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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의료민영화에 대한 정부 의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세월호'에서 특히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는 가장 안전해야 할 영역인데요. 그 안전이 흔들리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의료민영화의 우려점을 자세히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부대사업 확대와 영리자회사 도입으로 어수선한 지난 한 달여간 건강보험제도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시도가 있었다. 하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주도하는 '건강보험부과체계 일원화' 논의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75세까지 노인의 실손형 보험상품 출시 계획'이다.

지금 정부는 영리자회사와 부대사업확대와 같은 포괄적 의료영리화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국민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올 1월에는 마치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을 잘 지키고 유지할 것처럼 광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허울 좋은 약속과 달리 실제 추진되고 있는 건강보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시도들은 의료민영화 시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부과체계 논의보다 중요한 이것

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화면 캡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화면 캡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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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난 6월 15일 김종대 이사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아래 기획단)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올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소득자료 확보율이 지금 92%까지 올라갔는데 아직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바꾸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주장했다. 과거에 비해 개인의 소득이 잘 드러나고 있는 만큼, '월급쟁이 직장가입자나 자영업자를 포함한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부과 기준을 현행 소득·재산·자동차 등에서 '소득 중심'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란 설명이다.

원래 부과체계 관련 논의는, 고액의 금융소득자와 임대소득자들이 부양가족으로 편입하여 보험금을 면제받는 문제 개선이 주된 목표였다. 그런데 이번 '소득 중심' 개선안을 살펴보면, 연금과 일용소득 같은 노동자들의 미래소득 그리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의 노동 소득까지 그 대상에 포함하는 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고액의 재산을 가진 사람 등은 빠지고, 무엇보다 고액의 금융소득, 상속, 증여 등의 소득에 대해서는 원칙없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만 고려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의 건강보험부과체계 논의가 '건강보험료 부과를 형평성 있게 하겠다'는 데 방점을 둔 게 아니라, 향후 노령화 및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해서 '연금'과 '일용소득'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소득 중심 부과라는 명분으로 서민들에게 보험료를 더 걷어들이려는 심산이 아니냐는 말이다.

사실 건강보험재정은 지난 15년간 지속적인 보험요율(보험가입 금액에 대한 보험료의 비율)의 증가로 총액이 약 13조에서 50조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보험재정이 증가된 데는 보험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자들의 역할이 컸다. 반면 건강보험보장성은 답보 상태이거나 낮아졌다. 이런 문제는 건강보험재정의 상대적 부족이라는 재정적 측면보다는 공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의 방관에서 기인한다.

올해 초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07년∼2012년까지 정부가 미납한 건강보험지원금은 6조5232억 원에 달한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건강보험지원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료수가를 크게 올리면서 초래된 건강보험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02년 제정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이듬해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일반회계 14%, 국민건강증진기금 6%)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정부가 국고로 진료비를 부담하는 의료급여환자가 해마다 줄어들면서(자격 조건 강화 등의 이유로) 차상위계층 및 극빈층이 건강보험가입자로 전환되어 실제 국민건강보험이 감당해야 할 재정 부담은 더욱 늘어났다. 또한 이들 극빈자는 가처분소득이 없어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해 100만명 이상이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논의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 가운데 어떤 순서로 부담을 지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의 하나이다. 따라서 일단 국고 부담을 현행 20%에서 30%로 늘리고, 의료급여를 차상위계층까지 확대해서 국가의료보장영역을 늘리는 문제를 고민한 후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의료 분야 수익자부담원칙, 복지국가로의 장애물

미국이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국가의료보장 영역에 두는 것은 단순히 노인공경의 이유는 아니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전체 의료비의 90% 정도를 사용할 정도로 의료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국가의료보장 영역에 두는 것은 단순히 노인공경의 이유는 아니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전체 의료비의 90% 정도를 사용할 정도로 의료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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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75세까지 노인의 실손형 보험상품'을 출시하려는 게  민간보험사가 아니라 금융위원회인 것도, 국민건강보험의 기능에 대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입장을 반증한다.

사실 미국같이 의료민영화가 극에 달해 있는 나라에서도 만 65세 이상 노인들은 '메디케어(사회보장세를 20년 이상 납부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방 정부가 의료비의 50%를 지원하는 제도)'라는 국가의료보장체계에 속해 있다.

맹장수술만 1200만 원씩 하는 미국에서도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극빈자 등의 국가의료보장이 전 국민의 27%에 해당된다. 반면 한국은 의료급여1, 2종 합쳐서 3% 남짓이고, 보훈환자 일부를 제외하면 국가보장이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이 5%도 채 안 된다.

미국이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국가의료보장 영역에 두는 것은 단순히 노인공경의 이유가 아니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전체 의료비의 90% 정도를 사용할 정도로 의료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미국같이 민간의료보험의 천국인 나라에서도 만65세 의료보험은 너무 비싸다. 상품성이 떨어져 민간보험사도 상품 출시를 꺼리는 보험이다.

따라서 노동소득이 급감하고, 연금이나 자녀의 용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의료비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공적보험이 100% 보장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이번에 우리 정부가 민간보험사가 관련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민간보험의 본인부담금을 상향하고, 보험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의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과 민영보험 확대는 각각 두 가지 사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철학을 공유한다. 그것은 '수익자 부담원칙'이다.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각각의 개인이 그에 합당한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최소한의 의료보장만 하고, 나머지는 민간의료보험으로 돈이 있으면 하라는 것이기도 하다. '수익자 부담원칙'은 공적보험의 사회연대원칙과 배치될 뿐 아니라, 기본적인 복지영역도 개인영역으로 전락시켜 유럽에서도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도 지키고, 노인 건강도 지킬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지금껏 정부가 이야기한 '국민건강보험을 지키겠습니다(보건복지부 2013년 12월 홍보자료)'란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 된다. 현재 OECD 2014년 데이터를 볼 때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실제로 50% 수준이다.

만약 여기에 개인간병비, 정액민간보험금액이 포함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50%도 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과 일용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민간보험을 노인까지 활성화 한다면, 국민건강보험이 공적보험으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가 지금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지키려면, 건강보험이 공보험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고지원을 대폭 확대(미납금액 약 6조 원의 조속한 납부, 기존 20% 가량에서 30% 정도까지)해야 한다.

그리고 연금이나 일용소득에 보험금을 부과할 게 아니라 고액금융, 임대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서 기업의 보험료 부담비율을 현행 5:5:에서 6:4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또한 민간의료보험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제한하고 규제해야 한다. 민간의료보험이 가지고 있는 의료비 증가효과(풍선효과)를 직시하고 조속히 보험지급율 등을 규제하고 상품 출시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병원들이 의료비를 폭등시킬 영리자회사 및 부대사업 확대안을 철회해야 한다. 아무리 건강보험재정을 확충하고, 부과체계를 옳게 개선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통제·폐지해도, 의료비 폭등을 막지 못하면 공보험조차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의료체계는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국식 영리의료체계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국가가 보장하는 65세 이상의 노인들까지 민간의료보험상품에 밀어넣는 이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정부에 의료복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마저 남아 있는지 의심스럽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의료민영화,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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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집행위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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