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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 집은 오물과 먼지가 쌓인 쓰레기 더미였다.
 활동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 집은 오물과 먼지가 쌓인 쓰레기 더미였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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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시민단체 동물사랑실천협회로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10여 년간 수십 마리의 개를 키워온 할아버지 때문에 주민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양윤아 동물사랑실천협회 간사는 당시 현장을 방문했을 때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온 집안에 곰팡이 핀 데다 비까지 새고 있어서 안에 있던 개들은 몸이 다 젖어 있었어요. 털은 온갖 배설물이 묻은 채 엉켜 있었고요. 얼핏 봐도 40~50마리 이상이었어요. 바닥은 분변으로 더러웠고, 여기저기서 풍기는 악취는 누구라도 5분을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집안을 살펴보는 와중에는 이웃들이 찾아와 욕을 하며 항의했고, 할아버지도 이웃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를 휘두르며 진정 시키려고 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개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짖었습니다. 가장 약한 개체를 물어뜯는 공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죠."

개를 '수집'하는 사람들

이 악몽은 할아버지가 개 다섯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시작됐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개들은 금방 개체 수를 불렸다. 할아버지는 지나치게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전형적인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였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HSUS(Humane Society United States)는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을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영양, 위생 등을 제공하지 못해 결국 굶주림과 질병을 앓다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 단체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매년 25만 마리의 동물이 애니멀 호더에게 방치된다. 애니멀 호더 또한 비좁은 공간에서 아픈 동물들과 생활하기 때문에 질병에 전염되기 쉽다.

미국 연방주거안전보건당국(OSHA)은 애니멀 호더의 거주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동물들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높은 수치의 암모니아를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으로 분류한다. 암모니아가 피부와 눈, 폐 등을 부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이웃들의 항의를 받아 온 할아버지는 사회복지사의 긴 설득 끝에 개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이어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시에 긴급 요청을 해 임시 부지를 마련했고, 지난 13일에 개들은 이곳으로 옮겨졌다.

"장수동 사건 이후 최악이었던 거 같아요."

개를 임시 부지로 옮기는 작업을 지휘한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가 말했다. 2006년 인천 장수동에서는 개 100여 마리가 지붕도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겨울을 보냈다. 동물학대가 명백했지만 사태를 해결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남아 있는 50여 마리의 개를 훔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현장실무를 담당한 임영기 동물사랑실천협회 사무국장에게 "당시에 할아버지가 개를 순순히 내주었나?"라고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아니죠. 준다, 만다 반복하느라 시간이 더욱 지체됐어요. 우리를 아예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주머니가 개들을 케이지에 넣고 밖으로 빼주셨죠. 우리가 케이지를 받아 차로 운반했죠."

밖으로 나온 개의 상태에 대해서는 "환경이 바뀌어 불안했는지 케이지 안에서 배설을 많이 했고, 그 중엔 자해하는 개도 있었다"고 전했다.

할아버지 집에서 구조된 개들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구조된 개들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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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에 배설물이 묻은 상태로 구조된 개.
 털에 배설물이 묻은 상태로 구조된 개.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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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호더 사건을 해결할 때 어려운 과제 중 하나는 소유주의 태도다.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집착과 애증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손선원 동물사랑실천협회 간사에 따르면 "개를 내어주다가도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안 준다고 버티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됐다"고 전했다. 또 "사회복지사가 개를 옮긴 곳에 한 번 보러 가시겠느냐고 물으니 어디선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이 상황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보라 동물사랑실천협회 간사는 그날 현장을 "지옥 같았다"고 표현하며 "구조를 함께 한 봉사자들이 처음 본 광경 앞에서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사랑이 아닌 마음의 병... 심리치료 절실

자신이 동물을 학대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애니멀 호더는 별로 없다. 할아버지도 개들에게 애착을 보이면서도 학대한 경험이 있다. 현장을 여러 번 답사한 손선원 간사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까 개장수한테 몇 번 팔기도 했는데, 팔려고 내놓은 개를 계단에서 굴리는 걸 주민이 목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물의 수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배설물을 치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짖는 소리와 냄새 때문에 점점 외부 사람의 출입을 막게 되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웃이 알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개가 구조된 다음 날인 지난 14일 동물사랑실천협회로 공문 한 장이 들어왔다. 임시거처 주변 주민들이 시에 민원을 넣은 것이다. 임시거주지에 머무는 개들이 또다시 갈 곳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같은 날 임시 거주지로 개들을 보러 갔다. 열악한 환경에서 움츠리고 살았던 개들은 바깥  바람을 쐬면서 한층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을까. 동시에 나름 무리를 지어 생활하던 개들이 갑작스레 한 곳에 모이게 되면서 어떤 돌발행동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개 두 마리가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다 한 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격성이 있는 개들을 따로 떼어두고, 다친 개는 병원으로 옮겼다.

이날 개들이 머물러 있는 비닐 하우스 안은 먼지로 시야가 흐렸고, 악취도 심했다.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도 이렇게 냄새가 심한데 좁은 공간에서는 어땠을지 상상이 안 됐다. 임시 거주지 앞에서 만난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애니멀 호더로부터 구조된 동물을 돌보는 데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당초에 50마리 정도로 예상했는데,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개들을 합하니 100마리 가까이 되더라고요. 개를 치료하고 이동하는 데 쓰는 비용부터 임시 거주지에 펜스를 설치하는 돈까지 앞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텐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임시거주지로 옮겨진 개들. 치료와 미용이 필요한 상태다.
 임시거주지로 옮겨진 개들. 치료와 미용이 필요한 상태다.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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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사랑실천협회는 몇 차례 애니멀 호더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다. 구조 후 보호소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소에 빈자리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회원들이 임시로 돌보다 입양을 보내는 방식으로 해결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유기견 한두 마리를 입양 보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보통 50~100여 마리가 성치 않은 상태에서 구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이 반려동물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달리 대책이 없다. 국가가 제도를 마련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애니멀 호딩 때문에 이웃의 피해가 극심했는데도 정부가 나서지 않았다. 소유할 수 있는 반려동물의 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국가가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자들은 애니멀 호더는 알코올 중독처럼 동물에 중독된 상태라고 말한다. 미국의 수의사인 카렌 캠퍼는 미국 10대 일간지 중 하나인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에서 동물중독과 마약중독 사이의 10가지 공통점을 꼽기도 했다.

또한 애니멀 호더들이 '집착성 강박 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도 많다. 이들은 동물뿐만 아니라 물건도 수집한다. 실제로 애니멀 호더들의 집에는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찬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이웃에도 피해를 주기 때문에 발견 즉시 동물과 소유주를 격리하고 심리 상담을 받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동물보호 단체 HSUS는 엄청난 수의 개들을 구조한다 한들 입양에 보내는 데 한계가 있고 지역사회의 보호소는 대부분 포화 상태라 안락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시민에게 알리는 활동을 한다. 동시에 강력한 법개정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 내용은 명확하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반려동물 수를 제한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과 애니멀 호더에게 심리 상담을 의무로 받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덧붙이는 글 | 동물사랑실천협회는 개들의 치료, 미용, 목욕, 이동 등을 도와줄 자원봉사자, 그리고 치료비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본 결과 개들은 다행히 큰 질병은 없어보였습니다. 개들의 평생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메일주소: fromcare@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fromcare.org



태그:#동물학대, #동물보호법, #애니멀 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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