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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주머니가 강제철거당한 빈민들을 위해 닭 한마리를 삶았다.
▲ 보엥카그 호수 빈민촌 한 아주머니가 강제철거당한 빈민들을 위해 닭 한마리를 삶았다.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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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이 10여 년 동안 캄보디아를 오가며 담은 가난한 웃음소리입니다. 보엥카그 호수 빈민촌, 사진 배경 뒤쪽에서는 강제철거가 한창입니다. 빈민들의 악다구니가 튀어나오고 서러운 삶들은 짐을 싸서 낯선 곳으로 떠돌겠지요.

그분들을 위해 한 아주머니가 캄보디아에서는 엄청나게 비싸다는 닭 한 마리를 삶았답니다. 그랬더니 웃음이 확~ 번졌습니다. 가난도 나누면 이렇게 행복합니다. 임종진(47)의 카메라 렌즈는 '가난'이 아니라 '사람'을 담았습니다. 철거 현장의 '투쟁'을 담은 게 아니라 삭막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공동체의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담았습니다.

한 장애인이 재활센터에서 재봉 기술을 익히고 있다.
▲ 지뢰피해장애인재활센터 반티아이프리에브 한 장애인이 재활센터에서 재봉 기술을 익히고 있다.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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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을 더 보여드립니다.

지뢰피해장애인재활센터 반티아이프리에브에서 임종진의 카메라에 담긴 장면입니다. 지뢰 피해 학생이 잘려나간 손으로 재봉 기술을 익히고 있죠. 반듯한 자를 잡고 종이 위에서 재단을 하는 한쪽 손이 낯섭니다. 처음에는 서툴렀겠지만 이제는 다소 불편할 뿐입니다. 

다섯 손가락이 없어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장애차별 철폐를 외쳐야 하겠지만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은 동정심과 연민의 눈으로 장애인의 잘려나간 손마디를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미래를 개척하는 '그 손'을 보면서 가슴이 마구 뛰었답니다.

'사람'을 찍는다

이게 다 사진에 담긴 사연이자 사진 속 인물이 전하는 삶의 메시지이고 가치입니다. 그래서 임종진씨는 자신을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연 전달자'라고 부릅니다. 시간에 쫓겨 속사포처럼 찍고 썰물처럼 빠지면 그 사연에 깊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또 그 사진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이 아니라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뿐입니다. 긴 시간동안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그들과 한 공간에서 마주해야 사연을 알 수 있습니다. 

임종진은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2008년부터 '달팽이 사진관'이라는 이동식 무료 사진관을 운영했습니다. 오토바이에 프린터를 넣은 플라스틱 박스를 싣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습니다. 그 모습이 달팽이 닮았습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일주일 뒤에 그들을 만나 액자를 전하면서 삶의 가치를 나눴습니다. 그랬더니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첫 사진집 <캄보디아 : 흙 물 바람 그리고 삶>(오마이북 펴냄)에 친구들의 삶과 의미를 오롯이 담았습니다.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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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가 사진기를 사연 전달의 도구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0년 전, 그의 손에는 더 잘나가는 사진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월간 <말>지를 거쳐 <한겨레> 사진기자로 일했습니다. 그는 한때 사진을 사회 변혁의 도구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상식적인 사회를 위한 투쟁의 도구가 사진기였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내 사진이 쓰이기를 바랐습니다. 장애인들, 비전향 장기수분들, 그리고 재개발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참한 그들의 삶을 조명하려고 했어요. 제 카메라의 시선은 장애를 더 부각하고, 재개발 사업에 밀려난 사람들의 투쟁을 도드라지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을 부각하는 쪽으로 고정됐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삶보다는 외형에 집착했던 거지요." 

알 수 없는 버거움... 길을 떠나다

그랬던 임종진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한겨레> 종군기자 신분으로 이라크를 취재한 뒤부터랍니다. 외신들이 똑같이 찍어대는 전쟁 사진과는 달리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겠다고 나선 길인데…. 그는 피를 흘리며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 이라크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네가 제발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친구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친구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아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는 오만한 사진기자 임종진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화를 입을까봐 되레 걱정을 했던 겁니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담당했던 것은 신문사 경제부였답니다. 매일 신상품을 찍고 백화점의 모습을 담으면서 밀려드는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버거움.'

"2004년 여름, 처음 캄보디아 땅을 밟았습니다. 막 10년 경력을 채운 언론사 사진기자였지만 알 수 없는 버거움에 시달리다가 홀로 찾아간 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매년 이어지기를 반복했고, 결국은 기자를 그만두고 캄보디아 현지의 NGO활동가로서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나름대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내려놓고 캄보디아로 떠난 이유는 나에게 사진이 어떤 의미로 쓰일 수 있는가를 다시 찾기 위해서입니다."(사진집 <작가노트>에서 발췌)

0.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그는 처음으로 찾아간 캄보디아에서 또다시 오만한 자신과 마주쳤답니다.

"캄보디아 에이즈센터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에는 말기 에이즈 환자분들과 악수도 하고, '나는 당신들을 전혀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몸짓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센터에 혼자 앉아 있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고개를 돌렸죠. 뼈만 남고, 온몸이 새까맣고 반점이 있는 진짜 말기 에이즈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손을 내민 게 아니라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그 순간 나의 허위의식과 오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카메라에 '관계'를 담다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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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 10년여 동안 캄보디아를 들렀습니다. 자신이 무너져 내린 곳에 계속 간 이유가 궁금한데요?
"캄보디아에서 나오는 데 신부님이 나를 툭 치더니 한 말씀 하셨습니다. '또 오지~'.(웃음)"

- 캄보디아에서 '알 수 없는 버거움'의 실체를 확인했나요?   
"사진보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기자는 기자대로 역할이 있죠. 강한 사진을 도구로 활용해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거대담론을 형성하는 거겠지요. 사진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카메라에 투영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큰 역할이라기보다는 저는 소박하게 사람들의 가치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사진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진을 찍을 때 나를 위해 그 사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기암시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임종진을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 분들이 더 잘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보지 말고 이 분들의 삶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집을 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묵묵히 일하는 모습과 빈민들의 일상이 표현돼 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수많은 장면이 있을 텐데, 왜 이들의 모습에 주목했나요?
"가장 평범한 분들이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 소소한 일상 속에서 목격한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관계입니다. 모든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그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모습이죠. '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집에 며느리를 걱정하는 얼굴이 나옵니다. 아들은 자살을 했고, 며느리는 밀주를 만들어 생활하는데, 아버지는 그 며느리가 안쓰러웠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모유가 안 나온다면서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 있죠.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분들 속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손녀가 쓰레기 위에서 일하는 할아버지 머리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파편화는 가속화되고, 그 속에서 공동체 정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가난하고 얼굴도 까맣다는 '외형'에 사로잡혀 있어요. 편견입니다. 그들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캄보디아라는 지명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또 다른 곳에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 사진집 <캄보디아>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캄보디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피부색이 짙고 어둡다는 것이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캄보디아 사람을 하대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형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가진 낮은 편견의 인식 틀이 걷혔으면 좋겠어요. 어느 누구든 타인을 함부로 낮춰볼 자격은 없습니다." 

가슴으로 찍는 사진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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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집의 3000부는 '캄보디아 미션'이 진행하는 시골 초중고교(하비에르 예수회 학교) 건립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알리고 기부금을 모집하는 데 쓰입니다. 지금도 그는 소수 민족 프농 마을의 '달팽이 유치원' 후원회에 매달 1000달러씩 보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달팽이사진골방'을 운영하면서 '함부로 찍지 않는 사진'에 대해 강의를 하고, '5월 광주 치유 사진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는 첫 사진집에 실린 160여컷의 삶과 이야기를 엮은 산문집도 펴낼 예정입니다.

임종진 작가의 <캄보디아> 사진집에 실린 사진
 임종진 작가의 <캄보디아> 사진집에 실린 사진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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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진을 잘 찍고 싶으신가요?

그는 '3개월만 투자하면 당신도 사진작가'같은 제목의 책을 먼저 집어 들지는 말라고 충고합니다. 사진은 기술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길가의 돌멩이 한 개, 송곳, 단추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 존재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라고 합니다. 자기 감정의 결을 살펴보고 다른 존재의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천천히 시작하라고 합니다.

혹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임종진처럼 '사진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찍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마음 자세의 문제이고 수동과 능동의 거리랍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자판기 커피 뽑듯 휴대전화 카메라 사진을 찍어온 기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눈동자와 손가락만 움직여 찍지 말고, 그처럼 온몸으로 대상에게 다가가 온몸의 무게로 셔터를 눌러보면 어떨까요.
  
달팽이처럼 낮고 느리게 터덜터덜 걷는 그의 뒷모습, 그 어깨 위엔 '타인을 위한 삶의 도구'인 사진기가 걸려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사진을 소모품처럼 찍고 지우는 시대,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셔터를 눌러 사람들의 사연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세상과의 소통은 이처럼 느리게 하는 겁니다.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은 지난 10년동안 캄보디아를 오가며 만난 해맑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집에 담았다.
▲ 임종진의 <캄보디아> 사진집 표지 '사진하는 사람' 임종진은 지난 10년동안 캄보디아를 오가며 만난 해맑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집에 담았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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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종진, #캄보디아 : 흙 물 바람 그리고 삶, #캄보디아,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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