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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 건설 현장에서 만난 직영반장은 나를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렀다. 건설 현장에서 멸종된 '젊은 종'이 나타났다는 이유다. '나를 관심 있게 보는구나'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그 말은 한창 젊은 놈이 막노동판에서 뭐하고 있느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삼십 대 중반, 분명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형틀 목수(건설 현장에서 거푸집을 짜는 목수) 일을 할 땐 20명 넘는 사람 중에서도 내가 제일 막내였고, 지금 열세 명이 일하는 한옥 팀에서도 막내다. 나 다음으로 나이가 적은 목수 형님과의 나이 차이도 10살이다.

삼십 대 중반, 여기서는 막내 소리 듣는다

지난달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나온 '2013 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여러 보도가 나왔다. 대부분 취업난 때문에 20대의 일시적 근로가 증가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문제는 '취업난에 건설현장 내몰린 청춘 20만 육박' 같은 제목에서처럼 건설 현장을 청춘이 가서는 안 되는 막장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평생 직업으로썬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기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실제 통계연보에는 단기직이 아닌 6개월 이상 근무한 20대는 1만 4685명이나 된다).

젊은 층에서 건설직 노동을 피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몸은 고되고, 고된 만큼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목수 일을 해서 내 집 마련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물가대비 육체 노동자의 품값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형편이다. 이런 이유 말고도 건설현장을 피하는 중요한 요인은 위의 기사들에 나타난 것처럼 건설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 인식이다. 건설 노동자 스스로 건설 현장을 '인생 막장'이라고 보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정반대다. 나는 "형틀 목수를 비롯한 건설직 노동자가 직업으로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사회인식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목수를 꿈꾼다
건설현장의 시스템을 깨는 젊은 '목수 후배들'을 기다린다
 건설현장의 시스템을 깨는 젊은 '목수 후배들'을 기다린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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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호주의 한 타일공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형틀 목수 일을 할 때 함께 출퇴근했던 K씨는 호주에서 4년 동안 타일공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의 통근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그의 호주 '노가다' 이야기를 들었다.

일당은 한국보다 세 배 이상이고, 오전 일곱시에 시작해 오후 세시반이면 사용하던 연장을 정리한다고 했다. 그들은 주 5일 일하고, 주급을 받는다. 무엇보다 일 주일치 먹을 부식을 사고 나면 남은 돈으로 여지없이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긴다는 그들의 생활 스타일을 듣고 호주인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저녁이 있고, 주말이 있는 삶. 거기에 경제적 여유까지. 노조에 가입된 경우, 부당해고는 언감생심 꿈도 못꾼단다. 불안정하지 않은 노동 환경인 것이다.

사회적 인식도 달랐다.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사람들이 꺼리지 않는다고 한다. 작업복을 입고 식당에 들어가면 눈칫밥까지 덤으로 먹어야 하는 한국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실제로 호주는 타일공을 비롯 육체 노동자들의 소득이 높은 수준이고, 사회적으로도 돈 잘 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많다고 했다.

이렇게 남의 집 금송아지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해가 되지 않는 항목이 하나 있었다. 기술자와 보조 기술자의 시급이 똑같이 40불이라는 것이었다.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호주 사람들은 기술자는 기능이 높은 만큼 몸은 편하게 일하고, 보조 기술자는 기능이 부족한 만큼 무거운 걸 옮기거나 하는 일이 많으니까 같은 시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기능과 몸이 힘든 것에 대한 가치를 동등하게 생각한다고 할까."

순간 머릿속으로 종소리가 들렸다. 차별의 내면화라 했던가. 목수 친구들과 협동조합 방식으로 일하면서 조건없는 동일분배 방식을 경험했음에도 기능공과 보조 기능공이 같은 시급을 받는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불공평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다니. 한국의 경우, 형틀 목수를 예로 들면 기능공이 16만 원 내외, 보조기능공이 14만 원 내외로 일당이 책정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사실 공식적으로만 그렇지 팀장의 통장을 한 번 거치면 도면반장, 계단 기술자, 중급 기술자, 하급 기술자, 보조기술자 등등으로 분류되고 그에 따른 일당이 10만 원부터 15만 원 사이에서 차등 지급된다. 스스로 차별을 내면화한다는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또한 기성세대가 짜놓은 한국사회의 시스템, 소고기 등급 매기듯 사람을 등급 매기는 시스템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군대, 사회를 통해 우리는 그 시스템을 얼마나 열심히 훈련받아 왔는가.

한국인의 차별의 내면화... 건설현장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땀흘리는 형틀 목수에 도전해 보자. 과정은 이렇다. 혼자보다는 되도록 많은 친구와 함께하는 게 좋다. 그리고 도면 반장까지 욕심내 보자. 당신이 열의가 있고 재능이 있다면 1년, 늦어도 3년이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자. 그리고 팀장 통장 없이 투명한 수익 배분 구조를 만들자.

만약 이 과정까지 다다랐다면 그 다음은 눈에 훤하다. 지금같은 임금체계에서는 노조 활동이 별 의미가 없다. 싸워서 일당 올려봐야 팀장 좋은 일만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원이 차별의 내면화를 겪는 비공식적 차별을 없앤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근로 조건이나 일당을 스스로 직접 관리하고 올리는 과정은 내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 참여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은 더이상 젊은 층이 내몰리는 곳이 아닌 몰리는 곳이 될 것이고, 근로 조건 개선과 함께 좋은 순환을 이루게 될 것이다. 소득이 높아지고 사람이 몰려들면 차츰 사회적 인식 또한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그럴수도 있겠다. 그런데 모든 노동자를 줄세우는 한국 사회의 기존 틀 안에서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기존의시스템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새 틀에서 협력하는 것이 훨씬 쉽고 성공 가능성도 크다.

우리 함께, 우리가 만든 새로운 틀 안에서 현장의 목수가 되보자!

몸은 고되지만,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스트레스가 없다. 만족도 높고, 일도 재미있다.
▲ 처마 밑 휴식 몸은 고되지만,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스트레스가 없다. 만족도 높고, 일도 재미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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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옥목수, #건설직노동자, #한옥,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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