들이 한심할 뿐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어떤 손해를 보고, 어떤 욕을 먹더라도 깨지지 않는 단일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야권의 노선 정체성이다. 아직도 진보냐 온건중도냐를 가지고 싸운다. 이념적 정체성은 사실 낡은 잣대다. 야권은 2차원적인 진보와 보수의 줄 위에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하던 때 정치권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일부 수용됐다.

실용주의가 답이다. 무슨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노선, 그것은 시대의 위기를 종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야권에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선명성이나 중간층을 공략하기 위한 중도성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그 자체일 뿐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유능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야권의 행위적 정체성이다. 대적투쟁전선이냐 문제해결정책전선이냐. 투쟁성을 야권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그룹이 항상 존재한다. 소위 '야성'이라고 한다. 반독재민주화운동기의 야당은 독재라는 거악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 통치가 독재인가. 아니다. 철저하게 민주주의다.

물론 기업을 옹호하고 절차적 정당성만 획득한 관리 민주주의이다. 하지만 선거로 뽑혔고 법대로 인사하고 법대로 집행한다. 지금 야당의 '투쟁'이란 87년 체제가 낳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변형으로 보일 뿐이다. 그것도 그나마 야권내부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지, 기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과인 박 대통령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몰상식한 것으로 여긴다.

야권은 대선 직후부터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 문제를 1년 넘게 물고 늘어졌다. 야권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가세하면서부터 그야말로 대선불복으로 비쳤다. 이 사안은 간단히 볼 것이 아니다. 낙선한 후보자가 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해 당선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그걸 빌미로 다음 선거에 활용한다. 그것이 팩트가 되었다. 야권은 민주주의 회복 투쟁을 했을 뿐이라지만, 사회적으로는 '대선불복' 프레임이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정쟁에서 떠나 문제해결 정책전선을 대폭 확장해야만 한다.

감히 '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 무상급식이 성공한 진보의 프레임이 되었는가 상기하길 바란다. 아이들 학교급식 문제, 엄마들 골치아픈 도시락 준비문제, 친환경 음식 문제 등, 생활현장에서의 문제들을 가치있는 방향으로 해결한다. 이것이 진짜 진보다.   

변화하기 위해 변화하자. 올바른 방향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 민주진보진영은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다. 더 퇴보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고 노력하는가. 아니다. 안주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과감하게 색상마저 바꿀 때, 새정치민주연합은 수동적으로 파란색으로 정했다. 변화가 아니다.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고집쟁이 이정현을 순천에 공천하고 당선시켰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지역위원장들을 공천했다. 당선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출마하지 않겠다던 권은희를 광주에 공천했다. 당선은 되었으나 오히려 대선불복 프레임이 가동됐었다.

정의당은 배수진을 치고 당대표급들을 출전시켜 단일화 테이블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젊은 후보 기동민은 사라졌으며 노회찬 단일후보는 너무 늦어서 단일화 효과도 나오지 못했다. 무엇이 변화인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공들인 지역도 포기하고 마구 옮겼다는 비판이 거셌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권력 탐욕이라는 악성 프레임이 작동했다.

선거 직후 손학규는 전격적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변화의 방향은 세대교체인 듯 했다. 그리고 다시 반발이 거셌다. 변화는 또 다시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변화는 변화의 내용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위한 변화다. 변화하기 위한 변화이리라.      

삶 속의 변화를 만드는 '사회 정당'을 만들자

이 시대 민주주의는 이미 기업의 손아귀에 놓여있다.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던 시절은 끝났다. 경제가 정치를 리드한다. 민주주의는 관리된다. 좁은 여의도 안에서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누구를 위하여 운영되는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결코 권력자 일인을 위한 정치독재 시스템이 아니다. 근본적 권력이 이미 경제로 옮겨진 이상, 정치가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인가. 바로 경제정의다.

경제사회 전 영역에서 양극화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지키고 늘려야 한다.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 지갑에 단돈 천 원이라도 불어나야 하고, 죽기 일보직전에 몰린 빈곤층들에게 생존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 그것도 야권이 싸워야 할 대상이 독재망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삶 속으로, 생활 속으로, 지역 속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의 변화는 '삶 속 변화'다.

정치혁신과 정당혁신.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시스템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단순다수제에 기반한 국회의원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 본질적으로 접근해보면, 법과 예산을 다룬다는 면에서 볼 때, 정치를 진짜로 하는 것은 관료들이다. 대통령마저 관료들 아래에 있다. 문제 해결의 키를 쥔 선장들이 관료사회에 차고 넘친다.

반면에 정치권에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섬멸적 투쟁에 앞장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작용으로 대중적 명망가들을 영입하기에 바빴다. 세상을 바꾸는 데 쓰고자 정치를 취했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후진성과 무능을 접하면서 그저 직업정치인으로 안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일이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강고해질 일이다. 시스템의 문제는 정치에서 풀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면, 경제사회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정당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해 '사회정당'을 건설하라.

첫째, 정당의 인물을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혁신하라. 정책전선을 다양하게 펼치고 문제해결능력을 지금 당장 보여라. 만약에 국민들 호주머니에 단 돈 1000원을 넣어주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다음 선거는 무조건 승리할 것이다.

둘째, 정당의 모든 부분을 개방하고 시민사회와 풀뿌리 지역활동가들과 접속하라.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원래 정당은 계층과 지역에 기반이 있다. 기반을 근거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야 한다. 기존의 동원정당은 계파정치의 후과다. 계파동원정당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을 건설하라.

셋째, 정당의 운영방식을 SNS로 일대 혁신하라. 순식간에 소통되는 길을 이용하라. 당론이나 정책이 당원 혹은 지지자들에게 읽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한 시간도 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소통이 문제가 아니다. 소통의 '속도'를 건설하라.

정당을 사회화하라. 사회 정당을 건설하라.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 살고 소수 진보정당이 살 길이며, 현존하는 사회운동세력이 역사에 기여하는 길이다. 이미 민주화운동의 후광은 사라졌다. 486은 새로운 사회정당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민주진보진영이 가야할 변화는 바로 정치 주체의 사회화다. 그 길이 복잡하고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달성해야할 선도적 변화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2016년 4월 총선은 몇 가지 점에서 민주진보진영에게 기회이다.

먼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다. 작금의 박근혜 정권 경제정책은 줄푸세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일자리도 더 줄어들 것이다. 대북관계도 개선할 의지나 방법이 없다. 사회불안도 나날이 악화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낙제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2017년 대선과 시간 차가 있는 총선이라는 점이다. 대권 후보에게 바치는 '상납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드리는 '사회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셋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공론화를 더 진행할 수 있다. 더 이상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소명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민주진보진영이 다음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충분히 남았다. 분투하자. 함께 이기자.


태그:#정당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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