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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청봉 눈잣나무 군락지. 향기와 꽃가루가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설악산 대청봉 눈잣나무 군락지. 향기와 꽃가루가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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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운각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다시 대청봉을 향하여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대청봉에 오르는 마지막 깔딱고개다. 거의 수직으로 된 오르막은 허리를 구부리면 이마가 언덕에 닿을 것만 같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길을 오른다. 뒤돌아보면 숨이 멎은 듯 아름다운 암벽들이 앞을 가리고, 앞을 보면 거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이 앞을 가린다. 까마득하게 이어지는 철 계단을 젖 먹는 힘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병풍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의 절경에 그만 온 정신을 홀리고 만다. 설악산은 그런 산이다.

소청봉을 오르는 마지막 깔딱고개
 소청봉을 오르는 마지막 깔딱고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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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봉을 오르다 뒤돌아본 설악산 천불동계곡 비경
 소청봉을 오르다 뒤돌아본 설악산 천불동계곡 비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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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공룡의 등뼈처럼 거대하게 솟아있는 공룡능선이 나타난다. 설악산을 지나가는 백두대간답게 괴이하면서도 우람한 바위들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공룡능선은 동쪽으로는 천불동계곡을, 서쪽으로는 가야동계곡과 수렴동계곡을 끼고 있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어떤 위엄이 서려있다.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간 우람한 산줄기는 공룡능선과 마등령을 거쳐, 저항령-황철봉-미시령-신선봉-진부령까지 이어지며 남북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를 형성한다. 설악산 백두대간 중 가장 험한 산줄기인 공룡능선은 내·외설악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그 중에서도 1275봉의 암봉이 공룡의 뿔처럼 우람하게 솟아있다.

설악산 백두대간의 줄기를 이루는 공룡능선
 설악산 백두대간의 줄기를 이루는 공룡능선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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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위로 멀리 울산바위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울산바위는 전설처럼 금강산에 가다가 멎어버렸을까? 산은 전설을 낳고, 전설은 산을 오르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서 전설은 자주 들어도 흥미로운가 보다.

아주 먼 옛날, 하느님이 금강산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에 있는 잘생긴 바위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 중에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부름을 받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덩치가 워낙 크고 몸이 무거운 큰 바위는 워낙 느리게 걷다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빚어지고 말았다.

공룡능선 너머로 신기루처럼 보이는 울산바위
 공룡능선 너머로 신기루처럼 보이는 울산바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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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그만 갈 곳을 잃고,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도 없어 그냥 설악산에 머물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울산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둘레가 4km에 이르는 울산바위는 여섯 개의 거대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소청에서 바라본 울산바위는 마치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청봉(小靑峰 1550m)에 오르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소청, 중청, 대청이란 명칭은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설악산장(중청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배낭을 두고 카메라만 들고 대청봉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중청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길에는 눈잣나무가 다닥다닥 붙어 일렁이고 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세든지 안전대를 잡아야만 겨우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도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기차게 대청봉으로 향했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과연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하려는 산악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강한 바람 때문에 거의 수직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기어코 정상에 올라야 한다!

설악산 대청봉 인근 털진달래
 설악산 대청봉 인근 털진달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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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바람 틈새에서도 노랑제비꽃을 살짝 웃어주고, 연분홍 털진달래가 유혹을 한다. 아무리 산행이 힘들어도 꽃이 있어서 피곤함을 덜어준다. 5월 말경이지만 대청봉 주변은 이제 막 봄을 맞이한 듯 야생화 천국을 이루고 있다. 연분홍 철쭉도 아름답게 피어나 길손을 반기고 있다.

정상 부위에 서식하는 눈잣나무가 강한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눈잣나무는 북방계 희귀식물의 하나로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란다고 한다. 키 큰 잣나무와는 달리 옆으로 누워서 자란다. 잣나무와 비슷하지만 땅을 기듯이 엎드려 자라는 점이 다르다.

누워서 자라는 눈잣나무는 설악산 대청봉이 남방한계선이 된다.
 누워서 자라는 눈잣나무는 설악산 대청봉이 남방한계선이 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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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잣나무는 소나뭇과의 상록침엽수로 누워서 자란다는 뜻의 <누운잣나무>를 줄여서 <눈잣나무>라 불린다. 다섯 장의 잎이 뭉쳐진 줄기에 꽃이 암수한그루에 피는데, 향기와 꽃가루가 멀리 퍼지기 때문에 '천리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푸른 잎이 싱그럽게 일렁이는 눈잣나무 군락지는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듯이 보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대청봉. 그러나 강한 바람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대청봉. 그러나 강한 바람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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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워낙 강한 바람 때문에 거의 기어가듯 기를 쓰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정상을 눈앞에 두고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 으음~" 숨을 쉬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정상에는 올라가야 한다. 내 생에 일곱 번째 오르는 대청봉 정상이 바로 코앞에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 간 설악산 천불동계곡을 통해서 대청봉에 오른 기행문입니다.



태그:#대청봉 정상, #눈잣나무, #털진달래, #울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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