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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 김득중 무소속 후보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 김득중 무소속 후보
ⓒ 김득중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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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난 중년 남성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들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 넘어선 또래 남자들은 자신이 일궈 온 세계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하다. 딱하게도 자신 앞에 닥친 불안을 감추기 위한 완고한 성 같아 보인다. 불안한 시대를 헤쳐가기에 나약하다. 훌쩍거리면서 기댈 어른이 주변에 없다. 강해야 살아남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강한 척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김득중이나 김득중 동료 남자 또래들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9년 쌍용자동차 2646명(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3000명이 넘는다) 대량 해고 사태가 없었고 안정적인 현재가 보장된 대기업 노동자, 김득중이었다면 말이다. 지나온 역사에 가정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마는,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적어도 고난의 국회의원 후보 출마자는 아니었을 성싶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인 그는 오는 30일 치러지는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 '진보단일 노동자후보'로 출마했다.

만약 출마하지 않았다면 지금, 선거 수행을 맡은 용산참사 유가족 정영신을 알았을까? 밀양에서 올라온 할매들이 그의 곁에서 마이크를 잡았을까. 나는 그를 알게 되었을까? 오가며 인사하는 사이였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 식구 같은 정다움으로 그를 보지 못했겠지. 김득중과 동료들의 고통은 한편으로 수많은 인연들을 연결한 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또래 중년 남자들이 쌓은 옹색하고 초라한 성이 그에게 없다. 새로운 고통과도 넉넉히 만날 준비가 된 그는, 비통한 자들 마음을 묶어 세울 줄 아는 드문 중년 남자다.

지난 일요일(13일) 그를 만나기 위해 평택으로 향했다. 그 전 주에는 선거 사무실 개소식에도 들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겨우 인사만 하고 나오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달려가던 때는 저무는 일요일 저녁. 그가 중학교 동창들과 식사 중이라는 해물탕 집으로 갔다. 해물탕 집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즐겨 찾는 평택 시내 '폐계닭 집' 맞은편이다. 길 안내를 맡은 동료 박호민은 연신 김득중의 미모와 팬클럽의 염려에 대해 알려줬다.

"후보 피부가 너무 나빠져서 트위터에서 난리가 났어요."

속사포 같은 그의 말 때문인지, 김득중 후보를 보자마자 '어이쿠 정말 피부 트러블이 장난이 아니네' 하는 속말이 앞섰다. 피곤한지 눈은 충혈되었고 피부는 불긋불긋한 두드러기로 어지럽다. 팬클럽은 아니어도 그의 미모가 걱정이긴 하다.

해고 뒤 5년... "힘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13일 만난 김득중 후보. 왼쪽에서 두 번째.
 13일 만난 김득중 후보. 왼쪽에서 두 번째.
ⓒ 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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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북중학교 동창 전수웅씨와 부인 차정미씨, 윤선희씨와 중학생 딸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전수웅씨에게 그가 중학교 때 인기가 많았는지 물었다.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져서 한 마디도 못 했어요."

대뜸 첫 마디가 그렇다.

"그래서 미팅을 했어요. 여자 앞에 서도 말을 좀 할 수 있도록."

말을 받아 김득중이 대답한다. 내가 아는 그라면 그럴 법도 하다 싶었다. 지난 대선 지나서 해고 동료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고공농성 할 때 평택 쌍용차 공장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도보행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를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꾸밈없고 가식 없어 조금 많이 심심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속 터지고, 좋게 말하면 담백하다. 친구 김득중이 이렇게 정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지요."

친구들은 해고 사태가 있기 전까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몰랐다 한다. 노조 일 하는 정도는 알았지만 앞에 나서 싸울 만큼 색깔이 분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여자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져 말을 못 꺼내던 그가, 그걸 고쳐보려고 미팅을 많이 했다는 얼토당토 않을 정도로 성실하기만 한 그가 투사로 사는 것이 친구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난 6일 있었던 선거 사무실 개소식에서 아내 배은경씨는 울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지난 세월이 그녀에게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되었다. 해물탕 식당을 나와 김득중 후보와 걸으며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마하면서 사모님하고 상의 안 했죠?"
"네… 어떻게 알았어요? 상의하면 걸리는 게 너무 많으니까…. 결정된 뒤 통보처럼 말했지요. 제가 늘 그런 식입니다. 이야기 나누고 같이 결정해야 하는데, 그 사람한테는 잘 안 돼요. 믿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상의랍시고 하다가 더 상처 주게 될까봐. 미안하게도 그렇게 통보처럼 말했는데도 이해해주었어요. 그냥 미안하고 고맙기만 한 사람입니다."

29살에 소개팅으로 만났다는 대목에서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런 그가 해고 사태 이후 그녀에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동료 해고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그런 우리에게 무슨 힘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인지…. 힘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피하고 싶었던 선거 출마...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나라도"

김득중 후보의 선거운동에 함께하는 SKYM연대
 김득중 후보의 선거운동에 함께하는 SKYM연대
ⓒ 김득중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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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 결정은 어떻게 된 거예요? 성격상 출마 결심하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하셨는지요?"

"노조 내에서 오랫동안 논의했어요. 알겠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SKYM(쌍용차, 강정마을,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등 함께 연대하는 모임) 후보 출마를 논의했잖아요?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 직접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지요. 당시 논의는 불발로 끝났지만, 이번 보궐선거는 한번 해보자 하는 결심들이 섰지요.

그런데 누가 할 것인가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저는 지부장이니까 당연히 지부에 전념해야 한다 생각하고 후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상균이 형, 정우 형… 그럴 줄 알았지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저로 결정되고서 너무 힘들었어요. 피할 수 있으면 피했으면 했지요."

쌍용차 해고 사태뿐만 아니라 온통 쫓겨나고 버려지는 소모품 같은 노동자들 이야기를 누군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라도 해야 한다 생각했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출마 결심의 지렛대가 된 것은 세월호 사고였다. 16살과 9살 아들 얼굴이 세월호에 탄 어린 승객들과 겹쳤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대처는 동료 고 이윤형씨를 떠올리게 했다.

"못 견디겠더라구요. 침몰하는 배를 보는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윤형이가 생각났지요. 22번째 희생자라고 불리는 윤형이요. 2012년 해고 무효 소송 1심 패소하고 두 달 후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어요. 우울해 하는 것은 알았는데, 자동차 부품 업체 면접 본다고 연락도 오고 떨어졌다고 허탈해도 하고… 그래도 괜찮겠지 했는데….

복직 투쟁으로 정신없던 때라 챙기지 못했거든요. '조금만 더 부여잡아 볼걸'이란 안타까움, 미안함…. 지금도 윤형이를 생각해요. 파업 이후 1∼2년은 어디 가서 쌍용차 다녔다는 말도 못 했거든요. 그때 윤형이를 놓친 거지요. 한 명도 구조 못한 세월호를 보면서 또 윤형이가 떠올랐습니다. 사람 죽이는 정치라면, 세월호 같은 대한민국이라면 사람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게 내 몫이면 해야 한다고."

그의 출마 기자회견문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국회의원은 수많은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역사적 변곡점의 대한민국과 평택을 바꿔낼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역사와 사회발전의 근본인 노동의 가치를 알고 노동으로 삶을 건강하게 가꿔낸 사람. 눈앞의 작은 이익에 곁눈질하지 않으며 정의와 진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묵묵히 자신의 몫을 감당한 사람. 평화의 가치를 알고 일상의 평화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살아온 사람. 조금 부족하더라도 주변의 지혜와 능력과 조언을 구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 이러한 사람이 시대가 요구하는 국회의원 아니겠는가?"

내가 아는 김득중은 분명하다. 긴 겨울 청와대로 향하던, 대선 취임식을 앞두고 막막한 겨울 거리에서 풍찬노숙을 감행했던 그는 분명하다.

"침몰하는 배 보면서 '살리는 정치' 다짐했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인 김득중 후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인 김득중 후보
ⓒ 김득중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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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슬로건은 '목숨 뺏는 정치 끝내겠습니다'였는데 지금은 '살리는 정치 함께 살자 김득중'이네요. 비슷하기도 하지만 조금 달라졌어요. 어떤 의미인지요?"

"사회적 타살이나 아픔을 끝내고 싶은 열망을 담았어요. 민영화 정책이 사회적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잖아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이 같이 살고 일해왔던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잖아요. 철거민은 어떻고 농민은, 학생들은, 자영업자, 노인, 장애인은 어떤가요. 너무 아파요. 제가 해고자가 돼보니까 알겠더라구요. 노동운동하면서 머리로만 알았던 걸 해고돼서야 제대로 알았죠.

그래서 알게 된 우리가, 깨달은 내가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살리는 정치를 하자고 나선 겁니다. 그런데 '목숨 뺏는 정치' 너무 세다고 해요.(웃음) 2012년에 처음 SKY행동이 전국행진 할 때, 그때는 밀양 싸움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쌍용, 강정, 용산 사람들이 뭉쳐서 함께 외쳤죠. 그때 구호가 '함께 살자'였거든요. 금속노조 구호도 마찬가지구요. 살리는 정치,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이 하면 더 잘 하지 않겠어요?"

'살리는 정치 함께 살자 김득중'은 권력과 자본에 희생된 피해자들이 뭉쳐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내는 실험장일지도 모른다. 김 후보의 출마가 결정된 뒤 고동민과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선배, 이건 딱 그 책이랑 같아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마음이 산산히 깨진 자들이 부서지고 흩어지지 않고 다시 열리는 거라고 했지요?" 나는 몇 해 전에 그에게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선물했다. 맞다, 선견지명처럼 그런 선물이 오갔을지 모른다. 비록 선물을 받은 사람은 고동민이었지만, 고동민인들, 김득중인들, 누구인들 그들은 다르지 않다.

"개인적 정치적 삶에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하는 모든 긴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도전적인 것은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간극의 한쪽에는 세상의 어려운 현상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부수고 희망을 무너뜨리는 현실 말이다. 그 간극의 다른 한쪽에는 실제로 이 세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어지는 삶 말이다."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중에서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 되는 세상, 나쁘지 않잖아요"

세월호 진상규명 행동에 함께한 김득중 후보
 세월호 진상규명 행동에 함께한 김득중 후보
ⓒ 김득중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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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자신 있어요? '지더라도 괜찮다' 이런 뻔한 말 하지 말고. 김득중 후보님 좀 심심하고 재미없어요. 알죠?"

"(웃음) 그게 내 매력인데? 우리는 진다고 생각하고 출마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질 수 있겠지요. 그거 무서워서 단일화 논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까지 힘 별로 없지만 단단한 정당들이 저를 밀어주기로 했구요. 무엇보다 평택시민들 많이 만날 거니까, 만나면 우리 진심 알아주실 거거든요.

그게 중요합니다. '된다, 안 된다'보다 우리의 가치와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거요. 저 재미없는 사람 맞습니다. 사람들 싸우고 갈등하는 거 싫어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야단도 많이 받아요. 그런데 한번 결심하면 뒤돌아보지 않아요. 해고 투쟁도 그랬고, 지금 제가 서 있는 선거도 그렇습니다.

저같이 카리스마도 별로 없고, 말주변도 없고, 재미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 나쁘지 않잖아요?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얼마나 다양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서 어쩌면 국가로부터 버림받았을지 모르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배가 침몰하고서야 우리는 하나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잖아요? 죽기 전에 알았어야 할 소중함을, 저는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대단히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해고자들이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배운 것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게 우리 몫이잖아요. 내가 해야 할 도리고…."

그래, 무간지옥 같은 이곳에서 각자도생하지 않아도, '일부러 져주는 젊은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그것을 김득중은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권지영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말로 인터뷰를 정리하고 싶다.

"어린이집 버스 타기 위해 뛰어가는 4살쯤 된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며 일부러 져주는 젊은 아빠. 아이는 넘어질듯 아빠를 뒤돌아보며 정말 행복하게 웃는다. 아이의 인생에서 앞으로 누가 저렇게 일부러 져줄 수 있을까? 출근길 잊혀지지 않았던 풍경. 작고 약하고 느릴 수 있다. 잘 모르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을 수도 있어. 첨부터 그럴 수도, 혹은 살다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그때 나를 위해 져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나를 탓하지 않고 배려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절대 훈훈한 일이 아니면 좋겠다. 그냥 늘 있는 일. 당연히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었으면…. 함께 살자는 노동자후보 김득중의 정책과 공약은 그걸 말하고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려울 때 국가와 사회가 도움을 줄 것을 확신한다면 각자도생을 위해 미친듯이 경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치우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평택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김득중 후보
 평택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김득중 후보
ⓒ 김득중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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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김득중 , #쌍용차, #평택, #보권선거, #평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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