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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평리에 평화를> 표지
 <삼평리에 평화를> 표지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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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보믄 속이 디비지요. 저거 마 어데 큰 비가 오가 화딱 나자빠졌으면 싶지. 막막 폭우가 와가 다 나자빠졌으면 싶은 마음이 들지. 도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촌사람을 이리 직이가 되는가. 도시에는 도시에 저거 사용하도록 장치를 해가 쓰믄 되지."(본문 122쪽)

부산댁 이차연 할머니의 말이다. <삼평리에 평화를>(2014, 한티재 펴냄)은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 사는 할머니(아래 '할매')들 11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글이다.

이차연 할매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삼평리 주민이다. 이곳은 신고리원전에서 대구로 연결되는 북경남 1분기 345kV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23호기가 예정된 곳이다.

송전탑은 이미 22호기와 24호기가 완공된 상태다. 삼평1리는 2009년 이장이 주민의견서를 조작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지금도 계속하여 할매들이 반대 투쟁을 하고 있고,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변홍철)가 결성되어 할매들과 함께 하고 있다.

밀양, 강정 그리고 청도 삼평리

2014년 6월 11일에 밀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밀양시청의 공무원과 경찰 2000여 명이 고압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서 농성하고 있던 주민들의 농성텐트를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으로 강제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연로한 주민들과 수녀들, 그리고 연대하고 있던 시민들이 쇠사슬로 그들의 몸을 묶고 저항했지만, 경찰은 인권을 무시한 채 폭력적인 방법으로 철거를 감행했다.

그에 앞서 2012년 3월 8일에는 천혜의 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던 마을 주민과 시민활동가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은 채 저항했지만, 아침 7시 600여 명의 경찰이 들이닥쳐 시민 해산작전을 성공시켰다.

이 작전으로 시민운동가 한 명이 실신하고, 울부짖음과 비명,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경찰 병력을 투입한 지 2시간여 만에 진압(?)은 끝났고, 오전 11시 20분쯤에 구럼비 발파작업이 강행되었다.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까지 나서 발파작업 중단을 요구하고, 시민단체와 천주교 정의구현 사재단 등 종교계도 일제히 비난성명을 냈다.

두 곳에서 보여 준 경찰들의 일사불란함은 대한민국 공권력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공권력의 민첩함은 사라지고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다. 사람 구하는 데는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는 대한민국 공권력이, 몸부림치는 민주시민을 진압하는 데는 전광석화 같은 기동력을 보였다.

부산댁 이차연 할매, “도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촌사람을 이리 직이가 되는가”라고 말한다.
 부산댁 이차연 할매, “도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촌사람을 이리 직이가 되는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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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등에서 경찰의 대활약은 이미 증명된 바다. 삼평리 할매들은 자신들이 밀양처럼 어려움을 당할까봐 걱정한다. 밀양과 청도의 삼평리는 같은 송전선로가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송전탑 공사나 해군기지 건립 등은 모두 국책사업이란 명분으로 이뤄지고 있다.

'희생의 시스템' 과연 온당한가

쉽게 말하면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국책사업의 근저에 깔려 있다. 다카하시 데츠야 도쿄대 교수는 그의 책 <희생의 시스템>(한승동 번역, 2013년 돌베개 펴냄)에서 이 개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일본이라는 전후 국가를 지탱하는 '희생의 시스템'으로 존속해 왔다고 주장한다.

특정 지역의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특정 지역의 주민들이 희생하는 것이 온당한가? 일본 다른 지역의 이익을 위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고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필요하다. 일본과 너무나 흡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강정마을을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주민들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자연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주변국의 안보를 논하는 것이다. 밀양이나 청도 삼평리 역시 대구를 비롯한 도시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차연 할매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도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촌사람을 이리 직이가 되는가"

이어댁 이억조 할매, “빨갱이라 카거나 말거나 내 발등에 불 꺼야 된다. 그죠?"라고 말한다.
 이어댁 이억조 할매, “빨갱이라 카거나 말거나 내 발등에 불 꺼야 된다. 그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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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도 되는가? 대도시 도쿄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를 위해 위험으로 가득 찬 원전시설이 후쿠시마와 같은 시골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한다. 같은 원리로 대구 등 대도시민의 편리를 위해 삼평리 할매들이 희생되는 게 '소중한 희생'인가. 실은 국가권력은 그렇게 미화하고 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희생의 시스템의 미화'는 비민주적이며,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할 권리를 보장한 헌법에도 위배된다. 이미 국가는 이렇게 강제된 주민들의 고통을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를 위해 기꺼이 치러야 할 '소중한 희생'으로 취급해왔다. 이런 희생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해왔다.

원전반대나 송전탑 반대가 빨갱이 짓?

"1979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이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의 뿌리다. 발전소나 송전선로 부지로 지정되면 19개 법률에 규정된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다.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 살던 집, 논밭, 선산까지도 하루아침에 한전 소유가 되어버리는데, 이것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본문 229쪽)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박근혜 정부도 지난 1월 29일자로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전원개발 실시계획을 승인하였다. 원전지역 인구밀도가 높은 고리에서 만약 참사가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다. 공공성과 국가이익이라는 논리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삼평1리 주민들은 송전탑의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예산을 이유로 나라나 한전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삼평1리 주민들은 송전탑의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예산을 이유로 나라나 한전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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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국책사업의 동조자, 사업의 주체, 그 사업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들은 송전탑과 맞장 뜨는 할매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빨갱이나 종북으로 매도한다. 이억조 할매의 말이다.

"빨갱이라 카거나 말거나 내 발등에 불 꺼야 된다. 그죠? 아들딸이 머라케도 인쟈는 안 된다. 이때까증 싸운 게 얼만데, 싸운 게 원통하니 나뚜라. 돈 요구하는 거 아니다. 왜 한전이 내 재산을 갖다가 다 직이뿌고 이래가지고 뭐로 먹고 살라카노."(본문 74쪽)

책 <삼평리에 평화를>에 나오는 할매들은 보통 시골 할매들이다. 얼굴에 주름 골이 깊고, 손발은 거칠고, 힘든 농사일로 여기저기 골병 든 그런 노인들이다. 누가 그들을 용맹한 투사로 만들었을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투영된 그들의 올곧은 이야기에서 삶의 진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몸부림치며 막아내고자 하는 송전탑 23호기. 할매들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준다.

마틴 니뮐러의 말로 글을 맺을까 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노조원을,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노조원이,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마지막으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본문 107쪽)

덧붙이는 글 | *<삼평리에 평화를> 박중엽 외2인 지음 | 뉴스민 기획 | 한티재 2014년 7월 펴냄| 252쪽 | 값 1만3000원
*블로그 ‘삼평리에 평화를’ cheong-do.tistrory.com에서 뜻을 같이할 수 있다.



삼평리에 평화를 - 송전탑과 맞짱뜨는 할매들 이야기

박중엽.이보나.천용길 글, 뉴스민 기획, 한티재(2014)


태그:#삼평리에 평화를, #송전탑, #신고리원전, #할매, #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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