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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ing in the rain'의 한 장면.
 'Singing in the rain'의 한 장면.
ⓒ (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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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힘은 끝이 없나 보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의 무대엔 오래된 영화의 향수와 여름밤 공기 같은 설렘이 1만 5천 리터의 물보다 더 세게 후둑후둑 내려친다. 해묵은 이야기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탭 댄스, 슬랩스틱, 퍼포먼스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남자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공중에서 두 발을 '딱'하고 맞부딪히는 익숙한 장면이 나오면, 객석에선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클리셰'라 외치면서도 오랜 작품을 계속 찾는 것은 아마도 고전이 가진 '항상성'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1920년대,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가 배경이다. 무성영화 최고의 남자배우 '돈 락우드'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인 '캐시 샐든'과 사랑에 빠진다. '돈'은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며 연기에 대한 고민에 빠지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목소리 연기가 엉망인 '리나 라몬트' 때문에 망할 위험에 처한다. '캐시 샐든'과 '돈 락우드', 그들의 친구 '코스모 브라운'은 영화를 살려내기 위해 뮤지컬 영화를 만들기로 합심한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은 오랜 무성영화 필름을 돌려보는 듯한 작품이다. 억지 감동을 짜내려 이야기를 학대하지도 않고,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부풀리지도 않는다. 다만, 오래된 책을 찾아 툭툭 먼지를 털어낸 듯 소탈하고 소담스러운 매력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에서 '캐시' 역을 맡은 방진의가 댄스 장면을 소화하고 있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에서 '캐시' 역을 맡은 방진의가 댄스 장면을 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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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영화의 시대를 맞이한 그 당시의 할리우드 풍경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오디오와 화면이 맞지 않아 대사가 엉망이 되어버리거나, 마이크와 멀어져 대사가 들리지 않는 등의 에피소드는 경쾌하고 명랑한 템포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흑백 사진 속 오래된 옛 부모님의 추억을 보는 듯 사랑스러운 상황 매칭도 쾌활하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은 유독 명장면이 많다. '코스모'의 솔로곡인 'Make'em Laugh'는 각종 슬랩스틱 연기가 틈 없이 이어진다. 춤, 마임, 노래가 기계처럼 딱딱 맞물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보드빌(노래, 춤, 촌극 등을 엮은 가벼운 뮤지컬) 무대를 옮겨 놓은 듯 흥을 돋아 박수가 절로 터진다. 'Good Morning'은 '캐시', '돈', '코스모' 세 사람이 '리나'가 망쳐놓은 유성영화를 뮤지컬로 되살려 보기로 결심하며 부르는 노래다. 상쾌 경쾌한 리듬에 맞춰 세 사람이 펼치는 탭댄스가 압권이다.

1막 마지막을 장식하는 'Singing in the rain'은 영화의 한 장면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하다. 무대 위로 쏟아지는 1만 5천 리터의 물이 만들어내는 미장센은 말할 것도 없다. 온몸으로 물줄기를 맞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돈'의 설렘은 객석까지 침범하고, 1~2열에서 우비를 입고 박수를 치는 객석에선 천진한 웃음이 잇달아 터져 나온다. 익숙한 장면과 멜로디가 주는 즐거움은 무대에 내린 비를 객석까지 차올리는 짓궂은 배우의 장난에도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다.

음악은 우아함과 고전적인 선율의 매혹을 잃지 않았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은 고유의 작품이 갖고 있는 유려한 멜로디는 남겨두고, 적당량의 기타, 일렉 베이스 등의 악기를 첨가해 대중적인 편곡을 시도했다. 도를 넘지 않은 편곡은 작품의 오래된 결을 현대적으로 살려내는 데 일조했다.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의 한 장면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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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로 변신한 '트렉스' 제이의 노력은 감탄할 만하다. 대사 하나에 쏟는 정성이 눈에 보일 정도다. 땀으로 구축한 춤과 연기는 그만의 따뜻한 '돈'을 만들어냈고, 안정된 노래 실력으로 신뢰를 더했다. '코스모' 역의 육현욱은 박수가 아깝지 않다. 춤, 연기, 노래에서 자유로운 그의 재능도 놀랍지만, 극 전체의 리듬을 알고 적절히 놀듯 연기하는 조율 감각은 최고 수준이다.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초반부 더딘 이야기 진행으로 관객의 구미를 확실히 당기지 못한다. 다양한 퍼포먼스 공세도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아, 장면 호흡이 비교적 길게 느껴진다. 평범한 무대가 작품의 우아함을 깊이 관조하지 못한 것도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뮤지컬 싱잉인더레인, #싱잉인더레인, #제이, #방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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