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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이 모이면 진실을 저 바다에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이백만 명을 넘어섰다. 희생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6월 국회가 끝나는 7월 안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나마 정치권이 시민들의 눈치를 보는 7·30 이후엔 민심을 정치권이 외면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사고 이후 가족들이 정상적인 생업으로 복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아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진상규명에 매달린 가족들도 적지 않다. 가족들은 지금까지 주말마다 안산, 서울과 전국 곳곳으로 서명운동을 다녔고, 7월 2일부터는 버스를 타고 '전국 순회'를 벌이며 막바지 서명운동에 안간힘을 쓰려고 한다.

지난 2일 오전 11시에 진도, 창원, 서울에서 동시에 천만 서명운동 전국 순회 발대식이 열렸다. 안산의 분향소에서 새벽 5시에 진도와 창원으로 버스가 출발했고, 9시에는 국회로도 출발했다. 발대식을 마치고 가족들은 국회에서 특별법에 대한 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기 위해 직접 의원실을 돌아다녔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활동가(서명용지를 가리키고 있음)가 함께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실을 방문하여 보좌관에게 세월호 특별법 서명용지를 의원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날 이재오 의원은 자리에 없었다.
▲ 의원님께 꼭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활동가(서명용지를 가리키고 있음)가 함께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실을 방문하여 보좌관에게 세월호 특별법 서명용지를 의원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날 이재오 의원은 자리에 없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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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안산에 살면서 불편한 교통편 때문에 불만이었는데, 기록을 위해 가족들의 일정에 동행하면서 광주(세월호 관련 재판이 광주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진도, 서울로 '무상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안산이 '특별재난지역'이 되어 받게 된 얼마 안 되는 지원 중의 하나랄까. 최근에 가족들과 몇 번 버스를 같이 타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간 동고동락해온 가족들은 출발할 때는 마치 초등학교 동창생들 모임처럼 화기애애한데, 돌아올 때는 늘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메운다. 그날 보고 듣고 만나는 일 하나하나가 가족들의 마음을 4월 16일로 되돌려 놓는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달라는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가족들의 주장은, 변명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국가 조직 앞에 파도처럼 부서지곤 한다.  

"부모들은 바다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우리 애들이 시신으로 나와서 바닥에 죽 누웠는데 운구차가 없는 거야. 운구차가 없어서 그 찬 바닥에 누워서...... 그때 팽목항이 그랬어. 부모들이 바다를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 애들한테. 그래서 지금 이거라도 하려고 해. 진실이라도 밝히려고."

이날 동행한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세금 내고 큰 잘못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던 500여 명의 부모들이 이 사고 이후 직접 진상조사에 나서고 특별법안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잡고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국가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으니까. 가족들이 국회에서 밤샘 농성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해 가까스로 여야 합의가 이뤄졌는데, 국정조사는 시작하자마자 증인 채택 문제로 삐걱거리고 기관보고 일정 잡는 데만 3주를 잡아먹었다. 청와대는 국정조사 특위가 요청한 자료조차 이 핑계 저 핑계로 내지 않는다.

7월 2일 11시에 국회, 진도, 창원에서 동시에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위한 전국 순회버스 발대식'과 기자회견이 열렸다.
▲ 국회 앞에 선 세월호 유가족들 7월 2일 11시에 국회, 진도, 창원에서 동시에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위한 전국 순회버스 발대식'과 기자회견이 열렸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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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오전 11시, 진행된 전국 순회 발대식은 뙤약볕 아래 열렸다. 국회 앞이라지만,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나와 보지 않고 오가는 시민도 없는, 사람이라곤 기자 아니면 경찰만 있는 이곳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일까. 단원고 동혁군 엄마 김성실씨가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하는 동영상을 남겼던 그 동혁이다.

"밥을 먹다가도, 현관문을 열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마주해야 하는 아이의 빈자리에 물음표가 차올라 다른 기억들을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 우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한 책임을 다하라고 호통을 치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몸속의 물기가 마를 것처럼 뜨거운 날인데도 가족들의 눈에선 또 눈물이 난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가족들은 8개 조로 나누어 의원회관을 돌아다녔다. 나도 한 조와 동행했다. 이번엔 주로 여당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미리 공문으로 방문을 알렸음에도 대부분의 의원들은 자리에 없었고, 우리를 맞은 보좌관이나 비서진도 공문을 읽지 않은 것 같았다.

여당도 특별법 얘기를 해왔으면서 우선순위에선 미뤄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다만 '세월호 유가족'이란 이름 앞에 적절히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이 읽혀졌다. 가족들은 의원들에게 전해달라며 보좌관에게 서명용지를 내밀었다. 다른 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래도 서명을 열 건 정도 받은 모양이었다. 국회의원이 안쪽 방에 앉아서 얼굴은 비치지 않고 서명만 해주기도 했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국회의원을 복도에서 붙잡고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단다.

가족들은 이어 국회도서관으로 가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공청회에 참가했다. 특별법의 첫번째 공청회다. 초안은 대한변협에서 만들었다. '세월호'란 명칭 대신 '4·16'이란 명칭을 쓰자는 취지에 공감했다. 미국에서 9·11 사건을 '월드트레이드센터 사건'이나 '알 카에다 사건'으로 부르지 않듯이, 참사의 무대이자 원인인 그 부실덩어리 배 대신 4·16이라는 날짜를 이 재난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의미가 있다.

또한 이 법의 중요한 특징이 정부와 국회로부터 독립된 조사기구에게 검찰에 준하는 수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 역사상 친일파들을 수사한 반민특위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힘을 갖춘 조사기구가 등장하는 셈이다. 여당에서 반대할 것과 야당에서도 불편해할 것이 예상됐다.

하지만 지금껏 수많은 기구들처럼 정부 기관에 자료 하나 받는 것조차 애걸복걸해야 했던  처지로는 진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독립적인 수사권은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열쇠다.

여기는 하늘의 성 라퓨타일까

2일 오후 국회에서 파행을 빚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속개돼 심재철 위원장과 새누리당 조원진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간사, 김광진 의원이 자리에 앉아 있다.
 2일 오후 국회에서 파행을 빚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속개돼 심재철 위원장과 새누리당 조원진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간사, 김광진 의원이 자리에 앉아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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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가려는데, 국정조사를 참관하던 가족들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특위의 야당 위원의 말실수를 빌미로 여당에서 그 의원을 특위에서 빼지 않으면 국정조사 일정을 취소하겠다며 겁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빌미가 된 그 일은, 사고 직후 골든타임에 청와대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해경에게 "현장 영상을 빨리 보내라"고 독촉하는 전화통화 내역을 야당 위원이 다소 과장해서 말한 것이었다.

말실수가 문제라면 컨트롤 타워 노릇을 포기한 청와대의 실수는 재앙이었다. 파행된 국정조사가 속개되길 바라며 5시간이나 기다리던 가족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여당 특위상황실로 달려 들어갔다. 어서 국정조사를 진행하라고 가족들이 세차게 항의하자 여당 특위 조원진 간사는 "우리끼리 회의를 할 테니 나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로봇처럼 반복했고 심재철 특위위원장은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뭘 더 기다리라는 겁니까! 기다리라는 말만 듣다가 우리 애들이 죽었는데!"

항의 끝에, 국정조사는 저녁 7시 30분에서야 속개되었다. 가족들 얼굴에는 자신들이 탄원하고 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피로감이 역력했다. 돌아오는 버스에 설치된 TV 화면에서 야당 위원이 해경청장에게 묻는다.

"사고 직후 신고 걸려온 전화번호 갖고 있었지요? 그 번호로 '빨리 나와라'는 문자를 왜 안 보냈습니까?"

해경청장은 대답한다.

"아쉽게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버스는 이번에도 한숨과 탄식으로 찬다.

<걸리버여행기>에는 '라퓨타'라는 공중의 왕국이 등장한다. 하늘에 떠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라퓨타에는 시종들이 입과 귀를 건드려주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남과 말하지도 않는 종족이 등장한다. '불통'이 미덕인 이 왕국은 지상의 백성들이 반항하거나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그 위에 멈춰 햇빛을 가리거나 아래로 눌러 집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인다. 명령을 좋아하고 듣기를 싫어하며, 생명을 살릴 힘은 없어도 죽일 힘은 있는 이 국가가 걸리버가 본 라퓨타처럼 느껴진다. 버스 차창으로 세차게 소나기가 내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작가이며 '세월호 시민기록위원회'의 기록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세월호특별법, #국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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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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