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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부터 6월까지, 혼자 필리핀 팔라완 배낭여행을 했다. 더 '늙기' 전에 떠난 여행이었다. 팔라완의 북부여행은 '바다와 몸', 남부여행은 '바다와 사람들'이었다. 팔라완은 안전하고 아름답고 순수했다. 고되고, 거칠고, 가난하고, 고맙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두 달 만에 얼굴은 새카맣게 탔고 몸무게는 11kg 빠졌다. 팔라완은 이제 내게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운 곳이 되었다. - 기자 말

부수앙가 섬 일대 렉 다이빙 사이트
▲ 코론 부수앙가 섬 일대 렉 다이빙 사이트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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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방카가 달리는 동안 김상조 강사와 아영씨는 바다에 대해 이야기만 했다. 열띤 대화였다. 스쿠버다이빙 경력이 김 강사는 8년, 아영씨는 5년이다. 나는 3일. 새 발의 피다. 물론, 햇수보다 다이빙 횟수가 더 중요하다. 더더욱 나는 잽이 안 된다. 그러니 그들이 열거하는 감동의 순간들을 맞장구치며 내가 공감할 수 있겠나.

해양 다큐멘터리에서 얻어 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나도 뭘 좀 아는 체 할 수는 있겠지만. 초자가 허세를 부려도 유분수지.

"그때 만타레이 한 마리가 앞 쪽에서 나타났는데, 날갯짓이 춤추듯 얼마나 우아한지 심장이 두근두근..."

김 강사가 삼삼한 표정으로 말할 때, 나는 다만 상상하려 애썼다. 어떤 모습일까? 정말 어떤 느낌일까?

오전 9시 35분 코론 만을 출발한 방카는 바닷바람을 일으키며 서남쪽 방향으로 전진했다. 4월의 바다는 호수처럼 푸르고 잔잔했다. 석회암 기암절벽의 코론 섬과 고급 리조트들이 보이는 작은 섬들을 지났다.

부표가 수없이 떠있는 진주양식장도 지났다. 아영씨와 김 강사, 필리핀 가이드 알린과 션이 방카에 같이 탔다. 나는 어제 박과 함께 오픈 워터 다이버 교육을 마쳤다. 오늘부터는 나 혼자 어드밴스드 오픈 워터 다이버 과정이다.

탕갓 섬 앞바다, 렉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

렉 다이빙을 하는 바다
▲ 코론 렉 다이빙을 하는 바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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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탕갓 섬(Tangat Island) 앞바다였다. 침몰선 올림피아 마루(Olympia Maru)가 가라앉은 자리였다.

"오, 정말 긴장되네요! 렉 다이빙은 처음이라..."

김 강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코론은 렉(Wreck. 침몰선)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이다. 코론 만(灣) 일대 바닷속에 20여 척이 넘는 일본 군함들이 침몰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격으로 수장된 군함들이다. 세계 다이버들이 코론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 격전지의 역사' 속으로 잠수하는 거였다.

나는 어제 스켈레턴 렉(skeleton wreck)에 들어갔었다. 스캘레턴 렉은 군함이 아니라 어선이었다. 백골처럼 뼈대만 남은 난파선에 진기한 생명체들이 모여들어 화려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김 강사도 렉 다이빙 3박 4일 일정으로 코론에 왔다. 개인 잠수장비들을 챙겨 들고 왔다. 40대 초반인 김 강사는 인상이 선해 보였다. 한국에서 조그맣게 개인 사업하며 다이빙 강사를 한다고 했다. 문외한인 내 눈으로 보기에는 슈트, BC, 마스크, 다이빙 컴퓨터 등등 그가 가진 장비들은 다 고가품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은 경비가 많이 드는 해양 레저스포츠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스쿠버다이빙 동호인 수가 40만 명이 넘는다지.

입수 준비를 시작했다. 장비를 꼼꼼히 재점검했다. 김 강사는 침몰선 탐험에 필요한 랜턴과 수중카메라를 챙겼다. 나는 공기통을 부착한 내 BC(Buoyancy Compensator 부력조절기)의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핀으로 꽂았다. '세월호 참사' 10일째였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인데, 변명 같지만 취소할 수 없었어요. 마음이 무겁네요. 하필 지금 침몰선을 보러 바다에 들어간다는 게...  한국은 지금 완전 패닉 상태죠. 어떻게 그런 일이... 슬프기보다 화가 납니다. 정부가 없는 나라 같아요. 아니, 차라리 정부가 없는 게 낫겠어요."

김 강사의 말에 우리의 낯빛이 모두 어두워졌다. 서로 시선을 피해, 죄인들처럼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가슴이 먹먹했다.

노란 리본
▲ 코론 노란 리본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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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던 5일 전, 나는 노란 리본을 찾아 코론 시 재래시장을 뒤졌다. 뜨거운 오후였다. 유난히 갈증이 심했다. 10페소짜리(250원) 망고 빙수를 시장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잔씩 사 마셨다. 그런데 노란 리본은커녕 노란색 천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 바퀴짼가, 한 잡화점 문 앞에 빨강, 파란, 노란색의 원색 시장가방들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 속에서 노란색 가방을 집었다. 20페소를 주고 샀다. 옷핀도 샀다. 다이브 숍에서 가위를 빌려왔다. 가방 손잡이를 잘라 리본을 만들었다.

나의 기도가 가 닿을까? 노란 리본을 달고 잠수하면. '가만히 있어라'하며 침몰하는 배에 갇혀 바닷속에서 생을 마감한 304명의 영혼들에게. 나의 죄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덜어질까? 탄성을 지르며 바닷속에서 놀고 있는 나의 이기(利己)가 미안한데.

무거워진 마음을 추스르며 장비를 착용하고 입수했다. 하나, 둘, 셋! 뱃전에 서서 단번에 바다로 뛰어내렸다.

"어? 오늘은 잘 하시네요!"

침몰선 다이빙
▲ 코론 침몰선 다이빙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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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려가 기다리고 있던 아영씨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어제 애를 먹였다. 만반의 자세를 취하고 호기롭게 뱃전에 섰는데, 시퍼런 바다가 아찔했다. 숨이 턱 막혔다. 십여 분 넘게 쩔쩔매며 서 있었다. 결국, 죽기 살기로 뛰어내리기는 했다. 참, 극복해야 할 게 많다.

그토록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인지 정말 몰랐었다. 또 바다를 무서워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타고난 기질이 원래 강해, 무서운 게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살았는데. 공포를 느끼는 뇌의 편도체가 역할을 제대로 못 하거나 전두엽이나 해마가 무뎌 수신을 못 하는 거라고 농담까지 하면서. 실제로 밤길을 혼자 걸어도 끄떡없었다.

수유리에 살 때는 새벽 두세 시 혼자 북한산에 오르는 것도 밥 먹듯 했다. 높은 절벽이나 바위를 타는 것도 거뜬거뜬. 남들 다 무섭다고 벌벌 떨 때도, 뭐가 무섭다는 거야? 콧방귀 뀌었다. '인간의 공포심은 개개인의 상상력에 비례한다'는 말이 정설이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 바다에서 여느 때보다도 '죽음'을 강하게 연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란 리본'의 영혼들이 느꼈을 그 공포가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는지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사라져...

입수 자리에 부표가 떠 있었다. 침몰선까지 밧줄이 팽팽하게 묶여 있었다. 하강 줄이었다. 잡고 내려갔다. 수면 아래로 머리가 잠기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장 뛰쳐 올라가고 싶었다. 충동을 참느라 용을 썼다.

하강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죽겠다. 다행히 아영씨가 바로 앞에서 눈을 맞춰가며 나를 격려하고 지도했다. 숨을 깊게 천천히 내쉬어라, 이퀄라이징을 해라, 괜찮나... 수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며 나를 아래로 아래로 인도했다.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은 사라진다.

침몰선
▲ 코론 침몰선
ⓒ 김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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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씨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쯤 내려왔나. 밧줄을 놓고 수평자세를 취하라는 수신호를 받았다. 하강을 멈추고 중성부력을 맞춰갔다. 더 이상 가라앉지도 떠오르지도 않는 상태. 쉽게 되지 않았다. 아영씨가 내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살짝 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 불쑥 어떤 물체가 나타났다. 침몰선이었다. 아영씨가 친절하게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김 강사와 알린은 랜턴을 켜들고 뚫려 있는 화물창을 통해 올림피아 마루의 선체 안으로 들어갔다. (올림피아 마루는 길이 128미터의 대형 화물선이다. 1944년 9월 24일, 미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갑판 수심은 21미터, 가장 깊은 프로펠러 부분은 32미터.) 그 안은 어떨까? 뭐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좁고 어두운 공간들을 탈 없이 누비기에는. 아영씨와 나는 선미에서 선수 쪽으로 이동하며 밖을 구경했다. 시야가 흐려 침몰선이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차츰 중성부력에 익숙해지자 보이는 것들이 늘었다. 아름답게 피어난 산호초, 말미잘 속의 물고기 니모, 산호부채 아래 가만히 떠있는 라이온 피시, 트럼팻 피시, 불퉁한 모양이 웃기게 생긴 복어, 떼로 몰려다니는 열대어들, 희귀하게 생긴 천 가지 만 가지... 그러나 나는 그들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형체, 색깔, 움직임 등.

스쳐 보았기에. 그들에게 매료되었고, 천천히 핀 킥을 하다 보니 두려움도 차차 가셨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서툴고 둔했다. 아영씨가 시야에서 잠시라도 사라지면 불안했다. 물고기보다 그녀의 행방을 더 쫓았다. 또 자주 중성부력을 잃고, 너무 떠오르거나 너무 가라앉았다. 그때마다 당황해 쩔쩔맸다. 그러니 바다 풍경이 쏙쏙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편안하게 바다를 즐길 실력이 되려면 다이빙을 몇 회나 해야 할까.

침몰선 다이빙
▲ 코론 침몰선 다이빙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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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선은 말 그대로 수중생물의 서식지였다. 고착생물들에겐 붙어살기에 마땅한 장소였다. 70여 년 바닷속에 잠겨 부식한 올림피아 마루는 수많은 생명체에 뒤덮혀 있었다. 오색찬란한 정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침몰선 다이빙에 대해 생래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원시바다가 보고 싶었다. 어쨌든 수심 22.5미터까지 내려갔다. 잠수시간 44분. 수온 28도.

점심을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스트 탕갓 건보트(East Tangat Gun-Boat), 루송 건보트(Lusug Guoat), 두 곳에서 렉 다이빙을 더 했다. 선실 내부로 진입도 했다. (코론 시의 시 다이브 리조트(Sea Dive Resort)에 있는 헬 다이버 바(Helldiver Bar)에는 코론 일대 바다와 침몰선에서 인양한 프로펠러 등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침몰선에 사는 말미잘과 물고기 니모
▲ 코론 침몰선에 사는 말미잘과 물고기 니모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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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선의 열대어들
▲ 코론 침몰선의 열대어들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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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넘어 코론 시로 돌아왔다. 또 돌아오는 내내 아영씨와 김 강사는 바다 이야기로 열을 띠었다. 이번에도 나는 끼어들지 못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다이버와 비 다이버.'

다이버들이 하는 말이란다. 인간을 그 기준으로 딱 둘로 잘라 정의할 수 있다니, 그들의 자부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거다, 바다 깊은 줄 아는 거다.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해양세계의 그 놀랍고도 신기한 생명체들을 찾아다니는 그들의 담력, 모험심, 체력, 경제력... 특별한 자부심. 그렇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류의 동경은 끝이 없겠지. 나 역시 바다에 대한 공포와 동경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왼쪽 귀가 완전히 막혔다. 들어간 바닷물이 빠지지 않는다. 내 귓속에 바다가 생겼다. 달팽이관을 돌며 작은 열대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거기서 이명처럼 소리가 울린다. 파도소리 같다, 울음소리 같다.

침몰선에서 인양해 전시한 물건들
▲ 코론 침몰선에서 인양해 전시한 물건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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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팔라완, #코론, #스쿠버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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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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