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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거기에 발맞춰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미래의 격변이 두려워서 그냥 길가에 앉아 현재보다 나을 것도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훌쩍이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내버려 둬." -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 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벨 문학상이라는 받기까지 주제 사라마구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주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전복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이유에서인지 그의 소설은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섞여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은 얼핏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자본주의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 제목 '동굴'의 의미를 자세히 음미해보면 더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공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시프리아노는 현재 흐름에 발맞추고 자신의 전통도 이어갈 겸 도자기 인형 만드는 일로 직업을 바꾼다. 그러나 그마저도 센터에서는 먹히지 않았다. 센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라기보다 자연이 사라진 인간사회를 의미한다.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센터 외곽에 사는 이들이 아니라 센터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태양이 보여주는 자연의 모형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마치 진짜인 것처럼 환호한다. 오히려 그들은 '비바람을 센터 외곽에 나가면 진짜로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시프리아노를 우습게 본다.

센터 내에는 인간이 만든 물질과 모형들을 제외하면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바깥 날씨조차 센터에서 조절을 하였다. 사람들은 점점 물질화되는 도시 속에서 불빛에 홀려 그들의 자본을 갈취 당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최상의 삶에 사는 줄로 착각한다.

동굴에 갇힌 사람들이 가진 한계

<동굴>의 책표지.
 <동굴>의 책표지.
ⓒ 해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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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오는 개 파운드는 서로 멀어진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미망인과 시프리아노 일가를 연결해주고, 시프리아노 가족들을 단단하게 결속시킨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 준다. 파운드는 제복을 입은 사위를 보면 무섭게 짓지만, 일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반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시프리아노가 센터에 살면서 동굴을 비밀을 알고 다시 외곽으로 돌아왔을 때 공방에 머물며 가장 먼저 반겨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동물과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외곽과 달리 센터에서 동물들은 오로지 박물관이나 포스트에서만 볼 수 있다. 포스트에서조차 동물들을 인간 옆에 그린 후 더욱 인간이라는 종을 우월하게 보이게 하는 용도로 썼다. 시프리아노는 사위 부부를 따라 외곽을 떠나기 전 자신이 만든 모든 공예품을 공방에 넣어두었지만, 그 곳을 영영 떠나기 전 다시 바깥에 내 놓는다.

센터에서 시프리아노가 본 동굴 속 해골과 도자기들이 자신과 사위 부부로 보였기 때문이다. 센터로 가기 위해 영혼은 외곽에 남기고 육체만 옮겨갔지만 그마저도 자본주의 속 사람들의 체험시설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프리아노는 동굴 속 해골이 자신들의 미래라고 보았다.

센터라는 동굴 속에 영영 거주하고 다른 곳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후에 또 다른 사람들의 눈요기로 전략해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본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풍화되지 못하고 해골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시프리아노는 공방에 있는 도자기들이 영영 보존될 수 있는 기회를 없애고, 햇볕 아래에 두어 언젠가 풍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실제로 약 20년 동안 공산주의 활동을 해왔다. 그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사회는 플라톤의 동굴 속에 묶인 인간들로 구성된 터전이었다. 소설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물과 공기를 사먹는 사회, 동물들을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는 사회를 생각하면 그리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의 그림자일 뿐 자연 속 일부가 아니다. 처음부터 생수병에 갇혀있는 물과 공기가 어디 있으며, 환경에서 뛰지 못하고 모형 속 환경에 갇힌 동물들이 정상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과연 왜 돈을 버는가

주제 사라마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하다. 자본주의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자연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인간사회가 만들어 낸 모순이기도 하다. 자연의 입장에서 본 도시 속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며 히히거리는 딱한 모습을 한 플라톤의 동굴 속 존재들이다. 결국 인류는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하는지 알기 위해 눈을 감고 동굴을 떠나 태양이 비추는 실제 환경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줄거리를 좀 더 살펴보자.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예순이 넘은 도공이다. 그는 그 일을 삼대 째 이어오고 있다. 시프리아노는 매일같이 사위 마르살 가초를 산업벨트 센터에 있는 작업장으로 태워다주곤 한다. 여느 때처럼 사위를 태워주고 자신의 물건을 사주는 공장으로 간 시프리아노는 그곳에서 더 이상 도자기를 받지 않겠다는 말을 듣는다. 예전부터 센터에 있는 공장에서 플라스틱 도자기가 대량으로 생성되어,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 만든 도자기는 유물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시프리아노에게 마르타 알고르라는 딸이 있다. 마르타는 마르살과 결혼을 하여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아버지의 일을 존중하고 함께해왔다. 다행인 것은 사위 마르살이 센터 상주경비원으로 승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프리아노가 가마 굽는 일을 그만두어도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에 충분했다. 단, 조건이 있다면 센터에 있는 거주지로 옮겨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사위가 승진 전이기에 시프리아노는 계속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시프리아노는 더 이상 팔 수 없는 도자기들을 공방에 조심히 옮겨 둔 뒤 풀로 덮어두었다.

며칠 후 딸과 함께 죽은 아내의 무덤에 들러 생각을 가다듬던 중 이웃에 사는 미망인 사우라 마드루가를 만난다. 사우라는 몇 년 전 시프리아노로부터 구입한 도자기 화분의 손잡이가 떨어져 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시프리아노는 더 이상 쓸모없는 도자기들 중 화분도자기를 그녀에게 공짜로 준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마당을 본 마르타는 오래된 개집에 낯선 개가 들어가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시프리아노는 그 개한테 먹을 것을 주고 다음날 여러 집을 전전하며 개 주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자신이 그 개를 키우기로 한다. 그 개 이름은 파운드라고 하였다. 개 주인을 찾아보던 중 유독 미망인 여자가 그 개를 탐냈지만, 이미 시프리아노는 자신의 개로 키우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자연을 체험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

그날 밤 시프리아노는 꿈을 꾼다. 공방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돌의자가 생겨있었다. 돌의자 주위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리며 시프리아노에게 경고하였다. 목소리가 그치고 의자 밑에서 자신의 개 파운드가 나왔다. 시프리아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며칠 후 시프리아노는 센터에 지점을 둔 한 공장으로부터 도자기 인형을 주문받게 된다.

공장은 6종류의 인형을 200개씩 총 1200개에 달하는 주문을 하였는데, 그전에 각각 50개씩 300개를 먼저 구입해 소비자의 입장을 밝히려고 했다. 며칠이 지나 소비자의 구매 만족도를 알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그날 사위가 상주경비원으로 승진하게 되어 일주일 내에 이사를 가야 했다. 그의 도자기 인형 만들기도 포기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장으로부터 소비자 만족도가 매우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공장은 그의 도자기 인형 구매를 취소했다. 그렇게 시프리아노는 생계를 이을 수단도 없거니와 할 수 없이 사위와 딸을 따라 센터로 이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딸과 함께 남은 도자기 인형들도 공방에 넣어두었다.

파운드는 미망인 여자 사우라에게 맡겨두었다. 센터에는 새나 작은 수족관 물고기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망인 여자는 그린벨트 지역에서 소소한 일거리를 찾았기 때문에 그곳에 계속 머물며 기꺼이 파운드를 맡기로 했다.

시프리아노가 이사한 센터의 아파트는 40층 이상의 층을 가졌다. 그 중 그는 사위 부부와 34층에 살게 되었다. 센터에 사는 사람들은 그린벨트가 보이지 않고 호화로운 센터의 중심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살기를 선호했다. 아파트에는 창문이 없고 대신 환기시설이 일 년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켰다.

다음날부터 시프리아노는 센터를 둘러보았다. 그 곳에는 '당신이 최고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시오'라는 둥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문구가 나돌고 있었다. 지하에서는 지속적으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센터를 울렸다. 시프리아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센터의 중심가로 가보았다.

센터주민이자 노인이기에 많은 할인을 받고 여러 시설을 체험하던 중 날씨 체험관을 가본 시프리아노는 충격을 받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태풍, 비, 눈, 햇빛 등을 체험하고 있었다. 센터 지하에서는 울림이 계속 되었다. 상주경비원으로 그곳에 근무하는 사위에게 물어보니 지하 5층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시프리아노는 도자기 인형 대금을 받으러 간 김에 지하로 통하는 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사람들 몰래 그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여자 셋, 남자 셋의 해골이 돌의자에 묶여 있는 동굴이 있었다. 즉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시프리아노는 딸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한 뒤 다음날 센터를 떠나 예전 집으로 간다. 그곳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파운드와 미망인이 있었다. 일주일도 안 돼 딸과 사위도 그린벨트 지역으로 돌아왔다.

상주경비원을 그만둔 사위가 센터 지하입구에 붙어 있는 '플라톤의 동굴 체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시프리아노는 딸과 사위, 미망인 그리고 개와 함께 그린벨트도 떠나 자신의 손주가 태어날 세상을 찾기 위해 그 마을을 영영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 공방에 있는 모든 도자기들을 햇빛이 드는 바깥으로 꺼내 놓는다.

덧붙이는 글 |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 해냄 | 2006년 6월



태그:#주제 사라마구,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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