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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카리브해는 뒤쫓아 오는 폭풍우를 피해 저 멀리 숲의 장막 너머에 배를 정박하고, 햇살이 뒤엉킨 덩굴식물 사이를 통과하는 모험을 제공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많이 달랐다.

9시간을 달리는 불편한 버스, 버스 내부를 꽁꽁 얼려버릴 듯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두어 시간마다 만날 수 있는 휴게소. 산블라스(San Blas)와 더불어 파나마의 양대 휴양지로 손 꼽히는 섬, 보카스 델 토로(Bocas del Toro)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알미란테(Almirante)에서 보트를 타긴 했지만 여기가 카리브해임을 느낄 새도 없이 짧았다.

어김 없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바나나 줄기와 여유로운 여행자들은 카리브해의 상징이다.
▲ 카리브해 섬의 어느 호스텔 어김 없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바나나 줄기와 여유로운 여행자들은 카리브해의 상징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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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고 해봐야 선착장 앞으로 난 도로 하나가 다인 작은 섬마을을 배회하다 도착한 숙소는 자유롭게 팬케이크를 굽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천장에 아무렇게나 매달린 바나나 줄기가 여기가 새삼 열대 카리브해의 섬임을 깨닫게 했다.

"거기 독 들었어!"

무심코 손을 뻗어 바나나 하나를 손에 쥐자 팬케이크를 손에 든 한 남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더니 잘 익어 보이는 바나나를 하나 골라 손수 떼어준다. 아무렇게나 묵은 긴 머리와 맨발, 원래 백인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 만큼 검게 탄 피부에서 나는 한눈에 그가 '여행생활자'임을 알아챘다.

자신을 데이빗이라고 소개한 그는 미국에서부터 출발해 남미까지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방향이라면 참 좋을 것을,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라고 생각하던 차에 내일이면 콜롬비아로 떠난다는 그와 함께 내 생애 첫 카리브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카리브해의 특징은 뚜렷하다. 바로 해안선 끝까지 늘어선 정글.
▲ 처음 만나는 카리브해 카리브해의 특징은 뚜렷하다. 바로 해안선 끝까지 늘어선 정글.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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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안내를 받아 보물을 찾아 헤메는 정글 탐험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난생 처음 만난 카리브해 스타 피시 해변(Star Fish Beach)은 여전히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넓은 백사장 대신 자리잡은 끝을 알 수 없는 정글, 그 빛을 품어 녹빛으로 빛나는 바다, 한 발자국만 들어서도 들려오는 수많은 생명의 소리. 난생 처음 만나는 카리브해의 정글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정글 탐험이 옛날 이야기가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탐험을 하지 않는 것뿐이야."

나는 데이빗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피시 해변의 어디서든 붉은 불가사리를 볼 수 있다.
 스타피시 해변의 어디서든 붉은 불가사리를 볼 수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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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뻗으면 잡히는 살아있는 불가사리, 파라솔 대신 자리잡은 코코넛이 주렁주렁 매달린 야쟈수, 수초 사이로 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게들, 해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정글, 그 어떤 것도 내가 알던 바다에서 볼 수 없는 풍경. 나는 카리브해에 왔다.

개구리가 사는 바다

길이 사라지고 바다가 자리한 풍경에 추억을 주입한다. 점점 푸르러지며 머릿결처럼 부드러운 흐트러진 겹겹 구름을 붙잡는다. 탄자니아의 보물섬 잔지바르의 눈부신 해변에 두고 온 생각들이 벌써 4개월이 흘렀다.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지나가는 길에 돌고래 서너 마리가 곁을 지나친다.

"오랜만이야"라고 외칠 새도 없이 보트는 빠르게 지나쳐 버렸지만 어쩐지 그들도 나와 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곳에서 편지를 띄우면 대서양을 지나 그곳에 닿을 것만 같은 느낌. 그곳에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이 끝나기 전에 보트는 바다 위의 데크에 멈춰섰다.

정글과 구름, 에메랄드 빛 바다속을 바라보는 여행자가 어울린 보카스 델 토로는 한 폭의 그림같다.
 정글과 구름, 에메랄드 빛 바다속을 바라보는 여행자가 어울린 보카스 델 토로는 한 폭의 그림같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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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온갖 수초들이 바다 속에 흐드러진 카리브는 그 속살도 마치 정글 같다. 꽃길과도 같은 물길 위로 놓여진 나무다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낮게 깔린 구름과 바다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어느 여행자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마치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해변에서는 바다와 정글을 모두 즐길 수 있다.
▲ 레드 프로그 비치(Red frog Beach) 마치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해변에서는 바다와 정글을 모두 즐길 수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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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정글 탐험 끝에 모습을 드러낸 레드 프로그 해변(Red Frog Beach)은 얼핏 보면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전형적인 태평양 바다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이 진기한 해변에 어울리지 않는 오두막이 없었더라면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왔던 무인도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다.

줄을 맞추어 늘어선 야자수가 아닌, 아무도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인 그 숲이 나는 좋았다. 그 울창한 숲 속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이번에는 온갖 신기한 생명들이 그 생명력을 내뿜는다.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사장이나 블루 라군이 아닌, 이 짙푸른 초록의 원시림이야말로 카리브해의 특별함이다.

금방이라고 흘러내릴 것만 같이 선명한 색상의 레드 프로그.
▲ 해변의 상징 레드 프로그 금방이라고 흘러내릴 것만 같이 선명한 색상의 레드 프로그.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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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명한 붉은색이 과연 진짜이기는 한걸까? 두어 시간을 해변에서 보내고 만들어진 정글 탐험대를 따라 늪 속의 악어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나무늘보를 지나 마주친 녀석은 정말 그랬다. 금방이라도 줄줄 흐를 것 같은 그 색깔은 조금씩 내 상상 속에서 온통 정글을 물들였고, 그렇게 처음 만난 카리브해의 낙원은 온통 붉은색으로 내 머리 속에 기억되었다.

정글에서 살기에는 지나치게 튀는 색깔이던 녀석은 아직도 잘 살고 있을까? 온통 푸른색의 세상에서 말이다.

간략여행정보
보카스 델 토로(Bocas del Toro)로 가기 위해서는 파나마시티에서 버스를 타고 알미란테(Almirante) 로 먼저 가야 한다. 버스는 매일 밤 8시에 알브룩 터미널에서 출발하며 알미란테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편의 보트가 보카스델토로로 향한다.

카리브해의 섬인 보카스델토로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든 시설은 보트가 정박하는 메인 섬에 집중되어있다. 본편에 소개된 스타피쉬 해변과 레드프로그 해변 말고도 많은 해변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메인 섬과 떨어져 있어 또 다시 작은 보트를 타야 한다. 일행이 여럿이라면 개별적으로 보트를 대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섬의 여러 가지 투어를 이용하자. 어디를 택하든, 카리브해는 당신이 상상하는 모습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보카스 델 토로 여행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4260885



태그:#보카스델토로, #카리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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