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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민생 인프라 구축 등의 내용이 담긴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화 할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의 중장기 평화 통일 철학과 실천 방안 등이 강조됐다.

이날 회의에는 류길재 정부 부위원장과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을 비롯해 80여 명의 위원들이 참석했으며, 통일헌장 제정 검토와 통일 한반도의 신경제성장 모델, 그리고 통일준비 실천과제 발굴 계획 등이 보고됐다. 또 이날 회의에서는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 방안과 5.24 제재 조치 해제 문제가 건의됐으나,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는 위원회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위원회의 향후 지향점과 같은 큰 틀만 제시된 것이라 해도 인천아시안게임이나 추석 이산가족 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대통령이 주제하는 회의라는 특성 때문에 대통령 목소리가 주로 강조됐다. 하지만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 발표 이후 남북 관계는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위원회가 앞으로도 박 대통령의 통일과 관련한 '원맨쇼'가 되면서 다양한 통일 및 남북 관계 방안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의 민생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통일준비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통일은 한반도의 비정상을 극복하는 궁극의 길이라며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밝힌 대통령의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 추구하는 통일은 남북한의 물리적 통합을 넘어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고 한민족의 대도약을 이끄는 성장 동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의 민생 기반시설 구축이 중요하다. 내륙철도와 남북철도 연결과 같은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과 도로 확충 등은 당장의 인도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기초공사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선 한반도 긴장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이 조성된다면 세계에 한반도 통일의 시작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밖의 통일 준비과제로 남북한 수자원 공동이용과 산림녹화 산업, 북한 지하자원의 호혜적 이용 방안 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드레스덴 구상과 북한 정책의 목표가 북한의 고립에 있지 않다. 드레스덴 구상의 목표는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교류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교류협력부터 시작해 나갈 것이다.

통일준비위원회가 통일 준비과정에서 한국 국민과 주변국들에게 통일의 비전을 제시해 줄 것도 요청한다. 앞으로 통일을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를 통합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남북이 현재 전쟁 직전의 군사적 대치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 한반도 통일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남북 당국이 이명박 정권 중반 이후 개성 공단 관련 외에는 지난 수년 동안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인 남북문제 등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남측의 대북 정책의 큰 틀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적극 협력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 등에서 먼저 '백기'를 들고 나오라는 식의 요구를 지속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이 먼저 무릎을 꿇고 나오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북한은 핵실험 위협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남측은 미국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대북 군사훈련을 연중 실시하고 있으며 북은 이에 대해 북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라면서 반발하고 남측의 대화 요구에 대해 군사 훈련 중단부터라는 단서를 달아 긴장 상태를 고조시키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에도 전방을 방문해 적 도발시 좌고우면하지 말고 주저 없이 단호하게 즉각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한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중동부 GOP 초소를 방문해 전투태세 확립과 부단한 훈련, 전투지휘자에 대한 교육 등 작전태세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장관의 훈시에 따르면 남북은 우발적 총격 사고만으로도 전면전으로 돌입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다. 정부는 전쟁의 위협을 해소해 국민과 군 장병을 안심시키는 대안도 같이 제시해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청와대의 대북 정책은 군사적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이라는 단일 방안만이 강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청와대의 분위기는 평화적으로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시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식의 평화 정착 전략을 논의하는 것 같지 않다. 군 내부의 가혹행위 문제의 해결도 남북간 평화 정착이나 통일 노력의 활성화가 실천되면 가능할 터이지만 이런 각도에서 접근하는 시각은 정부 내에서 보이지 않는 듯하다. 수년째 지속되는 남북 간 전쟁 돌입 위기 상황 속에서 장병들의 정서가 가혹행위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박 대통령은 현실 정치를 담당한 최고 국정 최고책임자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남북 긴장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실 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남북 공멸의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가 넘치게 할 근본적, 실천적 통일 과정과 그 방안 등이 생략된 장문의 통일 담론을 제기한 것은 공허하다. 이날 회의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언제까지 메뉴판만 차릴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으로 제시한 아래와 같은 내용은 살펴 볼만 하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해달라는 대통령의 제안을 초당적 협력의 자세로 수용해서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늘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 앞서 당내 논의를 거쳐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 5.24조치 철회, 둘째, 이산가족상봉 성사 및 정례화 합의, 금강산관광 재개, 마지막으로 남북당국회담을 재개하고 이를 발전시켜서 정상회담으로 연결시킬 것 등이다.

이는 꽉 막혀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들이며, 대다수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안들이다. 그런데 회의석상에서 통일부 장관은 이러한 제안이 정례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현안은 통일부에 맡겨달라고 발언했다. 통일준비위에서는 큰 구상과 담론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성의 있는 제안을 즉석에서 걷어찬 통일부장관의 태도는 오만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럴듯한 구상이라도 현안을 그대로 방치한 채 실현동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통일부장관은 통일준비위원회를 정부가 제안한 의제에 장단과 구색이나 맞추는 기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행 프로그램이다. 테이블 위에 메뉴판만 잔뜩 늘어놓고 정작 음식은 없는 상황을 더 이상 반복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정세를 볼 때도 남북협력이 시급하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인천 아시안게임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판단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잘 활용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마침 오늘 대통령께서도 문화예술과 스포츠분야의 교류협력 필요성을 거듭 확인했다. 포용력 있는 자세로 남북 체육실무 접촉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을 남북관계 개선의 디딤돌로 삼는 현명한 접근을 요청하고 기대한다.

아울러 5.24 조치 해제, 이산가족상봉 등 시급한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한편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청와대에서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린 날 5·24조치 해제와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적극 지원을 언급한 것은 주목된다(<폴리뉴스> 보도내용).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제재 조치인 5.24조치가 5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데 대해 "지난 정권 때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서 잠정적으로 우리가 취했던 5·24조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 기회에 5·24조치를 전향적으로 풀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정권 때 대북정책과 이번 정권에서의 통일정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정책 수단도 바뀌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북한에 우리의 평화적인 역량을 들여보내서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정책으로 하루 빨리 전환돼야 한다. 앞으로 당이 대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다가오고 있는데 북한 선수단, 응원단 받아들이는 문제가 타결이 안 됐다. 1차 협상 이후 지지부진한 가운데에 있는데 우리 정부가 오히려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아시안게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오히려 주도적으로 우리 항공편을 보내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데리고 오고, 우리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항공편이나 숙박과 관련된 비용은 남북 협력기금에서 지출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 돈은 결국 우리 기업이나 우리 쪽에 흘러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여론에도 크게 문제되는 것이 없다."

이인제 의원은 발등의 불이 되고 있는 남북 현안 2 가지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중장기적 구상과 청사진을 밝히면서 동시에 현재의 국민적 관심사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면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더 높아졌을 법하다.

정부는 국민 모두가 주시하는 남북 현안에 대해 모두가 힘을 합쳐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평화적 통일 노력은 상대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하고 남북이 실천 가능한 교류, 협력의 과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이런 평화 통일의 로드맵은 이미 7.4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 등에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평화통일 방안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는데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분단의 해소와 평화 통일 과정을 생략한 채 통일 이후를 강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에 실렸습니다.



태그:#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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