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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 작은 도시. 수년간 개를 너무 많이 키워 민원이 끊이지 않은 집이 있었다. 이 집에서 약 100여 마리의 개를 키우던 사람은 혼자 사는 중년의 아주머니였고, 개를 키우던 공간은 불법건축물이었다. 결국 강제집행 후 개들은 모두 시의 유기견 보호소로 옮겨졌다. 개 소유주가 다시 살 곳을 마련할 때까지 시 보호소에서 돌보게 된 것이다.

지난 18일 제보를 듣고 보호소로 옮겨진 개들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 도착한 뒤 아주머니와 보호소 직원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갈등이 있다는 걸 감지했다.

중성화 수술도 되어 있지 않은 동물들은 아주머니 집에서 계속 번식했다. 지금은 보호소에서 임시로 개들을 돌봐주지만, 누가 봐도 아주머니가 더는 개들을 키우기 어려워 보였다. 강제집행으로 아주머니 거처까지 헐린 상태였다. 어떻게 개 100마리를 책임지나. 보호소 측은 우리에게 아주머니가 개 사육을 포기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면 입양처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네 개의 펜스에 나눠 보호하고 있는 곳. 보호소도 임시거처라 앞으로 치료와 보호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상황
 네 개의 펜스에 나눠 보호하고 있는 곳. 보호소도 임시거처라 앞으로 치료와 보호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상황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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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개들의 상태를 살폈다. 지난주 경기도 광주시에서 데려온 100여 마리의 개들보다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피부병과 눈병, 자궁 질병을 앓는 듯한 개가 몇 마리 있었다. 치료와 중성화수술이 시급해 보였다.

그러나 보호소 측과 아주머니의 주장은 서로 엇갈렸다. 아주머니는 "시와 보호소 측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개들을 치료해줄 수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보호소 측은 "치료해준다고 해도 아주머니가 싫다고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뭐가 무엇일까. 동물에게 집착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개를 수집하는 걸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이라고 한다. 대부분 처음에는 단순한 동정심에서 시작한다. 

개 백마리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끊임없이 배설물을 치우고 또 치워야 하는 상황
 개 백마리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끊임없이 배설물을 치우고 또 치워야 하는 상황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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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어려운 살림을 쪼개 개들을 돌봤다. 한달 사료비만 100만 원 정도 들어가고, 개들이 먹을 물과 사료를 지대가 높은 곳까지 혼자 옮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제는 밥만 준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체수가 많아지면 서열의식이 있는 개들은 싸우기 마련이다. 우리는 아주머니를 보호소 밖으로 나오게 했다. 협상이 필요했다.

털이 심하게 엉킨 개의 모습.
 털이 심하게 엉킨 개의 모습.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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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동물을 수집하는 사람)'는 동물에 대한 집착이 심해 자신의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개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동물을 '당신이 다 거둘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을 직접 하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왜 포기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한다. 

"한 번 데려다 놓으니까 못 보내겠더라고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지 않았어요. 제가 살던 곳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그랬는지, 개 키우는 걸 사람들이 알고 많이 버리고 갔어요. 어떤 사람은 이사가면서 놓고 가고... 시청에서 유기견 생기면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제가 안 했어요. 다른 데로 보내야지 하면서도 못했어요. 한 번 데려다 놓으니까 다른 데 못 보내겠더라고요."

애니멀 호더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혼재돼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집착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버려진 동물을 거두는 경우도 있으나, 누군가 더는 못 키운다고 애니멀 호더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러면 거절을 못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거둬들이기 시작하는데 동물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면 불안한 마음이 생겨 입양을 보내지도 못한다.

대화, 교육, 훈련, 입법, 법 집행을 통해 동물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 미국 버몬트주 동물학대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애니멀 호더들은 '죽음'에 대한 개념을 두려워해 인도적인 죽음보다 비참한 환경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긴다고 한다.

아주머니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개 한 마리를 입양 보냈는데, 몇년 만에 다시 파양이 되었단다. 그 개는 집에서 꼬박 삼일을 굶다가 죽었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에요. 그래도 어쨌든 제가 보낸 개잖아요. 그 이후 저는 절대 입양을 안 보내요."

입양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불안한 마음이다. 내 곁을 떠나면 잘못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두 시간 설득 끝에 입양 택한 아주머니

불법건축물이 헐리고 개들이 보호소로 옮겨진 후 다행히 아주머니는 지난 7월 초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그 집에 또 개들이 불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에 아주머니께 방문해도 좋은지 물었다. 흔쾌히 좋다고 했다.

머리와 몸 구석구석에 곰팡이성으로 피부가 좋지 않아 보였다.
 머리와 몸 구석구석에 곰팡이성으로 피부가 좋지 않아 보였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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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살을 봉합하고 있는 중
 벌어진 살을 봉합하고 있는 중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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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이제까지 봤던 애니멀 호더 중 가장 깨끗한 집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아주머니의 아파트에는 보호소에서 출한산 어미 개 두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베란다 화분 안에 앉아 있는 또 다른 검정색 개가 보였다. 이름이 '비광'인 개. 피부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 개는 보호소에서 너무 많은 개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었고 자주 물렸다고 했다. 피부병인지 털도 많이 벗겨져 있었다. 다리에는 물려서 벌어진 상처가 역력했다.

아주머니에게 "치료가 급하다, 이러다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마음이 아팠나보다.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아주머니의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지 두어시간. 개들에 대한 중성화수술과 치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들에 한해서 입양 보내겠다는 걸 합의했다. 

'비광'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검사 결과 심한 영양결핍으로 인한 곰팡이성 감염 등을 앓고 있었다. 다쳐서 살이 찢어진 부분은 이미 아무는 상태라고 했다.

비광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떠나기 전, 식당으로 일하러 간다며 아주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다. 입가의 미소가 환했다. 의도적으로 비광이를 방치한 건 아닐 터. 그러나 결과적으로 비광이는 서열에 밀려 다른 개들의 공격을 받았고,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아주머니는 비광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 했다.

우리는 아주머니에게 몇 번 당부했다.

"다시 또 데려오시면 안 돼요. 이제 실내에서 더 키울 수 없고요. 부지를 마련하면 정말 적절한 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중성화수술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키우셔야 해요."

그러나 또 단서가 붙었다.

"불쌍한 애들이 눈에 안 띄면...."

개들이 '그들'에게 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눈에 개들이 띄는 것일까.

지난주 광주에서 개들을 데리고 오자 할아버지가 낙심해 그 중 몇 마리를 데려간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관련 기사 : 개 100마리가 뒤엉켜...이곳은 지옥이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개들을 다시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몇 마리라도 내준 아주머니(개들을 임시로 돌봐주겠다고 약속했던 분)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도 넘은 동물수집... 법으로 막아야 한다

할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개에게 집착하는 그에게서 개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해보자. 당연히 허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시 몇 마리라도 개를 주는 건 술을 끊은 알콜 중독독자가 금단현상으로 괴로워하자 술 한 잔 먹으라고 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애니멀호더는 심한 경우 쓰레기들 속에서 동물과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2011년 좁은 집에서 고양이 수십마리를 키우던 애니멀호더의 집안.
 애니멀호더는 심한 경우 쓰레기들 속에서 동물과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2011년 좁은 집에서 고양이 수십마리를 키우던 애니멀호더의 집안.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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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끝도 없이 동물을 수집하면 제대로 된 치료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기 쉽다. 2011년 한 할머니가 방치해 키우던 강아지.
 동물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끝도 없이 동물을 수집하면 제대로 된 치료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기 쉽다. 2011년 한 할머니가 방치해 키우던 강아지.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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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과 애정, 집착, 애초의 선의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동물을 학대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내몰 수 있다.

하지만 설득과 설명, 대화의 과정은 너무 지난하다. 무엇보다 100여마리의 개를 누가 치료·보호하고, 중성화수술을 해 입양을 보낼 것인가. 중성화수술 비용만 암컷 80마리 약 4000만 원, 수컷 20마리 600만 원 등 총 4600만 원이 든다.

이밖에 병원으로 개들을 나눠 운반해도 1.5톤 트럭 이용 시 인건비, 기름값 등 10마리씩 10번 왕복하면 300만 원이 넘게 든다. 여기에 부지를 마련해 임시로 개들이 머물 곳을 찾는다면 그 예산은 더 많이 필요하다. 광주의 사례는 경기도청의 도움으로 임시로 개들이 머물 곳을 찾았다. 하지만 '임시' 장소이니 언제 나가게 될 지 알 수 없다.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애니멀 호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운동을 준비 중에 있다.

개체수가 많아지면 동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된다.2011년 경기도의 한 머니가 방치간 개의 사건
 개체수가 많아지면 동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된다.2011년 경기도의 한 머니가 방치간 개의 사건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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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동물사랑실천협회는 개들의 치료, 미용, 목욕, 이동 등을 도와줄 자원봉사자, 그리고 치료비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본 결과 개들은 다행히 큰 질병은 없어보였습니다. 개들의 평생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메일주소: fromcare@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fromcare.org



태그:#동물권리, #동물학대, #애니멀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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