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화나비 네트워크 김샘 대표가 벽화 그리기 현장에서 웃고 있는 모습.
 평화나비 네트워크 김샘 대표가 벽화 그리기 현장에서 웃고 있는 모습.
ⓒ 김예지

관련사진보기


지난 6일 새벽,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지난 3일과 4일 이틀 동안 그린 '벽화'가 떠올랐다.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유화물감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 페이스북에는 빗물에 번진 벽화 사진이 올라왔다.

벽화 그리기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을 평화의 골목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고백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아래 기림일)이다. 나는 벽화 그리기가 기림일 행사 중 하나라는 것도 모른 채 친구를 따라(?) 참여했다. 나중에 행사 취지를 알고 기림일에 대한 기사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당장 그림을 그리느라 너무 바빴고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면 두 시간 동안 내리 잠만 잘 정도였다. 결국 취재는 포기.

기림일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벽화 그리기에 함께 참여한 평화나비네트워크(아래 평화나비) 사람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평화나비는 '평화나비 페스타(Festa)'를 준비하고 있었다. 곧바로 김샘(23·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평화나비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마침 그날 빗물에 번진 벽화를 고쳐 그리러 간다고 했다. 7일 서울 성산동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근처 카페에서 김샘 대표와 마주 앉았다.

- 평화나비 페스타 행사와 기림일(14일)이 일주일쯤 남았습니다. 홍보 활동도 하고 벽화도 그리고 바쁜 것 같은데요.
"이번 행사는 기획단 70명, 서포터즈가 150명이에요. 그중에서 (평화나비 페스타 행사 전) 일주일 동안 홍보활동을 할 실천단을 따로 꾸렸어요. 기림일이 단순히 우리끼리 노는 축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방안을 만들었으면 좋겠고, 그런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 8시에 광화문, 시청 일대 출근길에서 한 시간 동안 1인시위를 해요. 11시부터 1시까지는 간단한 도보행진을 하고요. 이 외에도 거리, 지하철 캠페인 같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 지난 4일에는 일본대사관 앞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일본대사관 측에 질의서를 전달하려다 경찰에게 저지당했습니다. 경찰이 막을 것을 예상했나요?
"(경찰이) 막을 것을 알기는 했죠.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질의서 전달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우리가 직접 전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통해 건네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일본대사관 측에서 (질의서) 받는 것 자체를 거부했어요. 일본대사관이 종종 이럴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일 국장급 협의를 했잖아요. (우리는 일본이) 겉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고요."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평화나비 대학생 도보행진 선포 기자회견
 평화나비 대학생 도보행진 선포 기자회견
ⓒ 평화나비

관련사진보기


- 평화나비는 그동안 대학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평화나비콘서트'와 같은 행사를 열었습니다. 기림일 맞이 행사인 평화나비 페스타는 처음인데, 행사를 준비하게 된 배경이 궁급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이 콘서트였어요. 대학생들의 입맛에 맞으면서 내용성을 갖춘 행사이지요. 그런데 일본 자위대 논란과 같은 것을 보면서, 대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화나비콘서트는 한번 참여하고 끝이잖아요. 그런데 평화나비 페스타는 퍼포먼스로 함께 행동하고, 평화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볼 수 있어요. 시민 문화제에서는 시민과 대학생들이 다 같이 모이고요. 좀 더 미래 지향적인 행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 위안부 '기림일' 맞이 행사라고 해서 숙연한 분위기의 프로그램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예상외로 남·북·일 대학생 평화회담과 시민 문화제,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데요.
"많은 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왜 기리느냐'고 질문하시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세요. '추모제를 해야지 왜 기림일 행사를 하느냐'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런데 기림일은 피해받은 것을 기리자는 것이 아니에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의 존재를 최초로 증언한 1991년부터) 23년간 싸우고 계세요. 단순히 본인에게 돌아올 금전적 배상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한반도의 평화나 민족의 역사, 여성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것을 기리자는 의미입니다."

- 행사 프로그램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14일에 있을 남·북·일 대학생 평화회담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행사에 이 프로그램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넓게 보고자 했어요. '위안부' 문제도 결국 북한과 함께 해결해야 할 것이라 생각해요. 북한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단체가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어요. 올해 초에 정대협이 중국 선양에서 북한의 단체와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응 결의문을 발표했어요. 이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의 대학생들도 함께 '위안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프로그램이에요.

안타까운 점은, 북한 대학생을 초청하는 게 결국 불발되었어요. 진짜 북한 대학생을 초청하는 건 현실에서 어렵잖아요. 그래서 북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학교 친구들을 초청했어요. 이 친구들이 제안을 승낙했고, 초청이 마무리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심해지다 보니, (이런 회담에) 왔다가 괜히 일본에서 탄압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우리나라도 이들이 온다고 환영할 분위기가 아니고요. 며칠 전에 못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국 화상통화나 서면으로 대신하기로 했어요."

- 15일에는 'REAL(리얼) 광복절 퍼레이드'를 진행합니다. 'REAL'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눈에 띕니다.
"광복이 왔고, 해방이 왔다고 하잖아요. 억압과 굴레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방인데, 할머니들은 광복을 맞이해도 변한 것이 없어요. 여전히 사회의 편견이 존재하고, 일본은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어요. 아직도 할머니들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절을 찾아 드리자는 취지에서 'REAL 광복절 퍼레이드'라는 이름을 붙여봤어요."

"'위안부'를 왜 기리냐고? 역사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 기리는 것"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골목에서 벽화를 그리는 평화나비 서포터즈들.
▲ 벽화를 그리는 평화나비 서포터즈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골목에서 벽화를 그리는 평화나비 서포터즈들.
ⓒ 김예지

관련사진보기


- 규모가 큰 행사인 데다 대학생들끼리 기획하다 보니 비용 문제 등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기업 후원이 잘 안 돼요. (웃음)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는 단체는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본 자본이 안 들어와 있는 기업이 거의 없거든요. 후원 요청은 다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거의 개인 후원이나 단체 후원, 국회의원 후원으로 재정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후원 요청함을 들고 국회를 돌았어요. 국회에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두 분, 평소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던 분 두 분. 이렇게 해서 총 네 분이 도와주고 있어요. 모금 활동도 하고요. 대학생들 활동이 사실 다 똑같죠. 자비 들여서 활동해요.(웃음)"

- 평화나비 페스타와 같은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가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궁극적 목표죠. 가끔 (평화나비 서포터즈들이) 농담으로 말해요. '평화나비가 없어져야 좋은 것 아냐? 빨리 문제가 해결돼야지.' 그럼 제가 그러죠. '세상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되었다고 끝은 아니지. 민간인 학살 문제도 해결해야지.'(웃음) 짧게 봤을 때는 대학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좀 더 공론화되었으면 좋겠어요. 멀리 봤을 때는 추상적이나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벽화 그리기 현장을 찾았다. 노란 티셔츠를 맞춰 입고 벽화를 그리는 평화나비 서포터즈를 보니 문득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집에서 읽은 노란 스웨터 이야기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양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갈 때, 배웅을 나온 어머니가 준 마지막 선물이 노란 스웨터다. 할머니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군에 잡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끝내 입지 못한 노란 옷을 입고, 그녀의 삶을 다시 밝히는 이들이 있다. 김샘 대표는 평화나비 페스타를 통해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평화의 미래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바람처럼, 이 행사를 통해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광복이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평화라고 하면 보통 평온하고, 잔잔한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평화를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계시잖아요. 침묵하고 불행한 사회보다는 시끄럽더라도 행복한 사회, 그게 평화라고 봐요."

평화나비 페스타 프로그램
 평화나비 페스타 프로그램
ⓒ 평화나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위안부 기림일, #평화나비 , #평화나비 페스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