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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문제가 전 국민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즘, <오마이뉴스>와 한국의료협동조합은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우리동네 주치의' 의료협동조합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을 함께 짚어 봅니다. 이번 글은 서울시와 노원구 보건소, 노원교육복지재단, 노원구 정신건강증진센터, 함께걸음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진행하고 있는 자살예방사업 '어르신 돌봄' 후기를 싣는다. [편집자말]
올해 초 노원구청 복지정지책과 사례관리팀의 한 복지사로부터 방문 동행을 요청받았다. 상계4동, 내가 사는 집에서 200여m 가량 떨어져있지 않은 데서 사는 분이셨다. 지난 2월 중순, 처음 방문 갔을 때 어르신 집은 '폭탄을 맞은' 듯했다.

온갖 물건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고 사람들이 가져온 라면, 빵, 떡국, 고춧가루, 쌀, 반찬, 김치, 잼, 커피, 율무차, 심지어 참기름 등등 온갖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썩고 있었다. 마늘 두 봉지와 식빵에는 곰팡이가 피고, 방 문간에는 거미줄, 문간 기둥엔 하얀 것들이 작은 먼지처럼 박혀 있는데, 곰팡인지 벌레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르신 혼자 누울 공간을 빼고는 먹던 그릇, 막걸리 병, 산더미같이 차곡차곡 쌓은 담배갑, 대소변 받는 통 등이 집 안에 가득했다. 몸에서 떨어지는 각질이 수북한 집에도 웬만하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앉고, 지린내가 진동하는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할 수 있는 나였지만 이 댁은 도저히 신발을 벗고는 들어갈 수 없었다.

'먹을 것과 물건을 주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르신 사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집안을 둘러보고 있어도 어르신이 오지 않았다. 3일 후 다시 어르신을 방문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 기웃거리며 어르신을 부르니 작은 대답이 들린다. 어르신이 이불 속에 누워있는 것만 빼면 지난주 풍경과 달라진 건 없었다. 추워서 얼굴만 내놓은 상태로 나를 만나고 있음을 미안해하신다. 목소리가 가늘고 작아서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주 귀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들어보니, 입맛을 잃은 지 7~8개월 이상 됐고 음식을 먹으면 오심·구토가 나서 못 먹었다고 한다. 막걸리를 마시면 그 증상이 생기지 않아 식사 대신 막걸리로 요기를 해 오셨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곤 좁은 마당에 놓인 푸대 자루에 왜 수북이 막걸리병이 쌓인 건지 이해가 갔다.

문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궁금한 부분을 여쭤봤다. 가볍게 짜증도 내곤 했지만 말씀을 많이 하신다. 오전 11시가 되니 부스스 일어나 복지관에 밥 먹으러 간다 하신다. 걸으시는데 몸이 휘청휘청하신다. 졸졸 쫓아가니 "왜 따라오느냐?" 하셔서 "식사하시는 것 보고 갈려구요~" 했다. 가는 길, 오랜 만에 말동무가 생겨 그런지 짧은 시간에 청하지도 않은 얘기를 줄줄 풀어놓으신다. 그렇게 어르신 방문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생긴 말동무에 마음의 문이 열리다

동네에서 입원 가능한 여러 곳을 알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봤지만 병원 입원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모든 곳에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동네에서 입원 가능한 여러 곳을 알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봤지만 병원 입원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모든 곳에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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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입원치료가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어르신과 얘기하고 구청 복지사와 상의를 시작했다. 며칠 동안 잠깐씩 들러 안부를 확인하며 보니 '입원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거부'해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네에서 입원 가능한 여러 곳을 알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봤지만 병원 입원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구청 복지사가 입원 가능한 곳을 함께 알아보기로 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3월 초순이지만 옷을 두껍게 껴 입고도 극세사 이불 속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을 만큼 아직은 추운 날씨. 이럴 때 전기장판은 매우 유용한 물건인데 시에서 지원했던 전기장판을 2월 말 걷어갔다고 한다. 전화로 항의를 하였지만, 여러 정황과 형편을 얘기하며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입맛이 없다는 어르신의 식사량을 알아보기 위해 식사를 해결하시는 복지관에 들러 배식 담당 어르신에게 여쭈니, "많이 못 드신다"고 한다. 구청 복지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았노라고, 북부병원 사회사업실에서 입원 비용 관련 지원을 돕기로 하였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들렸다.

구체적 상황을 어르신에게 알렸고 의뢰서 작성을 위해 보건소 진료를 가기로 했다하니 아주 기뻐하셨다. 3월 말 입원하신 어르신을 5월 다시 만났다. 안부를 여쭸더니 잘 드시고 잘 지내시는 편이라고 한다.

한 차례 병문안을 가서 집안 정돈을 언급했지만 "내가 나으면 치울 것"이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그러나 집안 위생이 개선되지 않으면 어르신 건강이 금방 나빠질 것은 불보듯 뻔했다. 입원해 계신 동안 몇 차례 집을 둘러 봤는데 사람이 살지 않으니 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집안을 어떻게 좀 해야겠기에 구청 복지사, 동주민센터 복지사와 함께 작전을 짜고 어르신을 부드럽게 설득하기로 하고 다시 병문안을 갔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시면 어쩌나 했는데, 동주민센터에서 함께 간 남자 복지사의 말에 약간 고민하시더니 집안 청소와 환경정비 동의서를 선뜻 써 주셨다. 그렇게 하여 집안의 대대적인 청소와 도배, 장판깔기, 화장실 수리 등이 시작되었다.

6개월 만에 달라진 집, 달라진 표정

함께걸음 의료 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는 우리동네 어르신 행복향상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걸음 의료 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는 우리동네 어르신 행복향상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 함께걸음의료 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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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랜만에 어르신댁에 들렀다. 집안 환경이 달라진 후 첫 방문이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저분했던 마당을 싹 치워 마루를 깔았고 방 안에 넘치던 살림도 대부분 정리해 옷가지만 남아 있었다.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매실주 몇 통은 마당에서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꼼짝달싹 할 수 없던 주방도 단아한 곳으로 바뀌었고, 막혔던 화장실도 새로이 고쳐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3개월 넘게 입원했던 어르신이 방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신다. 여전히 막걸리 통은 여섯 개가 두 줄로 나란히 정렬해 있고, 담배연기로 인해 목이 까끌했으나 2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좋아보였다.

어르신 돌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단체, 단체와 기관 간 연대와 소통임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필요시 함께 의논하고, 공유하며, 돌보는 열린 관계가 한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킨다. 상계4동 어르신 케어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진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어르신은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함께걸음의료생활협동조합은 어떤 곳?
함께걸음의료생활협동조합(아래 함께걸음의료생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조합원이 중심이 되어 누구라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설립하여 조합원과 가족이 운영, 이용함으로써 전문인들과 함께 건강관리,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치료하고자 하는 곳이다

또한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협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합을 설립하여 보건의료현실을 개선하고,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건강을 실현하는 활동을 펼친다. 이로써 장애우의 건강권을 확보하고 나아가 조합원을 포함한 지역주민의 생명과 건강한 삶을 실현시켜나갈 희망찬 비전을 함께 만들고자 한다. - 홈페이지 참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함께걸음의료생활협동조합 보건예방실장입니다.



태그:#함께걸음, #의료생협, #어르신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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