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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은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 이들은 만 18세 이상의 나이가 되면 입대해 약 21개월간(병사 기준) 복무하면서 병역을 이행하게 된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또래 전우들과 동고동락한 끝에 전역하고 마침내 사회로 나온다. 하지만 군복을 벗었다고 해서 군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전역한 이듬해부터 특정 기간에 소집돼 군사훈련을 하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2박 3일간 부대에서 숙식하면서 훈련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군대로부터의 '해방 아닌 해방'이 지속되는 기간은 무려 8년(병사 기준)이다. 이는 현역 군인에서 예비역으로의 '역할 전환'(전역)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예비군'이라 한다.

평상시 사회생활을 하다가 유사시에 소집되는 대한민국의 '예비 전력'인 예비군은 1968년 4월 1일에 창설됐다. 북한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이른바 '1·21 김신조 사태'와 같은 해 1월 23일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납북된 사건 등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정부는 이들 사건으로 인해 북한의 도발 위험이 커지자 자주적인 방위 태세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예비군을 탄생시켰다.

막중한 사명을 띠고 출범된 예비군이지만, '예비 전력'치고는 다소 가벼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덥수룩한 머리에 곳곳 주름진 군복을 '걸친' 풍채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예비군도 이와는 별반 다르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일개 '군복 입은 아저씨'로 여겨지곤 한다.

훈련장에서의 예비군은 더 가관이다. 통제하는 조교의 말을 무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뭐든지 대충대충 하면서 '껄렁함'과 '귀차니즘'의 대명사가 되곤 한다.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군복을 입은 예비군 훈련자 상당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최근 이런 예비군이 변모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현역 군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훈련으로 '정예 예비전력'의 면모를 찾아가고 있다.

지난 27일 이른 아침부터 천안의 한 예비군 훈련장. 이곳에는 군복을 입은 여러 명의 남성이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일요일인데도 훈련을 받기 위해 모인 209명의 예비군이었다. 나는 이날 '휴일예비군제도'를 이용해 일요일에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산림에 둘러싸인 훈련장에서 나오는 특유의 맑은 공기가 주변을 감쌌고, 연신 울어대는 매미들은 이날 하루의 폭염을 예고하는 듯했다.

과거 '나들이', '친목회'라는 오명의 예비군 훈련이 변모하고 있다.
 과거 '나들이', '친목회'라는 오명의 예비군 훈련이 변모하고 있다.
ⓒ 남궁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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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가 되자 간단한 입소식 후 산에서 야외 훈련을 시행했다. 수색·정찰을 시작으로 적 진지 공격 및 방어(서바이벌 총격), 병 기본 전술, 사격 등 군사 실무 훈련을 받았다. 훈련 장소가 산 속 여러 군데에 있어서 끊임없이 산을 오가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훈련을 지휘하는 교관들 또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일관하며 나태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예비군들을 꾸짖기도 했다. 휴일이라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훈련을 진행할 법도 했지만, 이들은 시종일관 매뉴얼대로 진행했다.

교관들은 최근 군 관련 문제가 속속 들어나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비군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에 엄격하게 훈련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국토방위를 수호하는 것은 비단 현역 군인만의 역할이 아닙니다. 전국 300만 명의 예비군도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합니다. 더구나 최근처럼 군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해진 시점에서는 더욱 강하고, 신뢰받는 전천후의 예비군이 요구됩니다."  

힘든 훈련을 소화하며 구슬땀을 흘린 예비군들도 처음에는 불만을 내비쳤지만, 이내 교관들의 뜻을 이해하며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는 듯했다.

예비역 3년 차 김아무개씨(백석대 4년)는 "전역 후 예비군 훈련을 수차례 받았지만, 열심히 임한 적은 없었다"면서 "솔직히 오늘 훈련도 좋은 공기 마시면서 힐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지만 교관님을 통해 우리 군대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됐다"며 "그간 예비군 훈련을 소홀히 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져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조교 함아무개 상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비군 선배님들이 훈련 간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면서도 "최근 강화된 훈련에 열심히 임하면서 잘 따라주는 예비군들을 보면 조교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함 상병은 이어 "군대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과 함께 주변국들의 만행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걱정"이라며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선진 군대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 하겠다"고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 '그간 받았던 훈련처럼 시간만 때우다 와야겠다'는 생각은 교관님의 호령을 듣는 순간 무참이 깨졌다. 훈련의 여파로 허벅지가 아직도 욱신거리지만, 그날 흘렸던 보람된 땀방울은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태그:#예비군, #예비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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