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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다 해도 이보다는 쉬울 듯하다. 현 정부 들어 '인사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멀쩡한' 장관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유독 국무총리와 교육부 수장 자리는 가히 '역사상 길이 남을 만한' 화젯거리가 됐다.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조롱하는 '동네북' 수준을 넘어,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게 참담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얼마 전 기상천외한 '재활용' 총리가 등장하더니, '인생이 표절로 점철된'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감싸다 끝내 지명 철회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이 와중에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8단)'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이 새 교육부 장관으로 '긴급 호출' 됐다. 김명수 후보 지명을 철회하기 무섭게 발탁된 걸로 보아, 인사 참사 사태의 수습이 급선무라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지난 15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내정된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 교육부장관에 내정된 황우여 의원 지난 15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내정된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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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강조한 '교육 전문가'라는 발탁 이유가 지명 단계에서부터 머쓱해져버린 셈이다. 5선 의원인 그는 20년 가까이 국회에서 생활한, 말 그대로 국회의 '터줏대감'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지냈고, 국회의장 경선에까지 출마할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진 거물 정치인이다. 많은 이들이 '황우여'와 '교육부 장관'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을 무척 어색해하는 이유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내내 교육 관련 상임위원회 활동을 했고, 특히 17대 국회에서는 교육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럴 듯한 '명함'이 아니라, 그간의 '행적'을 통해 자질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입법 실적이 거의 없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육부장관 후보자 황우여, 정말 적절한 인물일까

'교육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의정 활동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오랫동안 국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한 그를 단숨에 '전국구 스타'로 만든 일이 있었다. 바로 야당 시절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과 함께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사립학교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반대해 무력화시킨 일을 말한다. 매일이다시피 언론에 그의 결기어린 얼굴이 실렸으니, 당시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았다.

당시 정부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통해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발의되었다. 개정안은 이사장 직계존비속을 학교장에 임명할 수 없게 하는 등 이사장의 권한을 축소해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과 대다수 사학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는데, 우리나라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사학을 공공재가 아닌 사유재산으로 보는 이들의 인식이 무척 놀라웠다. 이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이 기독교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며 '신앙의 자유'를 외치던 그들의 모습은 광신도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종교 사학의 종교적 자유에 대해서는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그곳에 재학 중인 학생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종교 사학도 엄연히 보편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 기관이다. '의무 배정'된 아이들이 모두 신자일 리 없는데도 '신앙의 자유'를 외치며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건,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고 특정 종교를 강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신앙에 있어서 사학의 자유는 보장하고, 아이들의 자유는 앗아가도 된다는 심산일까. 황우여 후보자는 2007년 한 행사에 참석해 "사립학교법을 신앙의 자유에 부합되도록 재개정하겠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했다. 그에게 있어 교육은 신앙의 '종속 변수'에 불과한 것일까.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전직 대통령의 언급에 버금가는 '역대급' 발언이었다.

판사 시절부터 빛을 발했던 황우여의 '존재감'

지난 2005년 6월 13일 '민주적사립학교법개정과 부패사학척결을위한국민운동본부'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황우여 교육위원장(한나라당), 이군현 한나라당 교육위간사, 김영숙 교육위원(한나라당)을 사립학교법 개정의 걸림돌 정치인 '교육공공의 5적'으로 선포하고 낙선운동을 결의했다.
 지난 2005년 6월 13일 '민주적사립학교법개정과 부패사학척결을위한국민운동본부'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황우여 교육위원장(한나라당), 이군현 한나라당 교육위간사, 김영숙 교육위원(한나라당)을 사립학교법 개정의 걸림돌 정치인 '교육공공의 5적'으로 선포하고 낙선운동을 결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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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안 가리는 독실한 신앙심 때문일까. 친일과 독재를 옹호하는 신념에서도 그의 '근본주의적' 기질이 읽힌다.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해 여당의 대표로 선출된 뒤에도 그는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역사 왜곡으로 누더기가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 문제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그가 다수 여론과 달리 좌편향 운운하며 교학사 교과서를 두둔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그는 "너무 한쪽으로 쏠리는 건 문제"라며, "학생들이 서로 비교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서마저 이념 갈등 문제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이태 전 우리나라 온 국민을 들끓게 했던 일본 내 극우 역사 교과서 채택도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황우여 후보는 지난해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했다가 아베 일본 총리를 '각하'라고 칭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기실 고희를 앞둔 그의 존재감은 30대 젊은 판사 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오랫동안 잊혀 있었지만, 최근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통해 우연찮게 그의 과거 행적이 대중에게 까발려졌다. 영화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한 '부림 사건'을 알게 되면서, 그의 어원인 '학림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 것이다.

'학림 사건'이란 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를 요구한 대학생들을 반국가단체 구성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가혹하게 처벌한, 5공화국 시절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이다. 당시 2심 재판의 배석 판사로서 무고한 대학생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가 바로 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다.

피해자들은 재심 청구로 30여 년 만인 2012년 대법원으로부터 끝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가가 배상 의무를 질지언정 당시 그릇된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겐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재판에 참여한 그는 과연 당시 대학생들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만큼 큰 죄를 지었다고 확신했던 걸까. 판사에서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여태껏 그 판결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

그의 개신교 신앙과 보수적 신념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적'도 있다. 여당 원내대표 시절 내놓은 '반값 대학 등록금' 공약이 그 예다. 시민단체나 진보 정당이 아닌 여당의 대표에 의해 제기됐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의 보수적 이미지도 크게 개선되었다.

물론, 그럴듯하게 주장만 했을 뿐 관철시킬 의지는 태부족했다. 여당 내에서 예산 부족 등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반발이 일자, 그는 가계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대학 등록금을 인하하자는 의미였다며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교육 전문가'라는 낯간지러운 찬사와 함께, 청와대가 지명 사유로 밝힌 '사회 현안에 대한 조정 능력'이 허망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최악만 아니면 된다?... 시나브로 낮아진 검증기준

요컨대, 백 보 양보해서, 다른 분야라면 몰라도, 우리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력들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뒷모습을 배운다고 했다. 교육자로서의 도덕성과 자질을 강조하는 말이다. 모름지기 교육의 총괄 책임자로서 교육부 장관은, 미래의 포부를 밝히기에 앞서, 지금껏 살아온 행적만으로도 일선 학교 모든 교사들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번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를 두고는 우호적인 반응이 많은 것 같다. 대체로 '회전문 인사라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장관 후보자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평가다. 그런가 하면, '정부 조직 꾸리다가 임기의 절반이 다 가게 생겼다'며 '웬만하면 그냥 밀어주자'는 의견도 곳곳에서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 사태를 우리 사회의 '높아진 검증 탓'으로 돌렸지만, 단언하건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오히려, 무기력한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시민단체들조차 지칠 대로 지쳐선지 '최악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검증 기준이 시나브로 낮아져버렸다.

비록 푸념 섞인 말투였지만, 전교조 조합원인 한 동료 교사가 건넨 말이 이를 증명한다.

"세월호 유가족들 보는 앞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황제 라면'을 즐긴 서남수 장관과 드러난 표절 행각만으로도 논문 한 편이 나올 법한 파렴치한 김명수 후보자보다야 백 번 천 번 낫잖아. 현 정부에서 더 이상 뭘 바래. 보수 정권에선 '차악(次惡)이 선(善)'인 거, 몰라?"

현 정부의 연이은 인사 참사가 우리 사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태그:#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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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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