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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빛만 스며드는 어두운 공간,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물이 아니라 피?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손전등을 돌렸다. "으아악!" 목을 맨 소녀 사체였다.

공포 영화가 아니다. 전시회를 감상하던 중 일어난 일이다.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7월 22일부터 27까지 명동 한복판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페스티벌에는 <토시에>, <소용돌이> 등 공포 만화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토 준지 특별전이 한여름 오싹하고 색다른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23일에 직접 가봤다.

특별전 앞에서 줄을 서자 손전등을 나눠줬다. 전시회에 들어가는데 왠 손전등? 전시장 안이 깜깜하니 불을 비춰야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불이 꺼진 공간에서의 전시라... 묘한 긴장감이 찾아왔다. 그때 앞서 들어간 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초조해졌다. 내 차례가 왔다.

이토 준지 특별전 내부의 모습이다.
▲ 이토 준지 특별전 이토 준지 특별전 내부의 모습이다.
ⓒ 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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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안에 들어서자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일러준 대로 손전등을 켜고 작품을 천천히 둘러봤다. 유혈이 낭자하고 괴기 생명체가 난무하는 이토 준지의 그림은 어둠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다.

어둠은 청각을 예민하게 한다. 그런 귀를 특별전은 놓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액체가 흐르는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발을 끄는 소리...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다른 구석에 다다랐다. 방향을 찾기 위해 조명을 비췄다. 아... 어느새 나는 앞서 들어간 여성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 나온 출구에서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오싹했다. '또 뭐지? 아직 안 끝났나?' 그 남자가 말했다.

"스탬프 찍어드릴까요?"

맥이 탁 풀리며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더운 여름, 문화 전시회와 놀이동산 귀신의 집을 한꺼번에 경험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토 준지 특별전이 딱이다. 특별전 외에도 페스티벌에는 다양한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의 저자인 김동범 작가의 여행만화전, 양재현·전극진 작가의 <열혈강호>의 연재 20주년 기념 특별전 등이다. 만화 캐릭터의 무술 복장, 검 등 코스튬을 직접 착용할 수 있는 행사도 있다. 골목골목 <뽀로로>, <안녕, 자두야> 등 인기 캐릭터도 만날 수 있다.

 공포 만화의 거장, 이토 준지는 누구?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50)는 공포 만화계의 대표 작가이다. 1986년 제1회 가오즈 상에 데뷔작인 <토미에>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표작으로 여덟 차례에 걸쳐 영화화된 위 작품 외에 2000년에 영화화 된 후 우리나라에서 정식 개봉한 <소용돌이>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시공사가 '이토 준지 공포 만화 콜렉션'을 독점 번역, 출판해 인기를 끌었다.

덧붙이는 글 | 이세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이토 준지, #열혈강호, #김동범,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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