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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로 세월호 참사 100일이라고, 도보행진도 하고, 국회에서는 특별법 제정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갑론을박 중인 모양이다. 나는 전직 교사로서 세월호 참사의 계기가 된 수학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바람직한 수학여행 문화와 그 대책에 대한 제언 등을 서너 차례 연재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안도, 분노 그리고 침울

1981. 8. 설악산 비룡폭포 구름다리를 오르는 이대부고2학년 수학여행단 모습. 지금 이 사진을 봐도 아찔하다.
 1981. 8. 설악산 비룡폭포 구름다리를 오르는 이대부고2학년 수학여행단 모습. 지금 이 사진을 봐도 아찔하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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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속보를 화면과 자막으로 보면서 처음 한동안은 안도감에 '휴' 했다. 33년간 중·고교 교단에 섰던, 더욱이 10여 차례 수학여행·생활훈련에 실질적 인솔책임 실무를 맡았던 나로서 그때를 참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이은 속보를 보면서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박회사 관계자와 해수부, 해경들의 치밀치 못한 대응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 모두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에 그동안 침울하게 보냈다.

이제 세월호 참사 발생 100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기보다 내가 학생으로 겪은 수학여행 추억과 교사로 학생들을 인솔한 체험과 수학여행을 비롯한 교육계 현안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 뒤 학생들의 수학여행 근본 개선책 그리고 해결책을 말하는 게 전직 교사로서, 한 기성세대로서 시의적절한 처신일 것 같아 붓을 들었다.

1992년 여름 내가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을 찾았을 때다. 우리 내외가 박물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광장에 50명 남짓 여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우리와 얼굴 모양이나 피부색이 같고 모두 챙이 긴 흰 모자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 학생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의 고교 수학여행단이었다. 내가 현직 교사였던 탓인지 그들에게 자주 눈길이 갔다.

나는 박물관에 들어간 뒤 진열된 문화재를 눈여겨보면서 한편으로는 뒤따라오는 일본 수학여행단에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인솔 교사를 질서 있게 따르며 교사의 설명에 "하이, 하이"라는 말을 쏟으면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노트에 부지런히 기록했다. 필기도구가 없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근본 요인의 하나가 바로 저 일본인들의 기록하는 습성 때문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여행 문화가 떠올랐다.

일그러진 수학여행 문화

먼저,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1959년 가을은 내가 중3으로 학교에서 단체로 경주의 고적을 탐방하고자 수학여행을 갔다. 고향 구미 역에서 열차에 오른 뒤 곧 몇 녀석들은 선생님의 눈길을 피해 차창을 열고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 담배는 양담배로 당시에는 판매 금지 품목이었다. 어른이 피워도 처벌받을 수 있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던 녀석도 뻐끔뻐끔 빨았다.

내가 눈이 휘둥그레 쳐다보자, 수학여행 때는 으레 그런 거라며 그 친구는 주머니 속의 담배를 꺼내 다른 친구에게도 한 개비씩 돌렸다. 조금 지나자 술병이 돌았다. 우리 선배들도 "수학여행 때는 그랬다"고 말하면서. 우리들은 학교를 떠났다는 어떤 해방감에 일탈된 행동을 만끽했다.

경주에 도착한 뒤 여관방에서도 그랬다. 취침 시간, 불을 끄고 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처음은 듣는 척하더니, 이내 담요로 문을 가리고 불을켜고 화투짝을 꺼내 밤늦도록 돌렸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드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남은 밥과 반찬을 죄다 밥상 위에 쏟았다. 작년 선배들도 그랬다면서.

그 이유는 선생님들의 밥상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렸는데 학생들의 밥상은 밥이 설익고 반찬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항의였다. 그런 난장판을 보고도 여관 주인은 말이 없었다. 선생님들도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수학여행이라고 봐줬는지 꾸중이 전혀 없었다.

'수학'(修學)이란 말이 부끄러운 수학여행

우리들은 경주 일대의 고적을 답사하면서 노트를 들고 다니며 열심히 기록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냥 눈요기·귀동냥을 하다가 가끔 단체로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족했다. 수학여행이 끝난 후 우리들은 정작 경주 고적 답사에 대한 소감보다 비행 추억담을 더 재미있게 늘어놨다.

내가 교사가 된 뒤에도 이런 일그러진 수학여행 문화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날 선배들의 빗나간 전통은 후배들에게 잘도 전수돼서 여행기간 내내 인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일탈된 행동을 단속하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런 잘못된 수학여행 문화는 내가 교단을 떠날 때까지 별로 고쳐지지 않았다.

1980년대 초 내가 학생들과 함께 해인사에 갔을 때다. 해인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천 년 세월 동안 팔만대장경이 잘 갈무리가 돼 있는 장경각(藏經閣)이다. 마침 해인사의 한 스님은 우리 학생들을 위해 팔만대장경에 대해 매우 유익한 설명을 해줬다.

팔만대장경의 제작 경위와 장경각을 지은 조상들의 빼어난 건축 솜씨와 천 년이 지나도록 대장경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던 조상의 슬기와 장경각의 과학적인 건축 구조 등이 설명 내용이었다. 그런데 경청하는 학생은 아주 일부였고, 기록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인솔하는 선생님조차도 경청하는 분이 별로 없었다. 

지난날 우리나라 수학여행에서 가장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인솔 교사와 학생들의 밥상 차이었다. 학생들의 밥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인솔 교사들의 밥상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이 잘못된 문화는 무좀균처럼 그 이후에도 거의 개선되지 않고 죽 전래됐다.

씨랜드 참사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에 있었던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에서 화재가 발생해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졌다. 어린이들이 숙박하는 수련원은 컨테이너로 만든 안전사고 제로의 임시건물이었다. 게다가 교사들은 어린이들을 잠재운 채 바깥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회식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어린이들만 잠자던 컨테이너 숙소에 피워둔 모기향불이 숙소 인화물질로 옮겨붙은 게 화재 원인이었다. 그 참사에 아들을 잃은 필드하키 국가대표 김순덕씨는 "이 땅에서 살 의미를 잃었다"라며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에서 받은 훈장을 국가에 반납하고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왜 인솔 교사들은 수학여행 기간 중, 학생보다 더 나은 식사를 해야 하고, 학생들을 재워놓고 회식을 해야 했을까. 그제나 이제나 피를 토할 일이다. 이런 잘못된 문화의 뿌리는 매우 깊다. 내가 학생들을 인솔해 본 경험에 따르면, 첫째로 그런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깨트리지 못한 교사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 둘째는 숙박업자들의 삐뚤어진 상술이다. 아마도 이는 우리 사회 고질화된 뿌리 깊은 부패문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부끄러운 기성세대의 자화상

1980년대 초 내가 근무했던 이대부고에서 해마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한 해는 고적이 많은 경주로 옮겼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 선생님들이 교사와 학생들 밥을 똑같이 배식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그들은 마이동풍이었다. 결국 몇 학생이 식중독을 일으키고, 한밤중 숙소에서 학생들의 소지품 도난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교단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경주는 가고 싶지 않은 '0순위'다.

숙소업자는 학생들은 한번 다녀가면 그뿐이지만 교사들을 어쨌든 구워삶아야 다음해도 이어진다는 잔머리가 머릿속에 꽉 박혀 있는 듯하다. 그런 문화를 당연하게 여기던 이 또한 우리 교육자들이었다.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단언컨대 어린이를, 다음 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지도자들이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지 않는다면 그런 나라도 미래가 없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후생가외(後生可畏)하라. 다음 세대를 두려워하라. 지도자들은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라. 그리고 나라의 부정부패 비리를 바로 위부터 과감히 혁파하라. 그 부정부패 비리의 끝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유아무개의 죽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태그:#세월호,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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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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