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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4일, 국제우편(EMS)으로 달력이 잘 도착했다는 사할린주 한인 회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러시아는 보통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 긴 휴일이 이어진다. 때문에 서류 하나를 부쳐도 2주일 이상 걸리기 마련이다. 도착 연락을 받기 전까진 달력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빠짐없이 잘 도착했을지 매일 전전긍긍 해야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음 임무인 달력 배달을 위해 우리는 사할린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2014'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2014'
ⓒ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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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하라쇼~!('좋다'는 러시아어). 5월 이 사진 참 좋아요!"
"참 좋아요. 나도 소한, 대한 잘 몰랐어요."

음력을 표기하고, 대한민국의 절기와 기념일을 러시아어로 날짜에 기록하는 동시에 러시아 휴일과 기념일까지 추가한 '사할린 맞춤형 달력'. 우리가 만들고자 한 건 바로 이런 달력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우려한 것은 반세기 동안 단절된 경험 때문에 사할린 이주민들이 달력을 쓸모 있게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사할린을 여러 해 방문하면서 많은 한인들이 옛 소련의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도 조선의 모습을 이어온 장면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래도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가 만든 달력이라 다소 걱정이 됐다.

달력 방문을 위해 처음 찾은 홈스크시. 달력을 받아보고 "좋다" "잘했다" "고맙다" 기뻐 해주신 한인회분들 덕에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 후 이어진 홈스크의 한인1세분들을 포함한 한인회분들과의 이야기 시간엔 달력이 주요 주제였다.

"부모들이 공책에 12장 써서 만들었어요."

경북 고령이 고향인 39년생, 31년생의 노부부. 이들은 생일은 물론, 토마토 모종 심을 때나 집수리할 때, 화장실을 지을 때, 바닷물 빠지는 날에 맞춰 새우 잡으러 갈 때 등등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음력 달력을 본다고 했다. 이때 뿐인가. 무, 배추를 심는 등 온갖 농사를 지을 때도 음력을 몰라선 안 된다.

달력을 받아보고 좋아하시는 홈스크 한인회분들
 달력을 받아보고 좋아하시는 홈스크 한인회분들
ⓒ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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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소식 들을까 KBS 라디오 듣기도

특히 섬인 사할린에선 물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씨를 언제 뿌려야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이야 바깥에서 물품이 많이 들어오고, 자식들이 장성해 자리를 잡아 부모를 모시게 됐지만, 전쟁 직후엔 척박한 동토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한인들은 직장에서 받는 것만으론 자식들 먹여 살리기 어려워 농사를 짓거나, 바닷물이 빠지면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건져 먹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1세들은 그런 삶을 살아냈다.

이런 삶은 자연스레 2세들에게도 이어졌다. 시집갈 때도 음력 날짜를 봤다는 어떤 한인 2세는 "어렸을 때는 부모가 하던 대로 따라했고, 결혼해서는 시어머니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고 전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이런 2세의 모습은 3세로 이어진다.

홈스크에서 이산가족회장을 맡고 있는 신 회장님(여. 60세)은 사할린 이주 2세다. 신 회장님의 아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던 형님 대신 한국을 떠나 사할린으로 왔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고향에 계시는 부모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해서 KBS 라디오를 매일 밤 몰래 들으셨다. 어린 딸은 아버지 곁에서 라디오를 같이 들으며 자랐다.

가족과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지니고 있던 부모님은 1990년, 동경을 통해 처음으로 고향 땅을 밟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였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걸 믿고 항상 밥을 준비했다는 그의 어머니.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명절 때마다 항상 부모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와 라디오를 함께 들은 어린 딸은 부모님 제사를 다시 자신의 아들과 함께 지내고, 사할린 3세대인 그 아들 또한 부모를 따른다.

8월 15일(양력) 벌초하는 한인들(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지)
 8월 15일(양력) 벌초하는 한인들(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지)
ⓒ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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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은 안 잊어버릴 겁니다. 블라디보스톡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워 풍속도 잘 알고, 제사상 차리는 것도 아들이 다 합니다. 절할 때 손을 어떻게 놓고 하는 것도 다 압니다."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문득, 한국 달력이 없을 땐 음력을 어떻게 챙겼는지 궁금했다. 한 사할린 동포가 "해가 되면 음력을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물어봐서 알기도 하고, 사할린에서 발행하는 한글신문인 <새고려신문>을 통해서도 음력을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새고려신문>에서는 매년 첫 발행지에 한해의 음력을 정리했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집집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짜를 표기해 두거나, 어떤 집에서는 부모들이 공책 12장에직접 써서 일명 '수제 음력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단다. 답을 들으니 마음 한 켠이 찡해진다.

사할린 동포들도 '손 없는 날' 이사한다

"나는 윤달이 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화장실 수리야. 윤달이면 아무 때나 해도 되고, 윤달이 아닐 때는 손 없는 날이 언제인지 확인하지."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노인정에서 뵌 엄순자 할머니(75). 경북 문경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씩씩하게 말씀하신다.

"윤달 끼면 음력 보름에 묘지 가서 풀매고 손질하고 하지요. 지금 음력으로 안 하는 젊은 사람들은 '8월 보름' '러시아 8월 보름' 하지요. 우리야 음력날 안 가면 섭섭하니깐 또 날짜맞춰 가는 거지."

실제로 음력 8월 15일의 공동묘지는 성묘하는 한인들로 분주하다. 3대가 같이 와서 절을 올리고 음식을 나누면서 한 때를 보내는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시어머시가 음력을 했는데, 양력으로 하면 애들이 놀러가기 쉽고 그러니깐 '나 죽거든 너희들 맘대로 해라. 내 살 때는 음력으로 해라' 그런 말을 했거든. 그래도 음력으로 하지."

엄 할머니는 당신의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너희 좋을 대로 하라'고 하겠다면서도, 음력을 요구하면 자식들이 그렇게 할거라며 웃으셨다.

2011년부터 매년 겨울, 사할린을 방문할 때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수하물의 양 만큼 달력을 들고 가다보니 인원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 달력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 짐을 최소한으로 하고 모든 수하물을 달력으로 채워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막상 달력을 겨우 들고 가면 매번 '더 가져 올걸...'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할머니 고향이 어디세요?"
"경북 문경."
"경북 경산군 경산면."
"경북 경주군 서면 ○○리 ○○번지"

고향이 어디시냐는 질문에 세 분의 할머니가 줄줄이 답하신다. 사할린은 70% 이상이 경북 출신이다. 달력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어 경북 사진을 찾았다.

"할머니! 달력에 경북 사진 있... 경주, 문경, 경산... 없네. 아! 산청 있다. 아, 산청은 경남이구나..."

혼자 머쓱해진다. 다시 보니 안동 사진이 있다. 내년 달력은 경북 지역 사진으로 만들어 볼까? 머쓱한 마음에 혼자 생각해본다. 시 노인정에서 만나뵌 할머니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달력을 받으셨다고 했다. 달력을 예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집에 걸어놓고 러시아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기분 좋은 '으쓱함'에 나도 함께 웃었지만 한국에서 줄 수 있는 '선물'은 고작 이것 뿐이라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사할린 이주 1세 대부분은 한일 양국 정부에 바라는 게 없다고 하셨다. 한국 정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아픈 역사 때문이다. 그저 죽기 전에 고향땅 몇 번 더 밟아보게 모국 방문사업이나 끊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할린 한인 달력

2014년도 달력 제작은 작년 8월, <네이버> 해피빈을 통한 온라인 모금으로 시작했다. 사할린거주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큼지막하고 튼튼한 달력을 만들어 보내려면 적어도 1000만 원은 필요했다. 제작도 제작이지만, 배송이 가장 큰 문제다. 크고 좋게 만들수록 무게가 늘어나 배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재단 지원과 모금 운동의 결과 1600여 명의 일본, 중국, 사할린, 독일 동포들과 우리니라 시민들의 참여로 달력은 무사히 만들어졌다. 달력에 들어갈 고향 산천의 사진은 임재천 사진작가가 10여 년간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한국의 풍경 사진을 흔쾌히 보내줬다. 러시아어 번역과 감수 또한 한국에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와 러시아사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달력 디자인 업체도 최소의 비용으로 달력 디자인과 인쇄를 해줬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1000부는 망향의 한이 서린 남단 코르사코프에서 북위 50도 인근의 보쉬냐코보까지, 사할린 곳곳으로 배달됐다.

이젠 2015년도 달력 만들기가 시작됐다. 사할린을 떠나기 전 할머니들께 "내년 달력엔 글자도 더 크게 해서 더 많이 가져오겠다"고 약속 드렸다. 7월 7일, '다음 희망해'를 통해 시작된 네티즌 서명은 10여 일만에 모금 진행이 가능한 500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모금 심사 중에 있다.

사할린 한인이란...

러시아 동쪽 끝. 일본 홋카이도 북쪽에 위치한 작은 섬 사할린. 일제식민지시기, 러일전쟁 이후 사할린땅의 절반(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차지한 일본은 식민지 개척을 위한 산림, 석탄자원개발, 비행장건설 등을 위해 수 만명의 조선인들을 동원했고 종전 막바지에 이르러 석탄의 수송이 불가능해지자 조선인 광부를 일본 본토로 '이중징용' 했다.

종전과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일본인이 아니다'는 이유로 30만명의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돌아갈 때 4만3천여명의 조선인들은 사할린땅에 남아야 했고, 지금까지 4세대를 이어 3만여명의 사할린한인들이 살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일적십자사를 통해 한국으로 영주귀국사업이 시작됐지만 반세기가 넘게 고향땅 밟기만을 기다리던 1세들은 대부분 사망하고, 그나마 1945년 8월 15일 이전 태생자(1세로 규정)와 2인 1가구라는 조건 때문에 자식들을 사할린에 두고 와야 한다.

영주귀국 대상자 확대에 대해 일본 정부는 1세에 한해서만 도의적인 책임을 지며, 2세부터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정부는 외교마찰과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자식과 떨어지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사할린에 남은 1천여명의 한인1세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모국으로부터도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영주귀국 이외에도 미지급금, 우편저금 등의 배상문제가 남아 있으나 이에 대한 외교적인 교섭을 통한 대책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러한 전체적인 사할린한인문제를 해결해야하나 10년간 국회에 계류와 기간만료폐기만 반복되고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도 2개의 제정법과 개정법이 발의돼 있다.


덧붙이는 글 | [관련 사이트]
사할린 희망 캠페인: www.sahallin.net 또는 facebook.com/sahhope



태그:#사할린, #달력, #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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